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리뷰
영상을 재생시켜 놓고 다른 할 일을 하며 봐도 얼마든 이해 가능한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앉은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집중을 요하는 드라마가 있다. 팍팍한 일상도 지긋지긋한데 드라마에서까지 진지한 이야기를 봐야 하나 싶은 사람들의 취향도 물론 존중하지만, 나는 아무리 드라마라도 개연성이 없으면 리모컨의 채널버튼을 돌려버리는 성미를 가지고 있어 개인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스토리를 선호한다.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이란 작품이 딱 후자에 해당한다. 모처럼 먹먹하고 긴 여운이 남는 드라마를 만났다.
빛나는 청춘을 보내며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법한 감정들, 너무나 개인적이고 사소해서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시시하고도 미묘한 생각들을 세심하지만 신랄하게 잘 그려냈다. 매회 드라마를 보면서 작가가 참 섬세하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다가 정주행을 마치고 누가 쓴 글인지 찾아볼 정도였다.
[동경과 질투, 사랑과 원망]
-너는 참 좋겠다.
은중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상연이 전학을 오면서부터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은중은 평범한 아이다. 공부는 썩 잘하지만 얼굴도 평범하고 반지하 집에 살고 있다. 선생님은 상연이를 장관의 손녀라고 소개한다. 심지어 은중이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은 알고 보니 상연이의 엄마다. 상연이의 집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은중이는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부잣집 딸에 전교 1등인 얼굴도 예쁜 상연이. 보통의 아이는 아닌듯싶다.
둘의 시작은 삐끗했지만 점차 친구가 되어간다. 그러나 상연이 친오빠의 죽음 이후 둘은 연락이 끊겼고, 그의 영향을 받은 두 사람은 20대가 되어 같은 대학 사진 동아리에서 마주한다.
불행한 가족사로 세상과 단절되어 내면의 상처가 켜켜이 쌓인 상연이는 죽은 오빠의 ID로 접속한 채팅방에서 인생의 구원자를 만난다. 그 구원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상연이를 다시 세상밖으로 꺼내주었다. 그렇게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인간으로서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생겼지만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이미 은중이의 남자친구란다.
좋아하는 마음을 삼키고 20대를 함께 했지만 결국 사이가 틀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둘은 30대 직장인이 되어 같은 업종인 영화사에서 일하면서 또다시 마주한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으로 인해 사이가 더 틀어지고 단절되었지만, 40대가 되어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된 상연이 느닷없이 나타나 은중에게 자신의 죽음에 동행해 달라고 한다.
[미워하고 사랑하는 사이]
은중의 입장에서 상연이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엄친딸이다. 기를 쓰고 노력해도 상연이의 능력치는 한참 저 위에 있다. 상연이를 볼 때면 태생적으로 따라갈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 들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대신 은중이는 단단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 의리 있고 주변을 잘 챙기는 타입이라 은중이를 좋아하고 챙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고민을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 덕분에 막히는 일이 없다.
그때였다 영원히 이 아이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예감한 건
상연이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기적이고 쌀쌀맞은 구석이 있어 사람들이 다가가기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다. 상연이 구원자라고 느꼈던 20대의 김상학(오명달)조차 상연이는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할 정도이다. 어린 시절 오빠의 죽음 이후 가족과도 벽을 쌓았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스스럼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은중의 모습을 보며 가족에 대한 상실감에 괴로워한다. 남들에겐 당연한 사랑이 본인에겐 가장 힘겨운 과제다. 사람들은 다 은중이만 좋아한다. 엄마도, 오빠도, 나의 구원자도. 노력으로 쉽게 바꾸기 힘든 인간관계로 인해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 괜스레 측은함이 느껴지고 그 서사와 감정에 수긍하게 된다.
그래서였다 너처럼 사랑받지 못해서
너처럼은 할 수가 없어서 아낌없이 줄 줄도 받을 줄도 몰라서
너를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나는 힘이 들었다
그래서 파괴했다 너를 파괴하고 싶어서
나를 파괴하고 싶어서
[복잡 미묘한 관계, 그럼에도 나를 지게 만드는 사람]
어릴 때 동화책에서 접했던 이야기들은 모두 권선징악의 결말로 끝이 났지만, 살다 보니 드는 생각은 사람은 선과 악으로만 구분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선망하고 질투 한 번 해보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결국은 은중이 선이고 상연이 악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가지지 못할 바에야 네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상연의 분노가 애처롭고 안쓰러운 이유다. 타인을 파괴하려 할수록 스스로를 갉아먹고 고립되는 것은 자기 자신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건 다 가졌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실한 마음만은 가져보지 못한 그 상실감이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이 둘의 오랜 관계에서는 동경과 질투, 사랑과 원망이 교차한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이 관계에 대해 '결국 나를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했다. 정말 절묘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미워해도 다시 우리를 웃게 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사이. 결국 나를 지게 만드는 사람. 그것 또한 사랑이 아닐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의 사진을 나의 책상 위에 놓을 수 있을 때까지
너에게 인사할 수 있을 때까지
안녕
사랑하고 미워했던 나의 친구 천상연
*사진출처: NETFLIX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