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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쓰 Jan 23. 2021

하루가 지나가면

아주 잠깐 기대고 나면, 내일은 또 다른 오늘 <1917>


#1917 #하루가지나가면

굿 럭. 나는 이 무심하고도 절실한 최선의 인사말에서 이곳에 속한 모든 이들의 무력함을 체감한다. 시체가 나뒹구는 전장이 뭐 얼마나 고상하려고. 이 하찮은 하루살이들에게 임무가 주어진다. 시간이라는 최대의 적에 맞서 1,600명의 동료를 구해낼 것. 당연한 애국심과 투쟁심 그리고 정의감까지 여러모로 블레이크의 서사처럼 보였던 극은 한순간 왜 하필 나야, 하고 반문했던 스코필드의 서사로 옮겨간다. 그러니까, 이 수많은 시체들 속에서 영혼이 다 뭐고 훈장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임무가 있다면 그저 생존하는 것일 테지. 달라질 것은 없다. 이 처연한 사투의 하루를 견뎌내면 또 하루가 시작될 뿐이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에 잠깐 기대고 나면, 내일은 또 다른 오늘. 이렇듯 전장의 공포란 컷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시시각각의 순간에 대항하는 아주 조그마한 인간의 이야기를 그저 보여주는 방법론으로서의 영화적 기교에 나는 완벽하게 동의했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적 기술이 영화 그 자체의 주제에 봉사하는 모양새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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