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좇는다

메멘토 인썸니아 인셉션에 대한 그냥 헛소리들

by XX





(1)


내가 중 2 때쯤, 토요일마다 있었던 영어 관련 CA수업에서 처음으로 인썸니아를 봤다. 영어수업이었지만 그냥 외국영화를 한 편씩 감상하면 수업이 끝나 있는 이상한 CA활동이었다. 하지만 얌전히 의자에 앉아 조용히 딴짓을 해도 터치하지 않았고, 영화를 보는 척하면서 자도 선생님은 모른 척했다. 나한테는 그게 중요했다. 제일 편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수업에 관심 없던 나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잠이든 건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재미없었다. 잠깐 잠이 깨서 보다 말고 또 다시 잠이 들었다 깨서 보다가 잠이 들고, 그러다가 어느새 영화는 끝나 있었고, 참 별 이상한 영화를 감독이 만들었다 생각했다.

재미있는 건 이 수업을 할 동안 상당히 많은 영화를 봤는데도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나는 영화가 이 인썸니아 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작하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진 이 싱거운 영화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유일하게 이 영화만을 기억하는 건 지독하게도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영상은커녕 지금 전공하고 있는 미술조차 그때는 관심이 거의 없었을 때라, 특히나 영화를 그냥 잠깐 시간을 내서 보고 마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에게는 이해 안 되고 지루한 영화를 보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더 자두는 게 훨씬 행복했다. (참고로 정확히 1년 뒤, 중 3이 된 나는 영화감상부에 들어가게 되고, 그 CA수업에서 그린마일을 본 후, 영화의 참 맛(?)을 알게 된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그린마일과 인썸니아 둘 다 좋은 영화이지만 그린마일은 다른 의미로 나에게 각별하다)

그러던 것이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작년에 우연히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 메멘토를 보게 됐다. 특히 메멘토는 시간을 거스르는 구성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인썸니아를 만든 같은 감독이었다.


(2)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어떤 의미로 보면 상당히 정직한 구석이 있다. 난 프레스티지는 보지 않았으니 그건 제외하고. 그리고 놀란의 영화 스타일에서 약간은 벗어난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도 제외하고. 두들버그-미행-메멘토-인썸니아-인셉션. 두들버그와 미행의 나약하고 어리숙한 주인공이 메멘토부터는 어느 정도 다듬어지면서 정형화된다. 특히 이 세 영화의 주인공은 상당히 닮아있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는 마음에 안 들지만.


(3)

메멘토-가이 피어스는 메멘토에서 처음 알게 됐다. 거짓된 기억을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세계에서 계속 살인을 일삼으며 진실을 찾고 있는 레너드. 하지만 중요한 기억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편집증적 집착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감정을 쉽게 노출하지 않지만 언제 분열될지 모르는 위험함을 감추고 있다.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지만 얼굴은 야위었고, 전체적인 체형 또한 잔 근육 때문에 바짝 말라있지 않지만, 전신에 문신을 새겨 넣는 행위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그를 매우 위태로워 보이게끔 한다.

인썸니아-알파치노또한 이 영화를 제외하고는 다른 영화에서 연기한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이 영화에서 도머 형사는 백야의 알래스카에서 계속 불면증에 시달린다. 영화에 나오는 뿌연 안개처럼 그의 기억도 모호해지고 도머 형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계속 자신의 주위에 부유하는 유령 같은 존재들에게 쫓기게 된다.


(4)

인셉션-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 중 본 것은 토탈 이클립스, 타이타닉, 캐치 미 이프 유 캔, 셔터 아일랜드 정도다. 디카프리오 때문에 봤던 영화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디카프리오는 그냥 그저 그런 배우다. 고르는 영화들이 어느 순간부터 상당히 비슷해져가고 있다는 게 개인적인 내 생각인데 인셉션을 보는 동안 내내 셔터 아일랜드의 테디가 겹쳐 보여 인셉션의 코브는 내가 가장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던, 매력 없고 평면적인 등장인물 중 하나가 돼 버렸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인셉션의 코브는 끊임없이 자신 안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위험한 인물이다. 메멘토와 인썸니아의 인물들이 구체적인 사건이나 위험 없이 계속 은유(안개나 불면증, 단기 기억 상실증 같은)에 의해 분열하는데 반해 인셉션은 본격적이다. 즉, 인간의 꿈을 통해 무의식으로 들어간다는 소재 자체가 결국에는 그동안 놀란 감독이 전작들을 통해 던지곤 했던 주제들을 본격적으로 전면에 배치한 후 대놓고 영화 내내 언급하겠다는 의도와 같은 셈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이 엄청나고 거대한 세계관을 지탱하는 주인공이 메멘토와 인썸니아의 주인공들과 같음과 동시에 훨씬 복잡한 체계로 이루어진 인물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코브는 테디에서 멈춰있다. 셔터 아일랜드의 테디가 결코 가벼운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테디와 코브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셔터 아일랜드와 인셉션을 같은 종류의 영화로 보는 것과도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다. 적어도 인물이 내재한 불안함에 있어서는 인썸니아의 도머 이상으로,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것에 있어서는 메멘토의 레너드 이상으로 코브는 불안하고 예민하며 광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는 너무 건장하다. 이성적이고 철저하나 결코 예민하게 보이지는 않으며, 심지어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감정도 죄책감이나 그리움 이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디카프리오가 감독에게 휘둘리는 것을 싫어하는 배우인지 아님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감독에게 의존하는 배우인지는 내가 잘 모르겠다. 디카프리오가 자신의 역할을 자신이 스스로 연구하고 창조하는 배우라면 이건 디카프리오가 코브 역할에 대해 잘못 분석한 것이며, 만일 놀란 감독이 지시한 역할의 설정을 디카프리오가 순순하게 받아들이고 연기를 했다면 놀란 감독은 영화 인셉션을 너무나 '평범하게' 만들어냈다.

