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앞에서 자꾸만 작아진다면

클라이언트에게 필요한 태도 : 친절보다는 정확함

by 유누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나름의 철칙이 하나 생겼다.

지인들의 일은 부탁 또는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거절한다는 점이다.


경험상 철저하게 '남'과 일해야 일처리도,

뒤에 남는 감정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전 직장 동료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료집 디자인을 맡겼는데,

담당 디자이너의 태도가 너무 냉랭한 탓에

수정 요청 한마디 건네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디자이너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걸까 봐 조심스럽고,

스스로가 그 고자세에 밀려 자꾸 저자세(을이)가 되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했다.


여러 가지 상황(예산, 마감기간, 잦은 수정 요청 등)이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 내 경험을 전했다.


저자세가 될 필요 없어. 고자세는 더더군다나 지양하고.
누가 갑인지 따지는 고리타분한 생각 말고,
그냥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면 충분해.


나 또한 클라이언트가 아무리 친절하더라도,

사적인 마음을 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과한 친절'은 때로 독이 되기 때문이다.


디자인 프로젝트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길다.

그 긴 시간 동안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일관된 태도가 중요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감정의 파동은 결국 작업의 밀도에 영향을 준다.

이는 클라이언트든 작업자든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친절을 베푸는 순간,

상대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가 심리적으로 어려워진다.

선이 모호해지면 일은 엉키기 마련이다.


디자이너에게는 친절보다 '정확함'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물론 예의 있는 태도와 말의 본새는 기본이라는 전재 하에)


상대가 냉랭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그 사람 나름의 방어 기제이거나

일을 완수하려는 집중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니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위축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감정을 걷어내고, 내가 원하는 바를 정리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친절함이라는 포장지보다 명확한 데이터와 논리적인 입장이 오갈 때,

비즈니스 관계는 비로소 건강해진다.


그러니

휘둘릴 필요도 없고,

휘둘리지도 말자.


호감을 나누러 만난 게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만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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