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 Aug 01. 2018

반려동물을 대하는
어느 영국인의 자세

반려란 소유가 아니다


토트네스의 Transition Network 사무실에 벤Ben을 만나러 갔을 때 조금 특별한 점이 있었다. 사무실에 있던 티코Tyko라는 이름의 개. 비즐라종으로 추측되는 꽤나 덩치가 큰 친구였는데, 손님인 우리를 반기는 듯 사무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무실에 있는 개가 있다는 것이 놀라워 벤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내가 벤에게 '그의 개(your dog)'인지 묻자, 벤은 미소를 지으며 티코를 자신의 소유라고 여기지 않는다며 티코는 자신의 '동반자(companion)'라고 소개했다. 별생각 없이 던진 간단한 질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깊이 있는 대답이 나오자, 순간 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벤에 대한 호감도가 급속도로 상승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런 소개를 할 수 있는 반려동물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리스펙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영국과 아일랜드 지역을 약 한 달간 다니며 총 다섯 개 도시, 일곱 호스트의 집에서 묵었는데 그중 네 집에서 고양이나 강아지가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 경험을 '영국의 반려동물 문화'라고 포장하기엔 너무나 적은 표본이긴 하지만,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문화와는 극명한 차이점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었다. 벤의 말처럼 반려동물을 '소유'하지 않은듯한 모습들이었다.


벤의 동반자, 티코


흙바닥의 중요성


우리가 지낸 집들에서 만난 강아지나 고양이들은 반려인의 감독 없이도 바깥출입이 자유로웠다. 물론 대부분 집에 달려있는 정원에 한정되어 주어진 자유이긴 했지만, 집마다 정원이 있다는 사실부터가 내가 아는 생활 환경과는 많이 다르다 보니 그 차이가 꽤나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렇게 자유롭게 집 안팎을 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흔히 아는 '반려동물'의 모습과는 달랐다. 흙을 밟고, 풀냄새를 맡고, 돌 사이를 뛰어다닐 수 있는 환경은 사람에게도 그렇듯 아이들에게도 더 건강하고 좋은 환경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토트네스 진Jean의 집에 있던 검은 고양이 테드 Ted의 경우엔, 그 활동범위가 집안 정원으로 한정되지도 않았다. 본래 집 주변에 버려져있던 아이를 데려온 소위 길냥이 출신이다 보니, 진은 굳이 테드를 집 안에 두려 하지 않았다. 테드는 집 뒤편의 정원과 그 너머 있는 동산까지 자유롭게 누비다가 아침저녁으로 있는 밥시간이면 칼같이 부엌으로 찾아와 골골댔다. 진의 침실과 게스트룸이 있는 2층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출입이 허용된 1층 부엌이나 응접실에 있을 때면 방이 떠나갈 정도로 그르렁거렸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 속 완벽히 자리를 잡은 모습. 그처럼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모습은 처음 보았다.



런던 조쉬Josh와 해티Hattie네 정원을 마음껏 거닐던, 웬즈데이Wednesday


경쾌한 발톱 소리


또 하나 발견한 특이한 점은 '관리'받지 못한 아이들의 상태였다. 처음 그 점을 발견한 건 테드에게서였다. 외출 전 거실 소파에서 쉬고 있는 테드를 보고 옆으로 가 앉았더니 정말 큰 소리로 골골거렸다. 몇 번 쓰다듬어주니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와 꾹꾹이를 해주었는데, 너무나도 스윗한 순간이었지만 처음 느껴본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날 것과 같은 발톱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슬프게도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토트네스 두 번째 집에서 만났던 강아지 아치 Archie는 카펫이 깔려있지 않은 부엌 바닥을 걸어 다닐 때면 딱딱딱하고 바닥과 발톱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굳이 발을 잡아보지도 않아도 확연하게 드러나있는 발톱이 그의 귀여운 외모와 너무나 상반되어 보였다. 


처음엔 어떻게 관리를 이렇게 안 해줄 수 있는지 너무도 의아하고, 호스트들에게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왜 발톱을 꼭 깎아야 하는지 역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정원이나 밖을 돌아다녀야 하면 발톱이 필요한 건 아닐까. 아니면 자연히 흙과 돌 위로 다니다 보면 필요한 만큼 다듬어지는 건 아닐까. 그 모습이 아이들의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맥락으로 이후의 여정 중에 쭉 살펴보니 집에서건, 길거리에서건 옷을 입었거나 염색을 하는 등 '가꾸어진' 모습의 동물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시나 우리가 지낸 장소나 기간은 현저히 낮은 표본이긴 하지만 서울 거리에서 보이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산책로에 소위 인기 품종의 아이들이 비슷한 미용을 하고서 줄지어 지나가는 풍경은 일절 보지 못했다. 길에서 보이는 아이들은 거의 믹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품종(이란 말은 쓰고 싶지 않지만)이 너무나 다양할뿐더러, 토트네스에서 겪은 선입견인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내추럴하고도 단단한 모습이 느껴졌다. 



진의 집에서 차원이 다른 골골송을 들려주던, 테드


메건의 집에서 함께 지내던 보들보들 귀여움 덩어리, 아치


함께 사는 모습


우리도 얼마 전 고양이를 입양했다. 탯줄까지 달린 채 혼자 버려져있다 구조된 아이는 보통 고양이보다 꼬리가 짧다. 길냥이인 어미가 영양이 부족하면 그런 새끼가 태어날 수 있다는데, 아마도 약한 개체라 버림받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아이를 데려오던 날 임시 보호자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 들었다. 어미에게 버려졌던 아이.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이제 우리와 십수 년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텐데, 어떤 환경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게 해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 사람과도 조화롭게 지내며 자연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영국에서처럼 마음껏 밖을 돌아다니게 해주고 싶지만 그런 환경이 아닌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요즘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일어나는 동물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들을 보고 들을 때면,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더 시급히 필요한 건 잘 짜인 법체계보다 생명에 대한 진실하고 성숙한 감수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 바다 건너 누군가에게 있던, 소유로 주장하지 않고 동반자로 소개하는 그런 감수성.






적당히 낯선 생활 인스타그램 @our_unusual_day

매거진의 이전글 아주 완벽한 에프터눈 티타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