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목은 이게 아니었는데
드디어 중간고사가 끝났다. 한 과목만 혼자서 중간고사를 연휴 끝나고 본다는 엄청난 일정에 힘입어, 남들이 중간고사 끝났을 때 난 연휴에도 PPT 읽고 있었다. 영어 강의라 영어로 된 PPT를 읽는데, 원래부터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진짜 지옥 같은 연휴였다. 영어나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 보면 진짜 많이 신기하고 멋있어 보인다. 마치 완전 다른 세상 사는 사람 보는 느낌이랄까?
시험 기간에 브런치에서 글 좀 쓰라고 알림이 날아왔다. 어디서 보기로는 하도 안 쓰면 메일로 경고가 날아온다던데, 아직 그 선까지 넘지는 않았다. 다시 열심히 써야겠다. 이 글을 처음 쓸 때 제목은 '4학년이 되고 맞이하는 첫 일주일'이었다. 그런데, 학기 초에 워낙 할 게 많다 보니 이 글은 서랍에 처박혔고 '4학년이 되고 첫 한 달 후기'로 제목을 바꿨다가 '그냥 학교 생활 두 달 후기'로 바꿨다가, 결국 연휴 기간에 좀 써 볼까 싶어서 '간만에 찾아온 휴식'으로 바꿨다가 시험이 끝나지 않아서 결국 마지막 중간고사까지 모두 끝내고 '중간고사가 끝났다'를 최종 제목으로 결정했다. 핑계긴 한데, 진짜 바빴다.
시험도 끝났고, 브런치도 글을 쓰라고 독촉을 하니 다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문제는 기억이 안 난다... 꽤 많은 일이 있기는 했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기억이 없다. 잔잔하고 고요하게 사는 사람한테 과거의 일을 꺼내서 뭔가를 쓰라고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데, 괜히 이 주제로 글을 시작했나 싶긴 하다.
개강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직접 만드신 브라우니와 마카다미아(이렇게 쓰는 거 맞나)를 받았다. 어쩌다 보니 학기 초부터 팀플을 포함해서 바쁘게 달리고 있던 시점이라 큰 힘이 됐었다. 이거 쓰려고 사진도 올렸다. 개인적으로 글은 글 자체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글에 사진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거 보여주려고 넣었다. 솔직하게는 사진 잘라서 넣는 게 귀찮아서라는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브라우니를 받으니 어렸을 때 쿠키랑 머핀 굽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해서 그랬는지, 동생이 좋아해서 그랬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렸을 때 주말마다 항상 쿠키랑 머핀을 만들었다. 그런데 엄마가 바쁘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손이 안 가기도 해서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만들지 않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가끔 이럴 때는 돌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브라우니를 받은 이후부터 되게 순탄하게 새 학기가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2024년 처음 복학할 때에 비해서 훨씬 편하다. 학교 다니는 것에 적응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작년에 학교 복학했을 때부터 나를 도와주셨던 분이 주신 선물이니 행운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학기는 법과정치사상 수업을 듣는다. 사실 전공 이수 학점은 다 채워서 들을 필요 없는 수업이기는 한데, 지난 학기에도 다른 과목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마음에 들었고 수업 내용이 재밌어 보였고, 무엇보다 토론과 글쓰기 위주의 수업 방식이라서 마음에 들어서 그냥 듣기로 했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학점을 세탁하려는 목적도 있긴 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로스쿨을 생각해서 법 과목이 있으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개강 전날 교수님한테 메일이 왔다. 두 번째 시간 발표를 맡았으면 좋겠다는 메일이었다. 지난 학기에도 수업을 먼저 들었던 사람들을 발표 앞 순서에 배치했었는데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나마 첫 번째 시간의 발표가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나한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누가 발표 파트너가 되는가의 문제였다. 지난 학기에 같은 교수님의 영어 강의 수업을 들었다. 수업에서 한국인 1명과 외국인 1명의 조합으로 그룹을 만들어 주셨는데, 나와 발표 파트너가 된 외국인 친구가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이 친구는 연락을 하루에 한 번만 받는데, 군대에서도 이렇게 연락을 안 받기는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카톡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발표 대본 쓰는 거 빼고는 전부 내가 준비했던 처절한 기억이 떠올랐다. 심지어 발표 대본도 내가 2/3이나 썼다. 그래서 무조건 발표 파트너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걸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발표 파트너는 이번에 2학년으로 올라온 친구로 당첨되었다. 외국인 친구가 아니라는 점에 한번 안도했다. 그런데 첫 번째 수업 발표자는 지난 학기에 들었던 친구들로 파트너를 맞춰주셨으면서 왜 저한테는 뉴비를 배정해 주시는지?? 다행히도, 정말 잘하는 친구였고 덕분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잘 준비했고 발표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중에 밥 먹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봤었는데 2학년인데도 시간표를 살벌하게 짜 놨다. 수업은 최고지만 학점은 짜신 모 교수님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당하면서도 들을 수밖에 없다는 그 느낌이 뭔지 새삼 실감했다. 나도 그 교수님의 수업을 두 번이나 들었기에.
