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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Nov 09. 2021

하늘의 여운 1

채식주의자

  폐는 돌덩이처럼 굳어지고 있다고 했다. 의사는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폐가 돌이 된다니. 말랑말랑한 폐가 그렇게 딱딱해질 수 있다니. 나는 3년간 딱딱해졌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담배는 여운에게 배웠다. 여운의 얼굴은 동그랗다. 스케치북에 여운을 그리라면 나는 동그라미를 제일 먼저 그릴 것이다. 여운의 얼굴은 동그라미.

동그라미 여운은 3년전 초여름 회사에 들어왔다. 과장은 오늘부터 일할 인턴이라는 짧은 말로 여운의 소개를 마쳤다. 여운은 작았다. 좁은 어깨와 얇은 팔다리를 보면 꼭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같았다.

“김여운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동안 여운의 짧은 머리가 흐트러졌다. 잘 부탁한다는 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여운은 싹싹하고 일도 꽤 잘하는 편이었다. 팀장은 처음에 여운을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운에게 꽤 만족하는 듯 했다. 요즘 대학생들이 웬만한 임원보다 낫다며 여운을 칭찬하는 일도 있었다.

  병원 앞 흡연구역에 사람이 몇 서있다. 각자 다른 곳을 보며 담배를 피운다. 여운의 동그란 웃음을 떠올린다. 참 웃음이 많던 아이였다. 

  그날, 그러니까 여운이 입사한지 한달쯤 지날 무렵 팀장은 회식을 제안했다. 초복이니 팀에게 고기를 사겠다는 것이었다. 채식주의자인 내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제안이었다. 팀장은 꼭 회식 때마다 고기를 먹자고 했다. 식당에 가면 나는 팀원들의 눈치를 보며 채소에 밥을 싸 꾸역꾸역 우겨넣었다. 쌈채소가 넉넉히 나오지 않는 식당이 걸린 날엔 빈속에 술만 털어넣기도 했다. 회식을 하기로 한 삼계탕 집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맨밥을 두숟갈 뜬 후 팀원들의 속도에 맞춰 술을 털어넣고 있던 때였다. 그날따라 몸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평소보다 심하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팀장은 그런 내 얼굴을 보며 고기를 먹지 않아 몸이 허해진 것이라는 둥, 닭죽이라도 떠보라는 둥의 핀잔을 늘어놓았다.

“하늘씨가 좀 유별난 구석이 있어.”

팀장의 말에 불편한 기류가 흘렀고 나는 못들은 척 밥알을 셌다. 팀원들은 팀장과 나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에이. 유별난 건 아니죠.”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여운이었다.

“제 친구들 중에서도 채식하는 애들 많아요. 채식도 종류가 여럿이던데 저도 퇴사하면 채식 시작해볼까 하고 있어요.”

천진한 여운의 목소리가 내심 반가웠다. 

“그래도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지.”

“저는 고기보다 술입니다. 팀장님 한잔 더 하시죠.”

팀장은 여운과 술잔을 부딪치며 웃었다. 팀에 재미있는 막내가 들어와 기분이 좋다고 했다. 여운의 여유와 재치가 부럽고 고마웠다.

회식이 끝날 무렵 화장실에서 여운을 마주쳤다. 여운은 손을 씻으며 내게 씩 웃어보였다.

종이 타월에 닦는 여운의 손이 고왔다.

“대리님. 오늘 술은 조금만 드세요. 빈속에 너무 많이 드신 것 같아서요. 걱정돼요.”

걱정된다는 여운의 말이 낯설었다.

“여운씨, 고마워요.”

툭 뱉은 첫 마디에 여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따라 왜 쓸데없는 말이 툭 튀어나왔는지.

“아까 채식주의자 이야기해준 거. 그게 그냥 고마워서…….”

부하직원에게, 그것도 인턴에게 쩔쩔매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나는 뱉은 말을 수습하려 말을 내뱉고 그렇게 뱉은 말을 수습하려 또 말을 내뱉었다.

“근데 앞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걱정돼서 그래요. 여운씨는 이제 인턴이잖아. 혹시라도 안좋게 찍힐까봐.”

걱정된다는 나의 말에 여운은 안심하라는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안심. 여운은 안심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네. 대리님 말씀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더 조심할게요.”

  자리에 돌아가니 회식은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팀장은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갖다줘야겠다며 닭을 포장하고 있었다.

“자, 다들 집에 잘 가고 내일 보지.”

팀장이 회식종료를 선언하자 직원들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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