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해두지 않으면 아까운 것들

호주에서 온 분홍색 원두 이야기

by 유모마일

호주 출장을 떠나는 이에게 맛난 롱블랙 마시고 오라 했더니, ‘맛난 원두를 사오라’는 얘기로 오해해서 선물 받은 원두.


세 개나 사왔는데 패키지부터 호주 스타일.

오렌지색, 초록색, 분홍색.

오렌지, 초록 이 두 개는 블렌딩 원두,

나머지 하나는 분홍색에 싱글 오리진이었다.


오 일단 싱글 오리진을 사왔어 합격.

근데 분홍.. 괜찮을까 싶어

겉에서 킁킁 향을 맡아봤는데 엥 향수처럼 향기로와서

‘이건 가향 원두 스타일인가?’ 하고 다시 냉동실로.

무난해 보이는 블렌딩부터 먼저 열어 먹었는데 역시, 너무 무난했다.


결국 며칠 뒤 마음에 여유 낭낭한 추석 연휴,

대망의 분홍색 봉지를 뜯었다.

원두를 갈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내내

장미향이 진하게 퍼지는데, 너무 설레었다.

쫄보로서 난 커피를 내기 전에 몰래 늘 간을 좀 본다.

향은 화려한데 맛이 과하거나 깊이가 밋밋한 경우가 있었으니까.


긴장한 채 한 모금했는데,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장미 향이 매혹적인데 맛은 히비스커스처럼 산미가 높고, 끝은 미끈할 만큼 부드럽게 정리됐다.

커피라기보다 차 같은 느낌, 여러 스페셜티를 마셔봤지만 집에서 원두로 드립해 마신 중에는 가장 맛있었다.


좋아하는 작은 찻 잔에 두 잔을 내렸는데

금세 사라졌다. 진짜 맛있었다.

추석에 가져가서 가족들과 나눠먹고 싶을 정도!

근데 이거 호주에 가서 사야 하니까 당분간은 딱 한 봉지만 있는거네, 그렇다면 기록으로라도 남겨두자.


그렇게 미뤄두던 ‘경험 기록 계정’을 만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