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사람은 태어나 살면서 이름은 한 개지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것 같다
회사에가면 성을 앞에 붙여 직함으로 불리게 되고 (직함이 바뀔때마다 수시로 새로운 이름이 탄생되기도...) 결혼을 결정했을 때 플래너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신부님” 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깜짝 놀랐는데 출산을 하러 갔더니 나는 “산모님”이 되어있었던 적도 있었다
산모님 까지 듣고 보니 이제 내 이름은 온데간데 없이 누구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들이 하나같이 자기 이름이 없어진다고 하더니 나도 그런거구나...”
나는 아무리 엄마가 되어도 내 이름을 지키며 살아야지라는 굳은 다짐은 안드로메다로 가져다 버리고 나는 어느새 아이로 인해 친분을 맺은 주변 엄마들에게도 누구 엄마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며 그 세계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누구의 엄마일 뿐 나이도 본명도 모르는 사이랄까...)
공동체에 들어가기로 했고 공동육아도 하기로 했으니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신나는 자리에서 당신은 누구 엄마고 누구 아빠인지 묻는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별칭이 어떻게 되세요?”
별칭?! 어릴적 신체적 특이사항을 가지고 놀리던 그 별명 말하는건가...
그 별명이라함은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지금 부르기엔 너무 촌스럽고 어색하며 우스꽝스러울텐데 왜 별칭을 말하는거지..?
공동체는 그렇단다
직급도, 나이도, 누구의 엄마 아빠도 아닌 나 자신으로 불러준다고 한단다
즉 별칭은 또 하나의 나 그리고 개인인 샘이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부를 때 “누구 이모”가 아닌 그의 별칭을 부르고 어린이집 교사와 부모사이에도 별칭으로 상대방을 부르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취지가 좋았다
다시 나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별칭 하나로도 새로운 기분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날로 당장 별칭 만들기에 도립했다
“산하, 해운”
자연을 한 아름 품고 싶었던 나는 산과 강 그리고 바다, 구름 까지 넣어 나의 별칭을 “산하”라고 짓고 남편 별칭을 “해운”이라고 지었다
창작의 고통은 있었지만 꽤나 뿌듯했다
해운(나의 남편)에게 스스로 별칭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았지만 부부 셋트 느낌을 주기 위한 나의 훌륭한 빅픽쳐가 있었음을 나중에 꼭 알아주길 바란다
(해운은 공동체 사람들이 자기를 “해운” 이라고 부를때에도 도대체 누구를 부르는지 몰라 어리둥절 했다는 웃기지만 웃을수 없었던 슬픈 레파토리까지 동시에 생겼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