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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Jul 24. 2018

'우리'를 움직이는
'마을'이란 이름의 힘

전환마을 운동 전문가를 만나다

전문가를 만나보자


토트네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최소 한 팀의 전환마을 운동 전문가는 만나보고자 하는 목표는 있었다. 뭔가 대단한 리서치를 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거나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토트네스에 대한 정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기사나 다큐멘터리로 많이 다뤄졌기에 충분히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곳과의 좀 더 깊은 연결점을 만들고 싶었다. 특별한 마을의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게 만들어낸 사람들. 그들을 만나 우리도 삶에서 뭔가 이뤄내 보자는 자극을 받고 싶기도 했다. 영어라는 걸림돌이 분명히 존재하고, 소셜라이징에 그다지 흥미도, 재능도 없는 우리가 이런 마음을 먹은 것 자체가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작심부터가 쉽지 않은 목표였지만, 이런 과정부터 실제 만남까지 이어진다면 우리에게 분명히 '적당히 낯선' 자극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남을 위해선 사전 연락이 필수적이었다. 예약을 마친 숙소 호스트 진 Jean에게 사전에 조언을 구했는데 두 개의 관련 단체 (Transtion Town Totnes / Transtion Network)를 소개하여주었다. 이 중 우리는 실제 활동 중심인 TTT 대신 전환마을 개념 자체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인 설명이 되어있는, 그래서 좀 더 개괄적인 설명이 가능해 보이는 TN 쪽에 연락을 취해보기로 했다. 무작정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스태프들의 담당업무와 사진까지 나와있는 쪽이 왠지 만나기에 좀 더 수월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TN의 대외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에게 처음 미팅 리퀘스트를 보냈는데, 자신은 토트네스에서 근무하지 않는다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메일을 공유했다고 답변을 주었다. 며칠 뒤 TN의 다른 멤버인 앰버 Amber 에게서 피드백이 왔다. 그는 우리가 만나기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면서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rdinator인 벤 Ben을 만나볼 것을 추천했다. 그렇게 건너 건너 벤에게 컨택이 되었고,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사무실에 있다고 하는 그와 우리 일정에 맞춰 만날 날짜를 정했다. 약 2주간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치며 메일 핑퐁을 하느라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힘겹게 시작했던 첫 이메일로부터 미팅까지 결국 정해지게 된 것에 놀랍기도 했다. 이제 가서 만나기만 하면 된다니! 


TN의 홈페이지 모습. STAFF 섹션에서 컨택할 이를 물색(?)했다.


열악을 넘어선 열정의 공간에서


토트네스에 도착하여 며칠을 보낸 뒤 다가온 결전의 날. 약속시간은 두 시. 우리는 채식 레스토랑 윌로우에서 점심을 먹은 뒤, 벤이 있는 TN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벤은 자신의 사무실이 'Cornish Bakery' 맞은편에 있다고 알려줬다. 며칠 동네 좀 다녀봤다고 가게 위치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에, 문득 우리가 이 동네를 잘 아는 주민이 된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찾아간 건물 입구에는 작게 TN 로고가 붙어있었다. 영어로 소통은 잘 될지, 우리의 무지(無知)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는 않을지, 밥을 먹는 동안 줄곧 왠지 모르게 너무 떨린다고 이야기하던 보람과 긴장된 눈빛을 교환하며 도어벨을 눌렀다.


오래된 느낌의 건물에 반층씩 올라가면서 공간이 있는 특이한 구조의 사무실이었다. 두세 번을 오르자 벤이 마중을 나왔고 우리를 회의실 같은 공간으로 안내했다. 어김없이 차를 권했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 그냥 추천하는 걸로 한 잔씩을 건네받았다. 민트 종류의 차를 건네받고서, 벤의 반려견 '티코'와 인사를 나누며 공간을 쭉 둘러보았다. 허름한 내부, 벽면 곳곳에 붙은 포스터와 안내문들,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열악하다기 보단 열정이 있는 곳이라 느껴졌다.  





대학 과제가 현실이 되었다


한 번에 모든 인터뷰 내용을 알아듣고 기억할리 만무했기 때문에 테이블에 둘러앉자마자 우리는 먼저 벤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켰다. 그리고 벤과 만나기 전에 우리가 미리 준비해 간 몇 가지 질문이 적힌 종이를 펼쳐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환마을 운동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누가 어떤 활동함으로써 시작하였는지?

