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천선란 | 허블
도심 한복판에 바다와 정글이... 짜릿한 '한화 아쿠아플라넷 일산' 오픈
수족관+동물원 신개념 아쿠아리움... 바다코끼리·재규어 등 신비의 투어
-2014.04.10 노컷뉴스 발췌
10년 전 일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쿠아리움이 오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해양 생물만 헤엄치는 평범한 아쿠아리움이 아니라 무려 재규어를 볼 수 있는 신개념 아쿠아리움이란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희귀 생물과 조우하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홍보 기사에 성인인 나조차도 그곳이 궁금해졌다. 초원에서나 볼법한 재규어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꽤나 구미가 당긴 것이다.
절호의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달음에 달려갔건만, 내겐 그 첫 만남이 다소 충격적인 잔상으로 남아있다. 처음에는 별 움직임이 없는 듯 보였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나무 위에 가만히 걸터앉아 있기만 한 모습에 살짝 김이 샜다. 실망하려던 찰나 사육사가 관중들의 마음을 알아챈 걸까. 기다란 막대기로 큰 고깃덩어리를 건네주었고, 먹이를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엄청난 양의 침을 뚝뚝 흘리며 사냥감을 물어뜯어 잽싸게 해치워버리는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 나를 비롯한 구경꾼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그날 찍은 핸드폰 속에 사진이 뒷모습만 남은 걸 보니 너무 신기한 나머지 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넋 놓고 구경만 했나 보다. 분명 진귀한 구경이 틀림없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돌아서서 그곳을 빠져나가는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당시 재규어가 움직일 수 있는 면적이 그리 넓지는 않았고, 두꺼운 유리벽이 아주 높게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 넓지 않은 활동 반경에 움직임이 많지 않던 재규어 한 마리.
초원을 마음껏 뛰놀았을 너는 어쩌다가 앞뒤가 꽉 막힌 이 공간으로 옮겨지게 된 걸까?
이제 너는 네가 원래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두꺼운 유리벽 안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인 걸까?
그리고 몇 년 후 그 재규어는 유리창에 머리를 쿵쿵 들이박는 정형행동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말을 타고 다니는 경기를 열게 됐나요?"
"재미있으니까."
"누가요? 말이요?"
"아니, 인간이."
"인간이 재미있는데 왜 말이 달리나요? 그럼 인간이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인간 대신 AI 로봇이 대체해 주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다. 경마장을 달리는 경주마 위에는 사람 대신에 잘 설계된 휴머노이드 로봇이 앉아 기수 역할을 한다. 말에 부담을 주지 않고 바람의 저항을 덜 받을 수 있게 최적화되어 설계되어 있으며, 만약 낙마한다고 해도 그깟 망가진 로봇쯤은 새 로봇으로 교체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중 관리자의 실수로 인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로봇이 하나 있다. '투데이'라는 말의 기수였던 그 휴머노이드 로봇은 다른 로봇과 달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경마 시합 도중 힘겨워하는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낙마하여 폐기 대상이 된다. 폐기 처분될 운명에 처한 그 로봇을 연재라는 고등학생이 데려와 고쳐주고 '콜리'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한 집에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 폐기 처분될 운명에 처한 생명이 또 하나 있다. 로봇 '콜리'와 교감했던 경주마 '투데이'다.
투데이는 한 때 제일 잘 나가는 경주마였지만, 너무 혹사당한 탓에 예전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여 퇴출 후 안락사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경주마로써 그 쓸모를 다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죽었다. 복희가 말했던 이 행성에서의 동물들의 위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약회사나 화장품회사에서는 신약개발, 제품 연구를 위해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동물 실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따로 길러지는 생명들도 있으며, 대부분은 실험 후 안락사된다. 인간이 정해놓은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한 동물들은 스스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선택할 권리를 가질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그건 누가 정한 기준일까.
“동물에 관심 많다고 들었어요.” “내가 말했어.” 가만있던 은혜가 고개를 빠끔 내밀며 복희의 말에 사족을 붙였다. 서진은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쑥스러운 듯 뒷목을 벅벅 긁었다. 수의사 앞에서 동물 사랑을 말하기가 민망한 거였다. “이걸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볼 때 사랑스러워하는 거니까요. 근데 이런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누구나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동물을 키우면서도 동물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요. 함께하는 동반자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동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유행에 따라, 필요에 따라.” “경마장에 있는 말도 그럴까요?”
비단 경마장의 말뿐만이 아니다. 동물원에 갇혀 한평생 사육장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동물들, 의지에 관계없이 투우 경기에 출전해야만 하는 소, '그라인드'라 불리는 돌고래 사냥 축제에서 떼죽음 당하는 돌고래들...
인간들은 유희의 한 가지 방식으로 동물을 소비한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그 권리는 누가 부여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기에 눈앞에서 재규어를 본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게 아닐까 싶다.
"동물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네!"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겠지만 사실 동물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반려견을 기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출근 후 아무도 없는 빈 집에 하루 종일 홀로 있을 강아지를 생각하니 언뜻 데려올 수가 없어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마음먹은 것이 전부다. 책임질 수 없으면 시작하지 않는 것. 딱 이 정도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인간과 동물이 종속 관계가 아닌 공존하는 관계로 살아갈 순 없는 것일까.
무엇이든 척척 대답해 준다는 챗 GPT에게 고민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친구도 육아를 하며 '이게 맞는 길인지' 고민되고 힘들 때 종종 GPT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위안을 받는데, 실제로 AI의 '잘하고 있다'는 위로가 힘이 되어 눈물이 왈칵 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물론 AI가 진심을 담아 위로한 것은 아닐 테고,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며 내뱉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위안이 된다고 했다. 이제 인간이 로봇에게 위로받는 세상이 온 것이다.
사실 나는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미래 일자리에 큰 변화가 올 거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이미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물류창고에서 로봇이 24시간 물품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에서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얼마나 달라질까? 어릴 적 상상했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모든 집안일을 처리해 주는 기계가 곧 발명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급격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높은 효율성과 빠른 속도에 맞춰져 있다. 기술이 발전한 만큼 불편한 것은 더 이상 참지 못한다.
그렇지만 콜리와 연재는 다르다. 폐기 직전의 로봇과 그런 로봇을 살아있는 생명처럼 대해준 최초의 인간은 안락사를 앞둔 투데이가 "천천히" 달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인간과 동물, 로봇의 연대감.
SF소설이지만 찐한 사람 냄새가 나는 이 소설처럼 세상이 바뀐다 하더라도 부디 무엇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미래가 오기를.
복희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기술의 발달과 멸망의 속도가 같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매일 뉴스에 나오는 새로운 기술과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만, 사라져 가고 학대받는 동물들에게 관심을 나눠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