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결코 혐오스럽지 않은 마츠코들을 위하여
늘 제목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마츠코가 혐오스럽다는 건지, 그녀의 일생이 혐오스럽다는 건지 '혐오스럽다'는 형용사가 대체 무엇을 수식하는지를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정답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태ㄹㅇ어나 미안해할 사람은 없어요
세상에 태어나 미안해할 사람은 없어요세상에 태어나 미안해할 사람은 없어요
작년에 극장에서 재개봉했다는 이 영화는 익히 유명하지만 보고 있자면 사실 기분이 썩 좋아지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혼자 고독을 즐기고 싶은 날 맥주 한 캔을 까놓고 보기에 적합하다. 솔직히 초반부에는 '좀 이상한데? 지금이라도 그만 볼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들지만, 영화가 끝나고 스크롤이 올라갈 때쯤엔 소매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마음이 동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웃기고, 슬프고, 안쓰럽고, 다채로운 참 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이다.
일본 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는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방불명되었던 고모 마츠코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으니 유품을 정리하라는 부탁이었다. 고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쇼는 그녀의 집을 정리하며 주변사람들로부터 마츠코의 기구한 일생을 접하게 된다.
마츠코는 원래 능력 있는 교사였다. 그러나 제자가 일으킨 절도사건을 뒤집어쓰면서 어처구니없게 해고를 당하게 되고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사랑했던 남자친구의 자살을 목격하고, 그와 라이벌이었던 한 유부남에게는 불륜상대로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이후 호스티스의 삶을 살기도 하고 배신을 당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 감옥에 장기간 수감되기도 한다. 출소 후 자신을 해고당하게 만들었던 제자가 조직폭력배가 되어 나타나 다시 엮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또 한 번 출렁이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치면 '억까'라는 게 이런 삶이 아닐까 싶다. 미치지 않고서야 못 견딜 것만 같은 삶이다. 딱 봐도 비참하고 우울한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리는데 난데없이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색감의 장면들을 춤과 노래를 곁들인 뮤지컬 형식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 포인트에서 "응?" 하고 고개가 갸우뚱하면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것 같은데, 결론은 '참고 보길 잘했다'였다. 오히려 두 번째 시청할 때는 나도 모르게 마츠코를 따라 그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그녀의 비참한 인생 스토리와 걸맞지 않게 몸이 절로 들썩이는 노래가 상반되는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오히려 이질감이 들지만 그 이질감이 오히려 비참함을 증폭시키는데 제대로 한 몫한다.
<날 좀 봐주세요>
마츠코는 생은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어릴 적부터 허약해 누워만 있는 동생에게 부모의 관심이 쏠렸기에 그녀는 늘 뒷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에 어린 마츠코는 아버지와 광대의 쇼를 보게 된다. 동생이 아픈 이후로 한 번도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한 마츠코는 자신이 광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따라 하자 아버지가 처음으로 피식 웃는 모습을 보고 행복해진다. 그날 이후로 마츠코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싶을 때면 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마츠코가 제일 안쓰러운 순간이었다. 부모에게 온전한 사랑을 구걸하려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그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뿐이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대화가 없던 마츠코는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와 깊은 대화로 교류하는 대신 그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아버지는 그저 미소로만 화답할 뿐이지만 마츠코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였다. 겉보기엔 우스운 모습으로 비쳤지만 나에겐 그 표정이 아버지에게 '나 좀 봐주세요'하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아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이런 유년시절 환경이 마츠코가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타인으로부터 애정을 갈구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녀의 가출 후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접하고 몰래 집으로 돌아가 발견한 아버지의 일기장은 매일같이 '마츠코 오늘도 연락 없음'이라는 말로 끝맺어 있었다. 뒤늦게 그걸 본 자식의 마음이 얼마나 죄스러웠을까.
후에 나이가 들어 마츠코의 정신이 이상해진 후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낙서를 벽에 미친 듯이 써 내려가는데, 자신으로 인해 해체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이 뇌리에 깊이 박혀 정신이 온전치 않음에도 그 말만은 진심으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되었다.
마츠코의 일생은 처절하게 외로웠다. 조직폭력배인 남자친구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혼자인 것보다야 낫지'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정상적이라고 보진 않았지만, 마츠코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걸 표현하는 대사였구나 싶어 좀 더 주체적으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었더라면 그녀의 삶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결국 폐인이 되었지만 환상 속에서 마츠코는 동생의 머리칼을 다듬어주며 다시 희망을 갖고 잘 살아보려 다짐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불량소년들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시궁창 같았던 삶에서 수없이 흔들리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았는데, 그녀의 마지막을 그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선택했다는 사실이 나를 분노케 했다.
평생을 남자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일방적인 사랑을 퍼주었지만 결국 그녀를 구해준 건 남자가 아닌 오래전 친구의 격려였고, 여동생과의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이웃에게 '혐오스런 마츠코'라 불리며 손가락질받았지만, 그 삶도 들여다보면 남들이 알지 못했던 희로애락이 숨어있었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딘가 이 세상에 있을 마츠코들에게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서 미안해할 사람은 없다고."
세상의 모든 마츠코들이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 영화의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수식어의 위치를 이렇게 바꾸는 게 어떨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아닌, 마츠코의 '혐오스런 일생'으로.
어릴 땐 누구나 자리 미래가 밝을 줄 알아.
하지만 어른이 되면 자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괴롭고, 한심하고, 열받고,
그런 걸 전부 네 탓으로 돌리고.
내가 비겁했어. 네 탓이 아니야. 다 내 탓이야.
난 알고 있었어.
이렇게 사는 게 시시한 건 내가 너한테 이래라저래라 말만 하고
나 자신은 아무 행동도 안 해서야.
있잖아, 인간의 가치란건 누구에게나 뭘 받았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뭘 해줬냐는 거겠지.
나 생각 많이 했어.
내가 널 위해서, 이 세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