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생일을 쇠는구나?

10월 4일 또는 9월 7일

by 영우천사

10월 4일, 한 사람의 생일로 참 예쁜 날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숫자로 풀어놓으면 1004. 천사이다. 그래서 엄마는 어렸을 때 나를 천사라고 불렀다. 내가 천사라고 하기에는 머리가 커서 낳으실 때 부터 고생을 하셔서, 그리고 어렸을 때 엄마를 힘들게 했어서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데 정작 10월 4일은 의미를 크게 갖는 날이 아니다.


9월 7일. 내가 태어난 해의 10월 4일을 음력으로 바꾸면 9월 7일이다. 우리 집에서는 나의 생일을 포함한 모든 경조사는 음력을 기준으로 쇤다.

엄마 가라사대, "독립하고 나서는 생일을 어떻게 쇠든 상관이 없지만 그 전까지는 음력으로 쇨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지 몇 년 지났는데 아주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사실 이 말을 들었던 시점에서는 이미 음력으로 생일을 쇠는 것에 나 스스로도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말씀이 아주 강렬했던 이유는 엄마의 말씀이 생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던 다른 대화에서 나왔다는 점이었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엄마의 어떤 삶에 대한 가치관 같은 것을 아주 확고하게 인식할 수 있었고, 엄마와 나의 가치관 사이에는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쉽게 넘을 수 없는 어떤 벽이 있었음을 느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엄마의 사상과 가치관에 아주 크게 영향을 받은 엄마의 자식이라는 점을 더욱 확고하게 느끼게 해준 계기였다. 사실 동생은 이번 생일에 앞서 나의 나이를 만으로 세서 스물 다섯 살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왠지 나는 스물 여섯 살로 살아가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이 대목은 엄마가 가장 크게 공감했을 것이다.


음력이라는 것에 대한 지식이 없던 까마득히 어린 시절에는 도대체 생일이 매년 바뀌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음력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생일이 매년 변한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꿋꿋하게 대외적으로는 생일을 10월 4일이라고 했고, 집에서의 생일상은 항상 음력으로 받았다. 지식이 부족했던 어렸을 때에도 무의식적으로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 자체는 구분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생일이 매년 달라진다는 어떤 이상한 사실을 공개하고 싶지도 않았고, 설명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좀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대략 중학생 정도 되었을때 집에 하던 이야기가 생일을 양력으로 쇠고 싶다는 것이었다. 매년 생일이 바뀐다는 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달력에 큰 글씨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적힌 날짜를 놔두고 작은 글씨로 써진 음력을 보는것도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한편, 내가 양력으로 생일을 쇠자고 할 때 마다 엄마는 너가 원한다면 생일을 양력으로 쇠는 것도 고려해보겠다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였는지 내가 포기해버렸던 기억이 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우리 집의 모든 경조사는 전부 음력으로 쇠고 있었고 가족을 포함한 모든 친척들은 나의 생일을 음력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 혼자 바꾼다고 전혀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할머니는 매년 나의 음력 생일에 맞춰서 아빠를 통해 생일을 축하해주셨는데, 내가 그 상황에서 양력으로 생일을 쇠겠다고 선언해도 변하는 것 조차 없었을 것 같다. 아마 그 시점에서 양력으로 생일 바꾸기에 체념했고, 음력 생일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어차피 내가 양력 생일을 쇠는 것으로 바꿀 것을 포기 내지는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알게 된 엄마의 생각을 고려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


와, 너는 생일을 음력으로 하냐?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 내 생일에 이상함을 느낀 친구가 있었다. 작년이랑 생일이 다른것 같아서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다. 생일을 음력으로 쇠는 사람을 처음 본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어른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나와 가족 빼고 생일을 음력으로 쇠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연령대라고 볼 수 있는 학교 선생님들도 음력으로 생일을 쇠는것 같지는 않으셨으니 더욱 그럴만도 하다.


그런데 막상 나이를 더 먹으니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내 주변 친구나 또래가 음력으로 생일을 쇠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그 유니크함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음력 생일은 나에게 있어서 지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말로 내가 마음을 열었고, 많이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음력 생일을 오픈하곤 했다. 그리고 내가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다행이도(?) 음력 생일을 기억해 줬다.


스물 여섯 번째 생일이지만, 온갖 걱정을 한가득 안고 하루를 보냈다. 음력 생일의 시기 상 거의 모든 학창시절의 2학기 중간고사 일정에 근접해 있다 보니 학생이 된 이후로 생일을 편하게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생일 즈음에 걱정이 이렇게까지 많았던 시기는 올해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아무래도 온실 속에서 생일을 쇨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 느껴져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올해 유독 음력 생일이 좀 늦었다. 대체로 양력 10월 10일 ~ 10월 20일 사이로 생일이 들어오는데, 올해는 거의 10월 말이 다되서야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하필 오늘이 아주 추운 날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생일임에도 유독 살을 에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음력 생일은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인데 소중한 인연들과 가깝지는 않아도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불안함 속에 마음이 한 구석이 놓였다.


그렇게 스물 여섯 번째 생일을 약 30분 정도 남기고 쓸데 없는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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