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성해나 | 창비
요즘 핫하다는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읽기 전 워밍업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왠지 이걸 먼저 읽고 넘어가는 게 순서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소설의 첫 장면은 기하를 찍은 사진에서 시작해 재하가 찍은 사진으로 막을 내린다. 둘은 이름이 비슷해 친형제 같지만 사실 부모님의 재혼으로 만난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이다. 기하는 생각지 못하게 등장한 동생이라는 존재가 낯설어 재하가 넉살 좋게 다가오는 모습이 왠지 부담스럽기만 하다. 기하의 새어머니는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부모의 부재로 인해 그 마음을 알기에 기하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사춘기인 기하는 뾰족한 가시 달린 두더지처럼 새어머니를 밀어낸다. 새어머니의 사랑에 고마움보다는 낯간지러움과 거부감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기하와 그런 형의 태도가 못내 섭섭한 재하가 느끼는 감정을 1인칭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전달한다. 형제의 가감 없는 속마음을 들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네 가족의 빛바랜 가족사진을 찬찬히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인데 가족이 아닌, 그렇다고 가족이 아닌 것도 아닌.
밀도가 깊지 않은 형제에겐 아직은 서로가 그런 존재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면 무심코 내뱉는 날카로운 말들과 짜증 섞인 말투가 늘상 주고받는 일상의 대화쯤으로 치부되겠지만,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모르는 새 가족에게는 상처로 다가왔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배려가 당연한 것이라고 느끼지 않았기에 별생각 없이 챙겨주는 마음도 받는 입장에서는 고마움을 넘어 빚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동생의 보호자로서 병원에 같이 동행하는 일상적인 순간까지도 말이다.
형 쓸데없이 귀찮게 하지 마라. 거기까지 따라가 주는 것도 감사한 기라. 어머니는 밑천 없이 새아버지와 합가한 것을 두고두고 죄스러워했고, 새아버지나 기하 형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 못 박곤 했습니다. 어렸지만 저도 어느 정도는 체감했던 것 같습니다. 기하 형이 보호자로 매주 병원에 동행하는 것이나 새아버지가 대주는 병원비가 일종의 채무와 같다는 것을요. 혈육 사이라면 자연스러울 어떤 책임이나 보살핌이 저와 그들 사이에선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요.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기하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집에 거의 오지 않는다. 집은 불편한 존재이니까. 그렇게 또 서서히 가족과 멀어져 갔다. 그러나 이 가족의 관계는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난폭한 재하의 친부가 불쑥 찾아와 협박하는 일이 잦아지는 바람에 새로운 가정은 파탄 나버렸고, 이 소식을 알지 못한 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30대가 된 기하는 로드뷰에서 우연히 재하와 새어머니를 보고 그곳을 찾아간다. 어른이 된 재하에게서는 어릴 적 붙임성 좋고 서글서글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삶에 지친 탓인지 어릴 적 기하가 그랬던 것처럼 냉소적이고 무심하게 변했다. 기하는 변해버린 동생이 또 낯설고 당황스럽다. 함께 하지 못한 시간만큼이나 변해버린 형제는 무엇을 놓쳐버린 걸까.
입안에서 사탕 조각을 굴리며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재하에게 해주어야 했을 말들을 뒤늦게나마 중얼대보았다. 잘 지냈니, 보고 싶었어, 잘 지냈으면 좋겠다, 미안해 같은 평범하고도 어려운 말들. 이제 와 전송하기에는 늦어버린, 무용한 말들을.
마지막으로 두 형제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 같이 사진을 찍지만 사진은 역광으로 흐릿하다. 헤어짐의 순간 기하는 자신의 명함을 재하에게 건네지만 번호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재하는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엔 형을 이해하기로 한다. 어차피 원래 그래왔던 관계이니까 체념하는 마음으로 이해한다는 걸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 재하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묵인하는 어른이 된 걸까. 형제가 재회한 순간부터 책을 덮는 순간까지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일본에서 새로 정착하려는 재하는 형제의 흐릿한 마지막 사진 뒷장에 편지를 적지만 그 편지는 기하에게 닿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변해버린 그곳. 예전에 네 가족이 함께했던 그 어딘가에 닿을 것이다.
형. 토마토는 과일이게, 채소게. 고명으로 올린 토마토를 가리키며 재하가 물었다. 몰라. 국물에 땅콩 소스가 섞이지 않게 살살 젓가락질을 하며 나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소스가 잘 스며들도록 면을 골고루 섞으며 재하는 답했다.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인데 법적으로는 채소래. 웃기지? 전혀 웃기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표정을 곰곰이 살피다 재하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근데 난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봐. 과일이든 채소든.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야.
피를 나눈 형제든 아니든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겠는가. 가족의 형태는 중요치 않다. 단지 그 구성원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과 편안함, 하나의 연대를 느끼는 것만으로 족하다. 무뚝뚝하지만 매년 아들의 사진을 찍어 거실에 걸어두는 것이 행복한 아버지,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자신과 닮은 아픔을 간직한 아들의 상처를 안아주려 애쓰는 어머니, 사춘기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요동쳐 한 때는 가족을 멀리했지만 성인이 되고 난 뒤 그것이 후회로 남는 형, 새로운 가족과 행복해지려 먼저 다가가지만 맘처럼 쉽지 않은 동생.
네 사람은 모두 표현은 서툴렀지만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럼에도 가족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인 걸 알지만 진심으로 기하와 재하의 행복을 빌어본다.
홀로 남아 사진첩을 넘겨 봅니다. 반만 채워진 사진첩의 마지막 장에 어머니와 새아버지, 그리고 제가 한 프레임에 담긴 사진이 보입니다.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은 그것이 유일합니다. 사진 속에서 새아버지는 저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 이편에서 왔다가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어딘가 숨어 있다 불현듯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어놓는 것들. 사진첩을 덮습니다. 옷장 깊숙이 그것을 감추려다 원래 놓여 있던 자리에 그대로 올려둡니다. 언젠가 또 우리는 그것을 펼치겠지요. 우리 삶에서 가장 돌아가고 싶은 한 순간을 그리면서요. 잘 지내시냐, 건강하시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에게 닿지 못할 안부 인사를 보내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