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 살림출판사
이 책은 오묘하다. 한 인간의 처절하고도 지독한 외로운 생을 교차 편집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그 속에 로맨스도 있고 미스터리도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자연의 모습을 마치 영상으로 감상하는 듯한 작가의 섬세하고도 유려한 묘사가 압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 온 과학자라서 야생동물 관찰을 위해 오지에서 몇 년간 생활했다고 한다. 70대가 돼서야 이 소설을 처음 발표했다는데 본업의 단단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부캐의 도전이 이만하면 성공적인듯하다.
팔짱 낀 야산의 주름마다 구름이 나른하게 게으름을 피우다 파랑처럼 솟구쳐 스르르 흘러 사라졌다. 구름의 촉수가 뒤틀려 나선으로 꼬이더니 기온이 높은 협곡의 윤곽을 훑으며 마치 물기 많은 수렁을 따라가는 안개처럼 굴었다
수평선과 지평선의 땅에서는 정시에 해가 지고 달이 뜬다. 그러나 지형이 뒤섞인 이곳에서는 해가 봉우리 정상에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걸려 있다가 한순간 골짜기 너머로 툭 떨어지는가 하면, 체이스의 트럭이 다음 구릉을 오를 때 다시 톡 튀어나오곤 했다. 산맥에서는 언덕 어디쯤 서 있는지에 따라 일몰 시각이 달라졌다.
카야의 습지처럼 개펄과 망망한 풀밭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니라 밝고 탁 트인 사이프러스 숲 사이로 맑은 민물이 시야가 닿는 곳까지 흘렀다. 수련과 초록색 물풀을 등지고 선 순백의 왜가리와 학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소파처럼 널찍한 사이프러스 가지에 걸터앉아서 두 사람은 피멘토치즈 샌드위치와 포테이토칩을 먹으며 발밑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보고 활짝 웃었다.
사실 몇 달 전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이 작품을 처음 접했다. 그때는 이렇게나 유명한 작품인 줄 몰랐는데 내 안목이 좀 떨어지는 건지 전개가 살짝 루즈한 감이 있어서 끝까지 시청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책으로 다시 접하게 되었고 평점이 너무 좋아서 궁금한 마음에 소설은 완독을 하고 말았다.
서정적인 분위기로만 쭉 이어지는 구성이었다면 난 영화와 마찬가지로 책도 중간에 덮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살인 미스터리에 범인이 너무나 궁금해서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제 책은 완독을 했으니 영화로도 끝까지 시청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과 영화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이 작품을 누릴 수 있는 좋은 포인트가 될 것이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책을 덮는 순간까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연에 대한 다채로운 묘사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다양한 표현을 이렇게나 섬세하게 기술하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작가가 묘사하는 배경을 상상하며 읽어나가는데 생각만으로도 너무 예쁜 장면이 있어서 밑줄을 그어둔 부분이 있다. 책을 읽고 영화 스틸컷을 보다 보니 아마 내가 하이라이트를 했던 문장이 아마 영화에서는 위 사진처럼 묘사된 게 아닐까 싶다.
주인공 카야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해안습지의 낡아빠진 집에서 혼자 살아간다. 무능한데 알콜중독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아버지로 인해 엄마와 언니 오빠들은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난다. 6살인 카야는 가출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기에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홀로 근근이 살아간다. 해안습지에 위치한 버려진 집들은 가난한 이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카야를 늑대인간이라며 멀리하고 무시한다.
글자도 배우지 못하고 사회화가 불가능한 탓에 오직 습지만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던 카야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처절하게 혼자였던 카야 앞에 테이트라는 다정한 남자가 나타나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며 인간으로서 온기를 느끼게 해 준다. 카야가 외부 세상과 연결되는 첫 번째 순간이다. 테이트는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였지만 대학 진학으로 인해 잠수이별을 하고 카야는 또다시 혼자 남겨진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마을의 인기남 체이스가 늪에서 주검으로 발견되고, 카야는 살인 혐의로 구속된다. 체이스는 카야의 두 번째 사랑이다. 테이트가 떠난 후 그 빈자리를 채웠다. 사람들은 마녀사냥이라도 하듯 카야가 범인이라고 수군거린다.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배척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편협한 관점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간의 단면이 엿보였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저 버림받은 아이였습니다. 유기되어 혼자 늪에서 배고픔과 추위와 싸우며 살아남은 어린 소녀를, 우리는 돕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하나뿐인 친구 점핑을 제외하면 우리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 어떤 집단도 그녀에게 음식이나 옷가지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녀에게 늪지 쓰레기라는 딱지를 붙이고 거부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캐서린 클라크를 소외시켰던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소외시켰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와 달라진 건가요?
얼마 전 뉴스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정부에서 전국 미등록 아동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는데, 최소 54명은 행방도 확인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한국 국적을 갖지 못한 이주민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부모의 연락두절, 혹은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이들이 포함된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면 기본적인 교육은 물론이며, 병원진료나 사회보장 혜택 등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될 수밖에 없다. 태어났지만 기록이 없는 존재들은 오늘도 사회 속에서 유령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는 개인의 책임일까 사회의 책임일까?
분명 이 순간에도 삭막한 도시 속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어딘가에서 처절한 외로움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살아내는 것이 아닌 버티는 삶. 그럼에도 굳건히 살아내라고 말하고 싶다.
주변에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와 관심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따라 번뜩 귀에 꽂히는 노래가 있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친 작은 존재들에게 이 노래를 가만히 들려주고 싶다.
당신도 언젠가 가재가 노래하는 평온한 곳에 닿는 순간이 오길 바라며 부디 오늘도 안녕하기를.
♬ 윤하 - HOME
매일 치열하게 살아 올라서려 했던 곳
그곳엔 내가 없었지
돌아가기엔 참 멀고 다시 걷긴 아득해
한참을 멈춰있던 날
불안함 가득한 뒤척임 쉴 곳이 없던 나의 집
버티고 버텨낸 시간들
누구나 다 그런 순간을 안고 살아
나를 안아주고 감싸주며 말을 했어
모든 게 참 쉽질 않아 그냥 되는 게 없지
그런데 네가 있어서 돌아갈 곳이 있는 난 강해지기로 했어
그래 난 네가 있어서 한 번 더 해볼 용기를 내
나를 믿어 보기로 해 너에게 보여주려 해
너는 언제나처럼 잘하고 있어
내게 눈 맞추고 빛이 나게 웃어주네
세상이 언제라도 나를 버린다고 해도
상관없지 I'm Home I'm Home
,
그런데 네가 있어서
네가 있는 곳 나의 집
*사진출처: 소니픽처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