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진실의 흑역사] 톰 필립스 | 윌북

by 와사비찡
"여배우 A양. 제작간담회에서 벌어진 일이.... 충격"


요즘 인터넷 포털의 연예부 기사 중 열에 하나는 이런 제목이다. 호기심에 클릭해 보면 '이런 걸 기삿거리로 쓴다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알맹이 하나 없는 낚시성 기사에 또 한 번 낚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터넷 언론들은 클릭 전쟁 중이다. 기사의 조회수가 곧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에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들만 줄줄이 뽑아낸다. 정확성보다 자극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악의 없는 하얀 거짓말을 한다. 가령 "이 회사에 뼈를 묻겠다"거나 "영자 씨, 오늘 열 살은 어려 보이네" 같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나쁜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사회생활을 잘 해나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로 치부된다.


반쪽짜리 진실과 거짓 정보에 둘러싸인 채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뉴스를 보고 댓글들을 훑어본다. 분명 같은 기사를 읽는데도 A집단과 B집단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된다. 탄핵 정국 이후 어느 때보다 정치적 분열과 혐오가 넘치는 요즘 우연히 접한 이 책의 제목과 목차가 너무 흥미로워서 바로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개소리 순환고리]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뭔가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C에게도 전한다. C는 의심하고 있다가 어느 날 B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이 사람도 같은 말을 하네’ 하면서 믿는 쪽으로 돌아선다. C는 D에게 그 흥미진진한 소식을 전하고, D는 다시 A에게 같은 소식을 전한다. A는 ‘역시 내 생각이 옳았군’ 하고 더욱 확신한다. 그러는 동안 E, F, G, H, I도 똑같은 얘기를 복수의 사람에게서 들으면서 그 정보는 상식이 되기에 이른다. 이때 J라는 사람이 소심하게 “정말 그게 맞아?” 하고 질문을 던지지만, 나머지 알파벳들에게 이단으로 몰려 신속히 화형 당한다. 또는 가까운 예로, 신문에서 위키피디아 내용을 베껴 쓰고, 그 기사가 위키피디아에 다시 근거로 제시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으로 가짜뉴스가 들불 번지듯 순식간에 확산되는데 작가는 이를 '개소리 순환 고리'라고 표현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매우 그럴싸한 표현이다.

더군다나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인스타그램, 틱톡, X(트위터) 등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친구에게 공유하는 건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정보의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채 그저 흥미에 의해 정보는 왜곡되어 재생산되고 사실로 여겨진다.




[펜은 칼보다 날카롭다.]

1734년 《크라프츠먼》은 벌써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 한 가지를 간파하기에 이른다. 언론이란 서로 마구 베끼는 습성이 있어, 앞서 설명한 ‘개소리 순환고리’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릇된 정보가 한번 어느 신문에 실리면,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가 신속히 반박하지 않는 한 나머지 신문에도 모두 실리는 게 보통이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언론업이 흥하면서 사태는 더 악화되었다. 영국과 식민지 사이에 정보가 교류되면서 서로 뉴스를 베껴 쓸 기회는 더 많아졌지만, 바다 건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영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서로에 대한 터무니없는 루머와 순전한 날조가 판을 쳤고, 그것이 또 상대편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를 거듭하면서 그때마다 조금씩 더 부풀려졌다.


2024년 12월 3일. 한국에서는 비상계엄 선포가 내려졌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탄핵되기까지 국민들 역시 둘로 나뉘어졌다. 각자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따라 언론의 정보를 입맛에 맞게 수용하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사실이 검증되지 않은 뉴스 또한 일부 매체를 통해 전 국민에게 보도되었는데, 한 인터넷매체는 '12·3 비상계엄 당일 계엄군이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을 체포했다'라고 보도했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인용되었고 실제로 저 주장을 사실인양 언급하는 댓글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결론적으로 해당 기사는 가짜뉴스인 것으로 밝혀져 해당 글을 작성한 기자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지만, 기사가 허위로 판명 나기 전 헌법재판소에서 한 변호사가 본인 주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기사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거짓의 진실화라니.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누구보다도 말의 책임을 느껴야 할 언론인이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카더라 뉴스를 작성하고 이를 필터링 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펜은 칼보다 날카롭다고 하는데 언론인이라면 기사 한 마디에 좀 더 책임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아가 좀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한 매체를 접하며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확증편향에 빠진다면 그저 유튜브가 정해주는 알고리즘대로 자신의 세계관이 정립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유튜브가 정해주는 알고리즘대로 생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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