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등교의 추억

이게 10년이나 걸릴 문제일까?

by 영우천사

정말 오랜만에 집에 왔다. 3주 내지 4주에 한번씩은 집에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꽤 오래 집에 안가고 서울에서 보냈다. 어쩌면 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정규학기가 될 지도 몰라서 이것저것 정리하고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그랬다. 나는 이러나 저러나 체질적으로 서울 사람이 아니긴 하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지 거의 2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본가에 꽤 들렀다. 그래도 최근에는 서울이라는 공간에 적응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집에 가는게 귀찮고 집에 내려가는 주기도 점차 길어졌다. 집에 가려면 안암에서 용산역까지 가야하는데, 1호선을 타는게 그렇게 끔찍했다. 1호선을 타면서 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보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무너지는 느낌이라 너무 싫었다. 일단 용산역에는 어찌저찌 도착해서 집으로 간다고 해도, 송정역에 내려서 집까지 오려면 또 한세월이라 집에 잘 안가게 되었다. 어쩌면 서울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그랬을지도...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광주 소식은 계속 업데이트 하고 있다. 내가 업데이트 하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한다기 보다는 이슈가 많다보니 자동으로 따라가는 것에 가깝다. 얼마 전에 지하철 2호선 공사 관련해서 시장이 기한 내로 도로를 복구하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선언해서 큰 화제였다. 시장이 캐삭빵을 선언했는데 소식을 듣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캐삭빵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매번 내려갈 때 마다 전혀 진척이 없어보이던 공사 현장도 꽤 많이 정리되었다. 내가 서울에 처음 상경했을 시점의 공사 상황과 가장 최근에 집에 왔던 시점의 공사 상황이 거의 똑같아 보였는데 갑자기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과연 그 지하철이 안전할지는 궁금하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계절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나름 여유가 생긴 내 눈을 사로잡은 또 다른 소식은 광산구에 (가칭) 광산고등학교를 신설하여 과밀 학급과 학교 원거리 배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https://www.ihop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535


이는 광주에서 일반고 진학을 희망했던 모든 사람들의 숙원 사업중에 하나였다. 내가 광산구에 살지는 않았으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와 자료로만 봐도 광산구는 학교 과밀이 꽤 심각했다. 신도시가 개발되어 입주하는 인구에 비해 설치된 학교가 꽤 적었다. 덕분에 학령 인구 감소가 심각하다는 최근에도 광산구에 있는 초, 중, 고등학교들은 광주 관내의 다른 학교에 비해서 학교 하나 당 학생 수가 여전히 많다. 광산구에 살지도 않으면서 광산구에 고등학교를 설치하는게 왜 일반고를 진학하는 모든 사람들의 숙원이냐고 묻는다면, 이런 사정이 있다.

광주 고교배정은 '근거리 통학'이 우선순윕니다. 하지만, 지역별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비율이 크게 다르다보니 올해도 광산구는 9백여 명, 서구는 4백여 명의 학생들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났습니다.
- KBC 광주방송, 2017.02.03.
해당 현상이 심각한 광산구의 경우, 중학교 수 26개 대비 고등학교는 11개에 그쳐 많은 학생들이 북구와 서구 소재로 배정되고 있었는데, 올해도 1152명의 학생이 광산구 소재 고등학교에 배정되지 못한 것.그 영향으로 북구와 서구 예비 고1 학생들도 남구와 동구 소재 고등학교로 연쇄적으로 밀려나는 배정 현상이 나타났으며, 지원자들이 내신 성적 및 대학 입시 유불리를 고려해 몇몇 특정 학교로 쏠리는 현상이 심화되는 등 원거리 통학생이 증가해왔다.
- 드림투데이, 2024.01.19.

