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지랄맞게도 한낮이었던 그 날을 나는 기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웠던 그 날,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by 유정쓰

너무 지랄맞게도 한낮이었던 그 날을 기억해

너무 지랄맞게도 한낮이었던 그 날을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봄의 뒤꽁무니도 쫓아가지 못할 것 같았던 그 해의 봄. '봄이다, 봄이다' 자꾸 되뇌어야만 봄이 왔다고 겨우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3월의 어느 날. 그 날 나는 누군가와 데이트를 해볼 요량으로 예쁘게 차려입고 가로수길을 찾았더랬다. 모두가 봄인 그 곳에서 깨달았다. 아, 나는 아직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미안한 시간이 되고 말았다. 거리로 나와 마주한 따사로운 햇볕에 무척 눈이 부셨다. '잘 지내?' 괜스레 허공에 궁상을 떨며 ‘너 없이도 잘 살아지더라’고 말하던 네 입술을 떠올렸다. 과분히 눈부셨던 입꼬리. 참 잔인할 정도로 한낮이었던 오후 햇볕. 눈을 감으면 다 잊혀질 거라는 네 말은 거짓이었다. 그렇게나 눈부셨던 너를 어떻게, 고작 눈을 감는다고.



그날, 너무 한낮의 감성들

친구에게 위로로 들었던 ‘누군가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신호 같은 게 없어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라는 말, 그러니까 그 따위 다짐과 확신은 부질없다. 결국 그 진심이 통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능력, 혹은 두 사람의 운명이 결정짓는 일이고 그걸 진심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건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책임을 전가하고야 마는 무책임한 낭만주의로 여겼다. 진심은 통한다는 개소리는 하지 말라고. 그럼 진심으로 원하면, 스토커도 사랑이게?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나는, 진심 따위는 통하지 않아도 좋으니 차라리 뭔가를 그만둬야 할 때 명확한 신호가 보였으면 좋겠다는 몽상을 했다. 진심 따위야 내가 노력하는 만큼만, 내가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도 능력이 없다면 딱 그정도까지만 전해져도 좋으니 그만둬야 할 때, 멈추어야 하는데도 폭주하고 있는 내 등짝을 후려칠 손바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긴, 그렇다고 정말 그 빨간등을 보고 아무 망설임 없이 브레이크를 밟아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이 멀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쿨한 사람은 못 되지만. 결국, 무책임한 낭만주의나 책임의 현실이나 지랄맞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너무 환한 한낮이라서, 눈이 부셔 서글플 겨를도 없는.

그 따위 몽상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실은 난 이 모든 기분의 원인, 그 최초의 시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우리는 어떤 강을 건너버렸고, 결코 되돌아올 수 없을 거란 불편한 깨달음.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르게 되었다는 현실. 그렇게 뜬금없던 어느 봄날 한낮에서야, 나는 비로소 멋없고 낭만없던 우리의 종말을 인정했다.



바로 그 한낮의 연애, 그 아홉 번의 몰입

가끔씩 찾아오는 새벽의 감성은 무수히 많은 한낮의 집합이다. 누구나 새벽의 감성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한낮과 더욱 밀접해 있다. 닳고 닳아 꼴보기 싫어진 우리의 한낮. 그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작가는 사랑스러움을 어떻게든 끄집어내고야 만다. (나는 이 대목에서 어떻게든 사랑스럽고야 마는 따듯한 시선의 신형철 평론가를 떠올렸다.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책이었군, 하고 끄덕) 그 독립적인 아홉 번의 사랑스러운 처연함을 겪고 나면 알게 된다. 김금희라는 작가에 대한 문단의 과하다 싶은 찬사가 과하지 않다는 것을, 이 지랄맞은 한낮을 겪고도 우린 결국 또 사랑하게 되고야 말 것을.


취향강요 주관독서 #1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