[1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작]
때는 2020년 추운 어느 겨울, 서울 양천구. 월요일 오후 5시.
새 프로그램 기획 회의를 빙자한(?) 맥주타임이 시작됐다.
"자, 뭐 만들까?"
TV 프로그램 기획은 언제나 제로(zero), 맨땅에서 시작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필터 없이 쏟아내면 된다.
"혹시 역사 좋아해?"
선배가 묻는다.
"네..? 역사요?"
“근현대사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근현대사요...?”
헉... 근현대사라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근현대사’라면 학창 시절 때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탐 선택 과목 중 하나였다. 달달 외워야 하던 역사 과목은 딱 질색이라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는데.. 내 마음을 1도 모르는 선배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며 한술 더 뜬다.
“실제로 맥주 한잔 하면서.”
맥주...? 현대사와 맥주라니. 이 무슨 연관성 1도 없는 조합인가. 듣는 순간 벌써 노잼(?)이다. 선배를 말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일개 팀원인 나에겐 그럴 용기가 없다. 일단 해보지 뭐. 망하면 어때? 프로그램이란 게 다 그런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망하더라도 한 편만 가볍게 해 보자던 <꼬꼬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3월 이야기>라는 이름의 파일럿을 시작으로 두 번째 파일럿, 시즌1, 시즌2를 지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레귤러로 안착했다. 수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요즘, 하나의 프로그램이 탄생하여 레귤러화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뼈저리게 겪었던 (특히) 시사교양피디로서 참으로 놀랍고 감개무량하다. 비결이라고 할 만한 거창한 것은 사실 없지만, 제작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생생한 순간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