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관점에서의 스타트업, 대기업 차이
두 번째 신입 과정의 온보딩이 끝났다.
나 또한 닭 가슴살처럼 퍽퍽한 구직 시기를 겪어왔기에 마음속 한편에 도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최근 커리어 시작을 고민하는 몇 분에게 질문을 받고 공유성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아직 내 경험의 밀도가 낮고 설익은 생각이지 않을까 망설이면서 글 쓰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타트업/대기업의 특징을 분석해 정리하려다 … 몇 번 끄적여 보니 시중에 이미 유용한 정보가 많은 것 같아서 그냥 나의 이야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시작에 앞서, 스타트업과 대기업이라는 분류로 일반화하기에는 회사마다 차이가 크다는 점을 염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경우는 처음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스타트업에서였다.
아쉽게도 처음부터 스타트업을 희망한 것은 아니다.
디자인 작업물만 멋들어지게 뽐낼 줄 알았고, 자기 자랑은 할 줄 모르던 난 최종면접에서만 몇 번씩 떨어졌다.
그 시절 끄트머리에는 고생하며 몇 개월을 기다리던 공고에서 “금번 신입사원 공개채용에 어쩌고..” 로 시작하는 불합격 문구를 봐도 아무런 감정의 요동 없이 일상을 이어갈 정도로 무뎌졌다.
그렇게 후회 없이 노력했지만 수확은 없었던 대기업 입사 준비를 미련 없이 뒤로하고, 나는 일단 실무를 시작하면서 내실을 쌓자고 다짐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자의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스타트업에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기에 특별히 빨리 깨칠 수 있었던 점들이 선명하고,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데 큰 자양분이 되고 있기에 감사하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느꼈던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장단점 보따리를 풀어보겠다.
스타트업은 비교적 조직 규모가 작기 때문에, 임원급 분들과 밀접하게 일할 기회가 많은 편이다.
나는 운 좋게도 C-Level(임원급) 분과 함께 매일 붙어 다니며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일과 세상을 인식하는 시야가 남다르신 분이었다. 스펀지처럼 쪼옥 주변을 흡수하던 주니어인 나에게는 세계관 충돌 급으로 임팩트를 남기셨다. 전략적 사고,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 소프트 스킬 등등 자연스럽게 세상을 읽어가는 법을 배웠다. 지금도 그분을 은사처럼 감사하게 생각한다.
주도적으로 일할 기회가 많다는 점.
스타트업의 주니어는 초기 업무 관련 책임이 더 큰 편이다. 실제로 내가 입사하고 맡게 된 업무가 신입치고 꽤나 컸다. 타사와 콜라보를 하는 웹 서비스를 론칭하는데, 나 홀로 디자이너로 투입되어 두 달 반가량만에 서비스를 출시했어야 했다. 혹여나 아찔한 사고를 친다면 수습해 줄 사수가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시니어 디자이너 분을 꽤나 귀찮게 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성장했고, 업무가 손에 익을 때쯤에는 평소 생각했던 개선점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스타트업은 당장 실무에 투입 가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가파르게 성장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단점은 자연 방생 될 수 있다는 점.
스타트업은 대기업보다 평균 근속연수가 짧다. 이런 경향 때문인지, ‘커리어에 남길 만한 업적을 만들고 짐 싸서 떠난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업계에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는 뚜렷한 실적이 우선시 되기에, 아무래도 주니어 양성에는 대기업만큼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 잘 적응해야 한다. ‘알아서 잘 묻고, 찾아서 배우는’ 생존 근육이 어느 때보다 벌크업 됐다.
덧붙이자면 스타트업은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서 헤매면서 조직 자체가 성장통을 겪고 있기에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카오스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게 더욱 벌크업이 된다…!)
대기업의 주니어는 특훈을 받는다.
대기업의 온보딩 과정은 길고 체계적이다. 마치 ‘번듯한 사람 하나 잘 만들어 놓겠다’는 느낌이다. 국가대표가 최고의 경기를 위해 체계적인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식단 관리나 수면 시간까지 별도로 케어를 받듯, 과장 보태면 비슷한 느낌이다. 기본 비즈니스 매너와 직업인으로 갖춰야 할 애티튜드 등을 꽤 오랜 기간 정성 들여서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동기와 선후배를 만난다. 회사에서는 이들의 소중함을 입이 아프도록 강조하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친해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조직에 융화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마도 내 인생 중에 가장 많은 사람과 말을 섞어본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다음으로는 촘촘히 짜인 직무 교육을 받는다. UX 내지 프로덕트 디자인의 관점에서 예시를 들자면, 스타트업에서는 알아서 눈치껏 디자인 시스템을 익혀서 적용하는 식이였다면, 대기업에서는 어떤 구조로 시스템이 짜여있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짧은 실습 과정까지 있을 정도로 세세하게 알려줬다. 신입 입장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바로 이런 점들이 아닌가 싶다.
네임밸류의 힘, 연봉과 복지.
경력이 없는 신입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제시하는 급여나 혜택이 사회가 정한 일반적인 기준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재직 중인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매력적이고 만족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입사 극초창기를 떠올려보면,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열심히 임한 정도는 동일한데, 대기업의 보수가 훨씬 후했기에 나라는 사람 자체를 더 인정해 준다고 생각해서 한동안 퇴근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또 입사 희망자 수가 많고, 비교적 높은 경쟁률 때문에 입사하기 어려운 편이다 보니 네임밸류에 자부심을 느끼기 쉽다. 입사를 위해 몇 개월 동안 쏟은 일련의 노력과 실력, 그리고 행운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자부심은 앞서 언급한 여러 트레이닝으로 빚어져서 돈독한 애사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단점은 의외로 안정감에서 온다.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대기업의 단점은 의외로 명함이 주는 힘에서 오는 것 같았다. 회사가 오랜 기간 쌓아 올려 만든 철옹성 같은 점유율, 명성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이 가장 위험한 것 같다.
AI가 요리도 하고, 맛도 보고, 영화도 만들 만큼 빠르게 변하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대기업의 철옹성이 무너지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가진 힘을 개인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안주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세분화된 직무로 특화된 역량을 기르는 구조인 대기업에서, 만약 내가 몸담고 있는 직무 혹은 분야가 기술로 대체되어 버린다면?... 그러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스타트업에서처럼 어지러운 상황에 적응하는 근육을 벌크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의 안정감에 푹 빠져 있다가 자칫 '명함 맛집'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 또 염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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