간단하게 정리하면, 광산구에 학교가 부족해서 광산구 학생들이 광산구로 학교를 배정받지 못하고 북구나 서구로 밀려나고, 광산구 학생들이 북구와 서구 학생들이 배정되어야 할 일반고 정원을 나눠먹고, 거기서 인원이 초과하면 북구와 서구의 학생들이 동구나 남구로 나가는 구조이니 누군가는 원거리 통학을 감수해야 했다. 원거리 통학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광주가 서울처럼 지하철 교통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오직 버스만으로 광주 전역을 커버하는데 심지어 그 버스도 많다고 볼 수는 없어서 서울에서의 통학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슬프게도 나 또한 풍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시점으로 보면, 원칙적으로 선지원에는 관내의 모든 고등학교를 적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재학 중인 중학교를 기준으로 하여 지원 가능한 학교 리스트가 만들어지고 그 중에서 골라서 지원한다. 당시 기억으로 리스트에 내가 쓸 수 있는 고등학교가 총 8개 있었고, 선지원 두 개, 후지원 다섯 개를 쓸 수 있었다. 선지원에 쓴 두 개는 후지원에 중복해서 쓸 수 있으니까 실질적으로는 다섯 개 학교를 고를 수 있었다. 나나 우리 가족이나 공부나 학군지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수 많은 학군지가 어쩌고, 좋은 학교가 어쩌고 나쁜 학교가 어쩌고 할 고민 없이 네이버 지도를 펼쳐 놓고 같은 구에 있는 학교를 다 적어놓고, 구를 벗어나는 학교들은 네이버 지도를 펼쳐서 거리 순으로 적어서 냈었다.


비극은 고등학교 배정 발표 당일에 찾아왔다. 고등학교 배정 발표는 오전 10시였는데, 정확히 10시는 아니었고 사이트가 10시보다는 조금 빨리 열렸던 것 같다. 이름과 번호를 넣고 확인을 누르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고등학교가 떴다. 예상 범주에도 넣어두지 않았던 학교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아예 쓰지 않은 학교가 걸린 줄 알고 놀랐다. 조금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 아무리 교육청이 배정을 이상하게 한다고 해도 쓰지도 않은 학교를 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곱씹어보니 후지원 5지망에 적었던 학교였다. 당시의 나는 후지원 5지망까지 밀릴 것이라고 생각도 안했을 뿐더러, 설마 여기까지 배정이 밀리겠냐는 생각에 지도로 집에서 거리를 재 봤던 것 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학교였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미 우리 반은 서로 같은 학교에 배정된 친구들을 찾느라 시장통에 가까웠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 시장통 사이에서 나와 같은 학교에 배정받은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반에서 나랑 같은 학교에 배정 받은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 1차로 패닉이 왔다. "이럴 수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중학교가 배정 리스트에 고등학교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어지간하면 겹치는 친구가 한 명은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한 명도 없었다. 당시 시장통 같은 상황에서의 나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엄청 당황을 했었는지 손을 심하게 떨었다. 어떤 친구가 내가 배정받은 학교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 폰 화면을 보면서 "손을 너무 떤다."고도 했었고, 또 다른 친구는 "그런 학교가 광주에 있어?"라는 명언을 남겨주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른 반 친구들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2차 패닉이 왔다. 다른 반을 수소문해도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된 친구가 없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 그 학교에 배정된 것 같았다. 상당한 충격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 당시 나는 학생회장과 반장을 겸임하는 전례 없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교무실에 들어서자 마자 여러 선생님께서 어디 학교에 배정됐나고 물으셨다. 나의 대답에 "오, 좋은 학교네.", "너 집이 어딘데 거기로 가냐?"의 단 두 가지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교무실에 앉아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와중에 고등학교 배정 전체 명단이 학년부장 선생님께 도착했다. 그리고 그 명단은 학교 전체에서 나 혼자만 그 학교에 배정받았다는 것을 확인사살했다.


고등학교를 혼자 가는 것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학교의 거리였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우리 집에서도, 중학교에서도 모두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엄청난 거리였다. 배정 당일에 고등학교 예비소집이 있어서 바로 고등학교에 찾아갔다. 실제로 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거의 50분은 걸렸다. 그리고 도착한 학교의 모습에 다시 충격을 받았다. 학교가 엄청나게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던 것이었다. 하필 전날에 눈이 왔던 상황이라 몇 번을 넘어질 뻔 하면서 언덕을 올랐다. 눈물이 났다. 설마 학교 배정 때문에 눈물이 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참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는 예비소집이 정말 서명하고 서류 받는게 전부였어서 더 허탈했다. 내가 여기서 5분 있으려고 50분을 걸려서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비소집을 마치고 나서 집에 가야하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생전 처음 와본 장소에서 어떻게 집에 가야하나 걱정하면서 지도를 켜고, 또 1시간을 열심히 버스를 타며 집에 왔다. 그날 저녁 우리 집은 교육청 성토의 장이 열렸다.