이번 학기부터 이중전공으로 행정학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행정학과는 악명 높은 수강 신청으로 유명했는데, 진짜 불지옥을 맛봤다. 지금까지 7학기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수강신청을 실패한 적 없고, 심지어는 장바구니 자동 이관이나 추첨이 모두 성공적으로 되어서 6학기 연속으로 수강 신청 당일에 두 과목을 초과해서 눌러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학기는 시작부터 펑펑 터지고 들어갔다. 결국 이 시간표 만들려고 밤을 꼬박 새웠고, 결국 수강 정정 마감 2분 전에 이 시간표를 완성했다.
그동안 수강신청을 거의 올클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비법 중에 하나는 공부에 관해서 나름 취향이 확고한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 학점을 잘 주면 좋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다루는 수업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수업이라면 학점을 박하게 주더라도 악착같이 하라는 거 다 하고 시험 보면서 버티는 편이다. 취향이 이렇다 보니 내가 선택하는 수업은 애초에 정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아서 수강신청이 꽤 수월한 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부분 좋아하는 분야로 맞춰서 듣다 보니 설령 학점을 박하게 주시더라도 그럭저럭 방어가 잘 되는 편이다. 이런 복잡한 취향 덕분에 훨씬 고생도 많이 해보고, 월화수목 1교시 수업도 들어보면서 다시는 이렇게 안 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결국은 취향 따라 수강신청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 또 한 번 놀라곤 한다.
서울살이를 1년 반 가까이 했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맞지 않는 도시이다. 서울에 살아서 좋다고 느끼는 점은 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은 몇 번이나 다시 가도 감탄스럽다.)을 쉽게 갈 수 있는 것, 광주에서 볼 수 없는 커다란 도서관에 가보는 것, 가끔 한강 놀러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서울 살이의 의미를 크게 찾지는 못하고 있다. 정말 학교가 서울에 있어서 서울에 사는 느낌이다. 원래도 내향형이면서 집돌이라 서울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이나 놀이가 크게 와닿지 않기도 하다. 나한테 있어서 서울은 광주에 비해서 딱히 나은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집값 비싸고 물가 비싼 동네이다. 동생은 입만 열면 이런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동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다가도 참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생활한 지 1년 반에 가까운데 아직도 광주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 학교를 떠나서 KTX를 타고 광주송정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숨쉬기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KTX는 한번 예약하려면 전쟁이다. 열차가 적어서 미리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KTX로는 광주를 갈 수도 없고, 광주에서 서울로 돌아올 수도 없다. 광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3주 전에 코레일 앱 들어가서 예약을 해 놓는다. 설령 그때 가서 광주를 가지 않더라도 일단 예매는 해야 한다. 미리 승차권을 구해놓지 않으면 가고 싶을 때 못 가는 수가 있다. 그래서 연휴가 있으면 무조건 한 달 전에 달력에 표시해 놓고 예약해 놓는다. 이 글을 쓰기 전에 6월 현충일 연휴 승차권 예약을 끝냈다. 한 달 전인데도 오후 시간대 열차는 거의 다 매진이다. 매번 예약을 하면서도 매진 속도가 놀랍다. 가는 것도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그런데 승차권 위약금 규정이 조금 강화되었다. 이제는 승차권 취소도 날짜 잘 보고 해야 한다. 사실 위약금 조건이 변경되기는 했어도 지금까지 승차권을 환불할 때는 무조건 며칠 남겨두고 여유롭게 했어서 위약금 기준이 달라져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미묘하게 부담스럽기는 하다.
