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사물,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내재화되고 그것이 각인된 후, 다시 나타났을 때, 이것은 환상임과 동시에 악몽이 된다. 누구나 솔직하지 못한 욕망이 있고, 그것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그리고 현실에서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아래까지 떨어져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고 있는 자신을 거울로 바라보면서 환상이 이 비틀린 욕망을 꿀꺽 삼켜주기를 '나'는 바란다. 욕망이 환상을 삼킨 건가, 아니면 환상이 욕망을 삼킨 건가. 이것 또한 환상인 것인지 실제인 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 신비스러우면서도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악몽이겠지만 다이안에게는 꿈같은 현실이다. 다이안의 꿈속에서 모든 것은 다이안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순수했던 베티로 돌아간 다이안은 연기력을 인정받고, 자신의 꿈을 현실화시켜줄 감독에게 가게 되지만, 현실에서의 카밀라가 자신을 구원해주지 않은 것에 반해, 베티는 리타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 리타를 사랑하기 때문에, 카밀라가 다이안을 버렸지만 결코 다이안의 꿈속에서 베티는 리타를 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곳은 다이안의 환상 속이니까.
다이안은 자신을 배신한 카밀라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하지만 그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악마 같은 욕망은 그녀를 조여 온다. 이 부분을 린치 감독이 잘 드러낸 부분이 초반의 스토리 중 하나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꿈속에서 봤던 장면이 그대로 현실화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다이안의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그녀의 장치와도 같다. 즉,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그녀의 계획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없는, 그저 어쩌다 눈이 마주치게 된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밀라를 죽여야 하면서도 그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점점 죄책감에 조여 오는 그녀가 그 죄책감을 버릴 수 있도록 만든 환상은 영영 입을 열수 없도록,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는 남자의 죽음이다.
이것으로 그녀의 죄책감이 완벽하게 없어진 걸까? 그건 아니다. 다이안의 환상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리타를 보호해주는 사람은 베티뿐이다. 베티의 이모도 코코도 리타를 경찰에 신고할 것을 베티에게 강요한다.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린 리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베티뿐이다. 또한 다이안의 환상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관계는 베티와 리타뿐이다. 현실에서 카밀라와 약혼하려고 했던 감독은 환상 속에서, 파산하고 아내에게 버림받은 후,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여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 비굴한 처지로 변질됐으며, 감독의 어머니였던 코코,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아 영화의 주연 역할을 얻게 되는 카밀라 로즈는 현실에서는 다이안이 보는 앞에서 카밀라와 키스하던 여자였으며, 감독에게 한밤중의 가로등 아래에서 조용히 협박을 하던 카우보이는 현실에서는 그저 다이안의 눈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는 등, 모든 사람들이 다이안의 환상 속에서 비틀리고 변질됐지만, 리타와 베티만큼은 카밀라가 다이안을 배신하기 전의 모습으로 완벽한 연인관계가 성립되고 그들은 에로틱한 관계를 갖게 된다. 다이안이 원하는 이 완벽한 관계가 만들어짐으로써, 카밀라와 자신의 관계가 당연히 이러해야 했음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죄책감이 사실은 매우 황당하고 있지도 않은 허구였으며, 이것은 다이안의 환상 속에, 또 다른 허구임을 강조하게 만든다. 그녀가 자신의 꿈에서 또 다른 허구를 집어넣은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또 다른 의문을 가져야 할 점은, 환상 속의 베티와 리타가 과연 누구의 복제물이었느냐?라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말한 대로라면 베티는 다이안이며, 리타는 카밀라가 분명하다. 하지만 또한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분석했을 때, 분명하게 확신을 주는 것이 없다. 완벽하게 분석을 했다는 생각이 오만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다이안=베티, 카밀라=리타라는 생각은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현실과 반대로 다이안이 리타가 됐으며, 카밀라는 베티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리타와 베티 모두 다이안의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카밀라가 베티와 리타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만일 이렇게 수많은 가능성들을 조합하게 되면 우리들은 더 혼란스러워진다. 어느 것이 현실이었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더 이상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100분간의 이야기는 모두 환상이었을까. 처음, 멀쩡하게 차에서 나오던 카밀라의 모습은 현실인가 환상인가. 그녀는 현실에서 실제로 죽은 것일까 살았던 것일까? 리타와 베티가 다이안의 집에서 발견한, 부패된 다이안의 사체는 실제 다이안의 사체였나, 아님 현실의 다이안이 상상했던, 혹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표현한 환상이었나? 환상 속에 현실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것인가. 아니다.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 또한 이 영화에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환상을 만든 주체가 누구든지 간에 그 주체는 전지전능한 신과 같다. 논리와 질서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환상 속에서 논리와 질서를 논한다는 것이야말로 비논리적이다.
이 영화가 어려운 이유는 혼란스러운 시간적 구성이나, 개연성 없는 이야기들의 나열 때문이 아니다. 어느 것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도록, 관객을 우롱하면서도 그걸 즐기는 듯한 린치 감독의 음울하고 악몽 같은 장치가 이 영화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자꾸만 관객들을 되돌아오게 만들며, 그런 이유로 이 매력이 이 영화를 더더욱 힘들게 만든다. 이 낯선 데이빗 린치 세계의 악몽은 끊임없이 생성된다. 왜 생성되는지 알 수 없으며 그저 꾸역꾸역 계속 생성된다. 이 상황을 우리가 맞닥뜨렸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이 악몽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것이 이 악몽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되 길을 잃는 방법일 것이다. 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