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 위고
산다는 건 뭘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다. 인간은 태어나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거쳐간다. 사람의 감정을 숫자로 셀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일생에는 얼마나 많은 웃음과 눈물이 있을까.
제목 그대로 슬픈 세상에서 전하는 말의 힘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 9.11 테러를 경험한 이들, 콜럼바인 총기 참사 등 너무 아프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현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슬픔을 겪었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본 느낌이다.
몇 가지 사건을 맞닥뜨린 이들의 인터뷰가 소개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두 자폐아를 둔 아버지의 이야기와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의 인터뷰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눈 맛, 무게 제로]
제주시에 사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첫 째가 태어났다. 그런데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자폐라고 한다. 그러다가 둘째가 생겼다. 둘째는 더 심한 자폐를 가지고 태어났다. 자폐를 가진 아이들은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몇 번이고 아들이 혼자 집을 나갔지만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결국 아들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한다. 바다에 던진 찌가 물 위로 둥둥 떴다가 잠기는 것을 봤을 때,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순간을 보는 것을 '눈 맛'이라고 말했다. 그런 아버지의 인생에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눈 맛'을 본 기쁜 순간이 있었다.
보통 애들은 서너 살 되면 아빠 엄마 다 말하잖아요. 우리 큰애가 지금 스무 살인데요. 열 살 때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렀어요. 열 살 때 “아-빠!” 하고 부르는데 아, 그 맛이 그렇게 좋았어요. 제 눈을 마주 보면서 “아-빠” 하고 불렀어요. 그때 그렇게 행복했어요.
아버지는 '아빠'라는 말을 듣는 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때 가장 힘든 순간이 지나갔음을 알았다고 한다. 아들의 입에서 나올 다음 단어를 기다리는 것은 인생을 걸고 기다릴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중 어느 하나가 저에게 일어났을 뿐이에요.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두 장애아들의 아버지란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예요. 솔직히 말하면 제일 나쁜 건 제가 장애인의 아버지란 게 아니에요. 제일 나쁜 건 저에게 약해질 기회가 많다는 거예요. 이 애는 내 삶이 힘들다는, 언제나 편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핑계일 수 있어요. 얘를 보면 누구나 내가 힘들 거라고 쉽게 생각하니까. 저는 뭐든지 아들 때문이라고 하면 되는 거죠. 저는 장애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친절하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의 선량한 마음을 쉽게 이용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애가 아니어도 사는 건 어차피 힘들어요.
건너 건너 알고 있는 지인 중 자폐아를 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음에도 혼자 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어디를 가든 항상 동행하신다고 한다. 겉으로는 항상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셨지만 술을 한 잔 드신 어느 날 속에 묻은 이야기를 꺼내놓으셨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자녀의 앞날이 너무 걱정되니 차라리 당신이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시며 펑펑 우셨다고 했다. 내가 없으면 그 아이가 누구의 도움으로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셨으리라. 인간이 가장 버틸 수 없는 끔찍한 감정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자식의 마지막을 내 손으로 정리하는 게 오히려 안심이 될 것 같다는 그 어머니의 마음은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쿠나마타타]
경북 고령에 사는 황 씨의 이야기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딸이 아침 일찍 아르바이트를 하러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2003년 2월 그날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다. 어머니는 딸을 잃고 말을 잃고 침묵을 얻었다.
가장 참담한 일은 딸이 지하철 참사 현장에서 죽었음을 엄마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딸이 받은 아르바이트 월급 명세서, 지하철 승하차 내역, 반지, 목걸이, 가방 같은 소지품의 구매 내역, 치과 기록, 마지막 통화 내역 등을 대구시에 제출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모든 유가족이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내 가족은 그날 거기서 죽었습니다”가 아니라 “내 가족은 절대로 그날 거기서 죽지 않았습니다”였다.
슬픔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겠다는 기별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수시로 왔다. 눈을 감아도 슬픔은 찾아왔다. 어머니는 실어증에 걸렸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딸이 잃은 것이 미래라면 엄마가 만들어가야 했다.
세상에 남은 사람들은 '연대'라는 단어를 임시 피난처 삼아 짧은 위안을 구하고 할 일을 찾아내야 했다. 어머니는 지하철 내부를 불연재로 바꾸도록 목소리를 냈다.
재난참사로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인간이 맨정신으로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유족들은 “당신도 겪어보세요”가 아니라 “당신은 겪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이것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의 의미다. 엄청난 자제심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리를 바꿔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그 일을 겪었다면….’
어머니는 해바라기가 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꽃이 좋다고 한다. 해바라기 자수를 놓는 동안만이라도 어둠을 피해 빛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숨 쉬었을 모습을 떠올리니 진심으로 마음이 아파왔다. 그 순간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며 생각하고 계셨으리라.
하쿠나마타타. 이 말을 한 사람이 딸의 뼈를 만진 손으로 찬란한 해바라기를 수놓았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을 줄 알았다. 나는 그토록 깊게 슬퍼한 사람이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놀란다. 슬픔과 아픔이 경이롭게 변한 말, 하쿠나마타타.
비록 온전하지 않더라도 작은 기적에 행복해하는 한 아버지의 사연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담담한 고백을 읽어 내려가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단순히 고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그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은 경건함을 넘어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범주이다. 희망 하나 남지 않은 크나큰 상실감 속에서 어떤 원동력이 그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주었을까.
이렇게나 슬픈 세상 속에서 한 줄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기쁜 말.
그럼에도 힘든 삶을 계속 버티며 살아가게 해주는 말.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작가의 물음에 나도 깊이 생각해 본다.
나를 살게 하는 말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