왜 토트네스였나?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인식, 관심이 어떻게 확산될 수 있었나?

토트네스 주민 중 전환마을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전환마을 운동에 대한 실제적인 관심도나 참여도는 어느 정도인지?

'토트네스 파운드'는 어떤 취지로 시작되었고, 잘 정착되었는지, 어떤 효과가 있나?

주거 지역에 비해 메인 스트리트의 규모는 작아 보이는데, 토트네스 사는 사람들이 지역 내에 직장을 갖고 있는 걸까? High Street의 가게들은 토트네스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사는 지역(서울)에서 비슷한 활동을 시작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까? 

정부, 지자체와의 연계는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도움받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토트네스에서 봐야 할 것/곳을 더 추천한다면?


TN의 설립부터 함께해 온 벤은 우리의 질문에 따라 운동의 역사와 의미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전환마을은 놀랍게도 대학 과제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기후 변화와 화석 연료 사용 문제에 관심이 많던 아일랜드 킨세일 Kinsale 지역의 롭 홉킨스 Rob Hopkins 교수는 학생들에게 '기후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커뮤니티 모습'을 구상해보라는 과제를 던졌다. 먹거리, 교통수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낸 학생들의 과제 결과물은 홉킨스 교수의 블로그를 통해 알려졌고, 예상치 못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벤을 비롯하여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영국 다른 지역에 있었던 벤은, 환경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서기엔 늦을 것 같고 혼자 하기엔 역부족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알게 되어 함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토트네스는 과거 GM(유전자 변형) 식품이 최초로 시작(생산)된 곳이라고 한다. 이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 시위를 펴기 위해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이 때문에 토트네스에는 과거부터 'Radical'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자리 잡게 되었다. 또 지역 내 자리한 슈마허 대학 Schumacher College은 생태계에 관한 특별한 이념과 가치관을 갖고 커리큘럼을 운영하면서 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는데, 이런 여러 바탕을 가지고 롭 홉킨스를 비롯한 멤버들은 토트네스에서 전환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꿈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벤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 중에 '전환마을의 시작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냐'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가 꼽은 제1요소는 바로 '건강한 그룹 Healthy Group'를 갖는 것. 벤에 따르면 유럽에서 비슷한 목표를 갖고 다양한 그룹들이 시작하지만 대부분이 1년 이상 가지 못하고 해체된다고 했다. 강력한 공감대와 필요를 바탕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커뮤니티의 '에너지'가 무엇인지 찾으라고 조언했다. 우리 지역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찾는 것. 앞서 말한 '건강한 그룹'이 우리 커뮤니티의 에너지를 찾게 되면 더 사람들을 기꺼이 참여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보통의 그룹에선 그 에너지가 음식Food이라고 하였는데, 모두에게 매일매일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토트네스 역시 어떤 음식이 환경과 함께 지속될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여러 대안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다 같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도 그는 덧붙여 이야기했다. '이런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 일을 하면 이런 일이 벌어질 거야'라는 식의 꿈(Collective Vision)을 갖고 지속적으로 공유하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에 계속 이야기하라고 하는 말도 얼핏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이 여행을 오게 된 것도 결혼 전부터 이야기해 온 것이 결국 현실화된 것이기도 했다. 온세계가 주목하는 대단한 결과 뒤에도 결국 그 심플한 주문이 자리하고 있을 줄이야. 



한 시간 가량의 짧고도 긴 만남을 마치고 길을 나섰다. 벤을 만나기 전부터 긴장 상태였던 보람은 대화를 마친 뒤 약간 혼이 나간듯한 표정이었지만, 한 편으로 흘러나오는 안도감과 만족감도 감출 수 없었다. 나 역시 긴 대화와 많은 정보에 다소 지쳤지만, 꿈꾸는 것이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울 은평 쪽에서 실제로 전환마을 운동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며 소개하여준다던 벤의 메일이 왔다. 이제는 우리가 꿈꿀 차례다.






적당히 낯선 생활 인스타그램 @our_unusual_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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