중간중간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었는데, 하도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기억이 안 난다.
만우절 중짜. 작년 만우절에는 오후 전체가 수업으로 채워져 있었어서 있었어서 중짜를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어쩌다 보니 딱 점심만 비어있는 시간표가 만들어져서 가능한 일정이었다. 뭘 입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광주 내려가보니 교복이 없었다. 집에서 교복을 찾아보던 시점에는 내가 못 찾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교복 물려주기 하면서 졸업하기 전에 학교에 다 주고 나왔던 게 생각났다. 물리적인 공간을 크게 잡아먹는 아이템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집에 교복을 쌓아둘 여지를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었고 졸업하기 전에 있었던 교복 물려주기에 전부 넘겨주고 나왔던 게 나중에서야 생각이 났다. 전 학교에서 입던 과잠을 들고 갈까도 싶었다가 그 과잠마저도 서울 집의 공간을 차지하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어차피 우리 고등학교는 교복에 넥타이가 없어서 간지가 안 나니 교복 입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학교에 떠돌아다니던 도시전설에 의하면 약 10년 전의 선배 학년에서 넥타이로 장난치다가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없어졌다는 소문이 있었고 상당히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믿었는데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짜장면 대신 엽떡 + 허니콤보 조합이었다. 이거 누가 제안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최고의 선택이었다. 엄청 상황에 잘 맞는 신의 한 수 같은 픽이었는데 하여튼 그랬다. 새 친구를 만났다. 되게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학기 겹강이었다. 어쩐지 엄청 낯이 익었었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90%는 이 인형에 대해서 언급하곤 한다. 저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트라이더에서 공식적으로 라인프렌즈와 콜라보를 해서 인형을 만들었는데, 평소에 카트라이더에 뼈를 묻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구매하고 나서 항상 가방에 달고 다녔다. 근데 내가 다오와 배찌를 가방에 달고 다니는 게 나름 인상 깊은가 보다.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치고 다오와 배찌를 언급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지난 학기에 나와 팀플을 했던 어떤 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옛날부터 인형이 눈에 띄었는데, 그게 오빠인 줄 몰랐어요."라는 평을 남겨주었다. 생각보다 진한 빨강과 파랑 조합의 귀여운 캐릭터에다가 워낙 적게 팔았던 레어한 인형이다 보니 더 그럴 수도?
한국행정론 수업을 듣는다. 매 시간마다 정책사례코멘트와 사례분석메모를 작성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굴러간다. 작성하는 것은 좋은데 토론은 좀 부담스럽다. 그래도 나름 적응해서 지금은 괜찮다. 중간고사 기간에 정책사례코멘트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가 있었는데, 이때 교수님이 의견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정책사례코멘트로 내 것을 언급해 주셨다. 뭔가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나름 글쓰기에 자신감도 있고 나를 여기까지 올려 보낸 게 글쓰기인 만큼 글을 잘 썼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큰 칭찬이 없다.
최근에는 내가 쓰는 글의 구조적 형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나는 드물게도 미괄식으로 글을 쓰는 편이다. 수능이 끝나고 논술 단기 특강을 받을 때도 미괄식 글쓰기는 입시 논술에서 불리하다고 하여 당시 선생님은 나의 글쓰기를 두괄식으로 고치려고 시도했으나 그냥 미괄식으로 너의 글을 더 잘 보여주는 게 낫겠다며 포기했던 일이 있었다. 실제로 대학에 오고 나서도 대부분의 과제나 시험으로 쓰는 글은 미괄식으로 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읽기 불편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는 하나의 글을 쓴다고 가정하면 빌드업과 순서(특히 시간적 순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결론이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꽤 깊숙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어느 날 내 글을 읽어보니 이게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두괄식으로 쓰는 연습도 해보는데 어색하고 불편하다. 뭔가 글의 순서를 망가뜨리는 느낌이라 더 불편하다. 그래서 그냥 미괄식으로 더 잘 쓰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다 보니 시험 기간까지 날아왔다. 자취방 위치 특성상 정경관에서 공부할 일이 거의 없는데, 시험 기간 정경관 연장개방에 힘입어 이번 중간고사 내내 정경관에서 정말 긴 시간을 보냈다.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영 별로였는데, 리모델링하고 나니 확실히 있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정경관 엄청 춥다. 4월 중순인데도 이렇게 춥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당시에는 비도 오고 해서 4월치고 꽤 추웠던 시점이라 그냥 밖이 추워서 그런가 싶었는데, 5월 초에도 추운걸 보니 원래부터 건물이 엄청 추운 듯.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이랑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각각 헌법재판소 방청을 신청했었다. 둘 다 떨어졌다. 다소 부침은 있었지만 순리대로 잘 해결된 것 같다. 다만 지난 3년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석가탄신일과 연휴가 끼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집 근처에 있던 옥천사에 다녀왔다. 이 절은 나와 동생이 입시 생활을 보냈던 도합 6년 동안 부모님이 입시 기도를 전부 이 절에서 했었던, 작지만 나름 유서 깊은 절이다. 오랜만에 가니 주지 스님도 입적하셨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게 실감 났다. 대학 입시가 뭐라고 부모님이 참 고생 많이 하셨다. 어떻게는 수능 조금이라도 잘 보라고 엄마가 절에 돌아다니셨던 이야기를 생각하면 웃기면서도 마음 아픈 그런 게 있다. 그래도 대학 잘 갔으니 결과적으로 다행이다. 물론 예상 경로랑 많이 다른 방향으로 가기는 했지만.
