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적 삶과 친환경적 생활 방식을 찾아 떠나다
우리 진짜 도착한 거야?
그날 밤 그 기차역, 어두운 밤 가로등 아래 "토트네스 Totnes"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을 보았던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정겨운 느낌의 작고 소박한 플랫폼. 쌀쌀한 밤공기, 풋풋한 풀냄새. 런던의 복잡함을 떠나오니 전혀 다른 세상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진짜 토트네스야! 우리가 토트네스에 왔다고"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진짜 온 거야?"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둘 다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며 똑같은 질문과 감탄사를 반복했다. 기사로 보았던, 다큐멘터리로 보았던, 꿈만 꾸었던, 상상만 해봤던, 그곳에 우리가 정말 발을 딛고 서있다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격이었다. 정말 현실이라 믿을 수 없던 현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토트네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말 우리를 위한 곳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어렵게 얻은 한 달간의 시간 동안 그저 관광하거나 쉬기만 하는 여행보다 '우리를 진일보시킬 수 있는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를 모았다. 서른의 시점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작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해보자고.
대학로 한 빵집에 앉아서 목적지를 정하기 위한 논의를 하던 중, 문득 아내가 떠올린 기사 한 토막이 이 모든 여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수년 전 쓰인 영국의 한 소도시 토트네스에 대한 기사였다. '전환마을'의 원조격이라는 이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이 시대 많은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제안하고, 또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들은, 우리가 대학시절부터 고민하고 추구했던 '공동체적 삶'에 상당 부분 맞닿아 있었다.
공동체와 마을살이를 꿈꾸는 보람과, 환경 문제 해결과 친환경적 삶의 방식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그 마을은 마치 꿈의 장소와도 같았다.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기대감과 흥분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결정하는 데에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그래, 여기다."
제대로 알기 위해, 사람을 만나자
주요 목적지를 정한 뒤 그곳에서 얼마나 머물지가 우리의 또 다른 고민거리였다. 생활을 해보려면 2주 정도는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비행기 타고 나간 거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싶다는 상충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4주간의 여행 중 토트네스에 머물기로 한 건 단 일주일. 그곳에 있는 짧은 기간 어떻게든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강한 자극을 받기 위해서는 그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해보니 '트랜지션 네트워크 Transtion Network(TN)'와 '트랜지션 타운 토트네스 Transition Town Totnes(TTT)'라는 비영리 단체가 이 무브먼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한 달 정도 여유를 두고, 미팅을 어레인지 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탐색하여 만나볼 만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후로 몇 번의 메일이 오가며 해당 일정에 스케줄이 가능한 사람에게까지 여러 번의 전달을 거쳤다. 마침내 날짜와 시간과 장소까지 정해지고 나니, 본격적으로 이 모든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또 마침 우리가 머무는 기간 중에 TTT의 일원과 함께 마을을 직접 걸으며,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에 대해 설명을 들어볼 수 있는 'Transition Walk'라는 프로그램도 예정되어 있었다. 사전 예약을 진행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이 딱딱 맞냐며 딱 여기 갈 운명이었다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후로도 우리나라에서 이미 수차례 다뤄진 토트네스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특히, SBS에서 만들었던 토트네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며, 우리가 그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질문들을 차근히 준비해 갔다.
우리 진짜, 여기, 토트네스야
어두워진 토트네스 역. 토트네스 첫 호스트 진Jean이 마중 나와있었다. (4일씩 두 군데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기차역에서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었지만, 해가 지고 도착한다고 하니 고맙게도 픽업을 와주었다.
런던에서 묵었던 집과는 전혀 다른 안락함이 있는 진Jean의 집에 도착하자, 긴 기차 여행의 피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언덕에 위치한 집, 2층 방의 창문 커튼을 젖히니 보이는 토트네스의 고요한 야경. 기차역에서 느낀 '드디어 토트네스에 도착했다'는 그 감격이 더 증폭되어 갔다. 그렇게 또 한 번 우리는 그 믿기 힘든 사실을 되내어야 했다.
"여기, 진짜 토트네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