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 클레이하우스
나는 가끔 로또 1등에 당첨되어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뭘 하면서 살면 좋을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할 때가 있다. 내 드림카였던 A사의 아이보리빛 컨버터블 뽑기, 1등석 타고 세계일주하기, 수영장이 딸린 으리으리한 단독주택을 지어서 지인들과 파티하기 등 주로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고 싶은 것들이 달라지지만 마지막엔 주로 변함없이 머릿속에 그리는 장면이 있다.
1) 제주도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 근처 마을. 볕이 잘 들고 강아지가 아무런 걱정 없이 뛰노는 마당이 넓은 집
2) 귤나무와 꽃이 만개한 정원을 가꾸고 매일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실컷 바다를 구경하다가 평상에 드러누워 낮잠 자기
3) 손님이 오든 말든 망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나만의 작은 서점을 취미로 운영하기
4) 취미로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고 나만의 작업실 만들기
제주도의 단독주택, 식물, 서점, 책, 커피, 주변의 좋은 지인들, 소소한 대화들.
나열하고 보니 강남 한복판의 삐까뻔쩍한 건물도 아니고 요트나 전세기 소유 같은 대단한 플렉스도 아니기에 로또 당첨자의 바람치고는 시시한 소원이지만 난 오래전부터 이런 잔잔하고도 평화로운 삶을 꿈꿔왔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화려함보다는 시간이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한량 같은 삶을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파이어족으로 은퇴하여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여유로운 교외 어딘가에서 내 손으로 직접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다. 그리고 틈틈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내 취향이나 관심사가 무엇인지 더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동경했던 것들을 이 소설 속 주인공 영주가 대신 이루고 있어 모처럼 이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내가 영주가 된듯한 기분이 들어 대리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었다.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장소는 직장이나 집일 것이다. 특히 통근시간이 1시간이 넘어가는 사람들은 더더욱 집보다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직장에서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그 사실이 참 슬프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진정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면의 소리를 듣고 사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나를 긍정할 수 있는 일을 찾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최근 이 소설과 결이 비슷한 드라마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마침 나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찰나였는데 제목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이끌리듯 보게 되었다.
여름(설현)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회사에서는 기껏 힘들게 다 해놓은 프로젝트 성과를 여우 같은 상사에게 빼앗기고 팀장에게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리저리 치이는 나날을 보내다 맞이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 지옥철에서 급하게 내리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엉뚱한 역사에서 내리게 되었고 지옥철은 야속하게 떠나버린다.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던 순간, 역사 밖에 만개한 벚꽃이 눈에 들어온다. 흐드러진 벚꽃을 보며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 여름은 퇴사를 결심하고 시골로 내려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찾기로 한다.
"서울과 반대편으로 가는 평일 오전의 지하철은
같은 세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산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어쩌면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남들과 다른 반대쪽을 향해 가면 좀 더 한산하고
좀 더 조용하고 평화롭지 않을까?"
회사 사무실 내 자리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맞은편 고층 건물에 정신과가 마주 보고 있다. 정신과 이름에 '숲'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가끔은 꽤나 편안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는 날 유리창 너머로 그 @@@ 숲 정신과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곳이 궁금할 때가 있다.
'저기 들어가 상담을 받으면 과연 마음이 편안해질까? 살아가는데 해결책을 제시해 줄까? 숨통이 트이는 방법을 알려줄까?'
입꼬리에 냉소가 흐르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현타가 오는 순간 애써 시선을 다시 모니터로 돌린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 답답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어쩌다 연차라도 쓰는 날에 평일 거리를 걷노라면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걷는데 문득 은퇴하기 전까지 한낮의 이 많은 시간들을 꼼짝없이 사무실에 갇혀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펑펑 쓰는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여름이의 시골생활은 두 번째 대리만족 그 자체였다.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남는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썼다. 낮에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실컷 읽고 걷고 싶으면 걷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같은 새벽이라도 하루 끝의 새벽은 우울하지만 하루 시작의 새벽은 상쾌하다.
같은 새벽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다르다.
일을 마치면 여덟 시 반 그 후로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다.
적게 일하고 시간을 번다.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나와 있다.
나는 그게 너무 길어서 이렇게 줄여 보았다.
행복, 모자람이 없는 상태로.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보았다.
충분하다.
정말 충분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지만
나는 지금 충분하다.
살아보자.
누가 더 선정적이고 가학적인 장면으로 작품을 이슈화하는가에 대한 피로도가 날로 높아지는 요즘이다. 그에 비해 이 소설과 드라마는 비교적 큰 갈등이나 클라이맥스 없이 잔잔하게 전개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보는 내내 잔잔한 위로와 편안함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두 작품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각자의 고민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영주는 비록 사람들이 종이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서점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장소라고 굳게 믿었기에 그 공간을 개척했고 그곳이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애쓴다. 예스맨이었던 여름이도 그동안 자신이 오래 유지했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살면서 그 틀을 깬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이고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들여다보고 다가올 미래의 방향을 올바르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한 걸음 쉬어가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만들어줄 선택.
오랜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았을 때 차선이 아닌 최선의 길이었다고 굳게 확신할 수 있는 선택.
그 올바른 선택의 방향을 위해서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민준은 단순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영화 속 인물들은 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거였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등장인물의 선택에 있었다. 그렇다는 건 우리 삶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 삶을 이끄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선택인 것이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민준은 문득 자기 역시 그때 포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을 벗어나겠다는 선택.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보면서도 이런 생각은 이어졌다. 세이모어 번스타인 역시 피아니스트의 삶을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가 아닌 삶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화려한 명성을 쌓던 세이모어가 피아노를 치는 대신 피아노를 가르치고자 선택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여든 살이 넘은 세이모어는 그때의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봤을 때만 해도 민준은 세이모어 번스타인처럼 자신 역시 그때의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민준에게 필요한 건 이런 다짐이 아니었다. 민준에게 지금 필요한 건 용기였다. 자신에게 실망한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한 선택을 밀고 나갈 굳은 용기.
흔히들 1월 1일엔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올해는 무엇을 이루리라 다짐하곤 한다. 나도 매년 작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올해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매년 맞이하는 새해인데 한해쯤은 잠시 치열함을 내려놓고 셀프 안식년을 가져볼까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꾸역꾸역 달려왔던 나에게 제일 가혹하게 대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충분히 잘해왔다고 격려하고 싶다. 그리고 한해쯤은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나다움을 찾는 시간을 가져볼 참이다. 이 쉼표 같은 시간이 일상에 지친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새해 선물이 되지 않을까.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나를 위해 일을 하니 대충대충 일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민준 씨는 휴남동서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혹시, 민준 씨를 잃어버린 채 일하고 있지는 않나요?
*사진출처: ENA, Genie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