4월 초? 중순쯤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났다. 사실 자주 보자고 말은 해도 워낙 다들 바쁘다 보니 정말 어렵게 어렵게 성사된 만남이었다. 나는 성격상 정말 나와 잘 맞거나, 내가 괜찮다고 판단되는 지점이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한테 마음을 잘 열지 않는 편인데 만나면 왠지 모르게 좀 더 편하다. 단순히 동질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제가 있는데 마음을 좀 더 열게 되는 느낌이 있다. 사진을 올려보고 싶은데 사진이 없다. 사실 같이 찍은 사진은 보관함에 잘 들어있긴 한데 다른 사람 얼굴을 허락 없이 올릴 수는 없으니, 그냥 없는 걸로 치자.
이 시점에 몸이 엄청 아팠다. 몸살 기운이 급격하게 들이닥쳤는데, 목이 심하게 아파서 물을 마시기도 힘들었고 힘이 아예 빠져서 주말 내내 일어나지도 못했다. 상당히 꽤 심각하게 몸살감기가 왔었던 모양인데, 몸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2주는 족히 넘었던 것 같고. 기침이 완전히 멎는 데는 3주가 걸렸고, 가래가 멈추는 것은 거의 4주가 소요되었다. 서울에 올라오고 이렇게 아팠던 경험이 처음이라 참 힘든 시간이었다.
선거와투표행태 수업을 듣는다. 영어 강의 채우려고 듣는다. 이 수업에서는 과목 이름답게 선거나 투표에 관해서 다루는데, 실제로는 선거 데이터 분석하기 위해서 코딩도 하고 수학적 데이터 분석도 병행한다. 훨씬 쉽게 영어 강의를 채울 수 있는 다른 수업이 있었지만 교수님과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수업을 들었다. 다 옛날이야기긴 해도, 한때 프로그래머가 내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에 이 수업에 나름 애정이 있다. 그런데 힘들어서 가끔 후회된다. 그래도 수업 내용과 교수님을 보면서 열심히 참고 있다. 그리고 중간고사가 생각보다 착하게 출제돼서 용서가 된다. 왜 중간고사를 시험 기간에 같이 안 보고 따로 연휴 끝나고 보는 걸까? 그래도 이 수업이 기말고사를 보는 게 아니라 기말과제다 보니 전반부에 다룰 이론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과목 중간고사 보고 있을 때 수업을 했었다. 힘들었다. 시험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노트 보면서 정리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과 잠깐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었다. 교수님이 나를 알아보시더라.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하시기는 하는데 왠지 낯이 익는다고 하셨다. 조금 이야기를 하니 정확하게 기억하셨다. 놀랐다. 더 조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고사가 끝났다. 정말 오래간만에 길게 글을 썼는데, 글 쓰는 게 시간도 잘 가고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는 그런 게 있다. 이 시점에서 기록하지 않으면 완전히 떠내려갈 수도 있는 기억 조각들을 다행히 어떻게든 잘 붙잡아서 붙여 놨다. 일단 중간고사는 전부 끝나긴 했는데, 지금도 계속해야 할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최근 두 달, 정말 잘 견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