결국 나도 과밀 학급에서 밀려나고 밀려난 결과 고등학교가 집에서 완전히 멀어진 고등학교 배정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학교에 가고 나니 이런 사례가 더 있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닌데, 해결도 안(못)하고 있다는 점에 어이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3년을 버티면서 열심히 다녔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좋은 점도 있었다. 나만 배정이 다르게 되어 가는 고등학교이다 보니 새롭게 출발하는 느낌이 있었다. 또한, 중학교때 나는 학생회장과 3년 반장을 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여러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상황에서 약간 잊혀진 느낌도 들어서 좋았다. 이러한 요소들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나쁘지는 않다. 학교를 1시간 등교했던 것은 빼고.


이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기가 되고, 동생이 고등학교에 배정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동생도 나와 똑같은 전철을 밟아 학교 배정이 밀려나고 후지원 5지망에 적은 학교가 당첨되어 이대로는 동생도 1시간 등교를 해야 할 상황이 왔다. 그날 저녁 우리 집에서는 또 한번 교육청 성토의 장이 열렸고, 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 가족은 결국 이사를 결정했다.


다시 돌아가서, (가칭) 광산고등학교를 광산구에 설립한다고 한다. 덕분에 과밀 학급 문제와 배정이 밀려나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황당했다. 광산구의 과밀 학급 이슈와 학교 배정 밀려나기 문제는 우리 선배 시절부터 있었다. 그러니까 10년이 넘은 문제였다. 그런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물론 해결을 못하는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정말로 이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해결 하지 못하는 문제여서 해결하지 않은 것인가? 라고 생각하면 전혀 그런것 같지는 않다. 더 놀랐던 점은 이 문제가 꽤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생이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는 관심도 없던 이슈여서 잘 몰랐는데, 최근 출생률 저하로 인해 학령 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문제가 여전히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새로 짓는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때, '학령 인구도 다 줄어가는 이제서야 이걸 짓나?'라는 생각을 했고, 기사를 읽고 나서는 여전히 이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할 당시 전교생이 약 1,000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지금 우리 학교를 찾아보니 전교생이 600명이 조금 넘는다. 거의 10년 사이 학령 인구가 35% 가량 감소했는데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나를 너무 놀라게 했다.


문득 이래서 서울, 수도권 살아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건가 싶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행정학을 이중전공 하다 보니 이래저래 정책 논제나 관련된 내용으로 글을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 대체로 관련 주제 중에서 지방 발전이나 활성화는 반드시 주제로 한 번 이상은 나왔다. 나는 그 때 마다 무조건 지방균형발전파에 서서 글을 쓰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발표했다. 학교 특성상 수도권 출신이 상당히 많아서 내 주장을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 같았지만 심정적으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여러번 봤고, 본인들의 파이가 뺏긴다고 생각해서인지 반발하는 경우도 자주 봤다. 그런데 광주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고 있자면 뭔가 내가 수업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다 헛물 켜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마침 광주 내려오기 전날 이 소식을 들어서 되게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대학에서의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사실상 마지막 정규 학기를 마치고 계절학기 단 한 과목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 소식을 들으니 심경이 복잡했다. 당시에 학교 다니는게 진짜 힘들긴 했지만, 결국 고통을 감내하고 다닌 학교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대학 생활의 끝무렵에 뜻하지 않게 이 대학 생활을 시작 할 수 있었던 계기를 회상할 수 있었으니 좋았다고 해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제 저녁부터, 그리고 오늘 집에 내려오면서까지 쭉 이 생각을 했는데 뿌듯하면서도 뭔가 씁쓸한 맛이 남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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