인셉션을 본 후 며 칠 동안 계속 생각했던 것은 도대체 메멘토, 인썸니아, 다크 나이트와 인셉션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무엇이 영화 인셉션을 충분히 볼거리는 많으나 뭔가가 빠진 허무한 영화로 남게 하는 건가? 였다. 분명 인셉션 리뷰에서 다크 나이트와 인셉션은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다크 나이트가 시각적인 구성과 이야기+주제를 모두 빠짐없이 완벽하게 만들어낸 반면 인셉션에는 다크 나이트를 완벽한 영화로 만들게끔 하는 요소 몇 가지가 빠져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놀란 감독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관적 사유와 객관적 지표를 적절하게 오가는 탁월한 감각이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감독들이 그러듯이 놀란 감독 또한 이 부분에 대한 감각이 상당한데 특히 놀란 감독이 대단한 이유는 그의 영화가 내재하고 있는 주제는 전혀 가볍지 않은 데 비해 영화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계속 오가며 조화를 이룬다는 것에 있으며, 단순히 상업성을 위한 객관적 지표가 아닌, 그의 탁월한 감각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1학기의 이론수업에서 난 자율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사회적 사실이 되어야 하는 작업에 대해 레포트를 썼었는데, 개인적으로 난 소통이 없는 너무나 심오한 작업은 좋아하지 않는다. 소통이 없다. 이 소통이라는 것은 단순히 대중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통이라는 것은 작가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자신한테 갇혀서 끝없이 합리화만을 반복하는 작업이 될 것이냐, 아니면 작은 소통의 여지를 작업에 남겨두어야 할 것인가. 균형이라는 것은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놀란 감독의 영화는 그 균형이 적당하게 잡혀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불친절하지만 친절하다.

그런데 인셉션은 그의 감각 균형이 길을 잃어서 주관적 사유는 없고 상업성을 띈 객관적 지표만 있다. 고통, 광기, 불안함, 예민함, 불완전성, 고독, 유약함 이 모든 등등의 것들이 인셉션에는 빠져있다. 그저 남아있는 것은 참신한 아이템뿐이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상업적인가? 그렇지도 않다. 소재의 참신성, 시각적인 화면을 제외하면 지루하다. 사람들을 크게 전율시키는 단계가 없다. 킥을 통해 꿈이 연속으로 깨지는 장면? 이건 그냥 영화 진행을 위한 장면에 불과하다.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그 핵심이 인셉션에는 없다. 그래서 영화가 묵직하니 강렬하지 않고 싱겁다.

코브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고 사이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꿈의 꿈의 꿈의 꿈으로 들어가고 또다시 말의 방해를 받는다. 그는 결국 림보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결말들은 모두 열린 결말. 이것은 감독의 의도. 왜? 왜 산만해질 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열린 결말들을 사방에 뿌려놓았을까.


(5)

임스, 유서프, 아서, 아리아드네는 결국 모두 쩌리 신세. 그저 인셉션 프로젝트에 동원된 멤버에 불과한 사람들. 아리아드네가 코브의 조력자가 될 수 있을까 했던 것도 잠시. 결국에는 코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 아서는 코브가 아마도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그 한마디로 끝. 너희들 친했던 거 아니었니?

단순히 영화 한 편일 뿐인데 왜 이렇게 아쉬운 지는 나도 모르겠다. 뭔가 더 필요한데 그 뭔가가 없다. 그게 뭔지는 내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 아니니 알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미 본 영화 한 번 더 보는 것도 좀 그렇다. 집에서 계속 돌려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

매거진의 이전글푸싱 데이지-사랑스러운 프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