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그늘이 져서 아려오는 날,
그날에 보이는 바다는
어쩜 그리도 새카맣게 어두워 보이고
파도는 매서워,
금방이라도 나를 삼켜버릴 것 같다.
한참을 펑펑 울어서 눈이 부르트고
잘 떠지지도 않을 것 같은 순간에
그래도 눈을 치켜떠서 주변을 둘러보면
시야가 점점 검은색으로 물들어 좁아진다.
좁아진 시야에 있는 내가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저 건물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고
어떤 문을 열어보면 내 앞에
귀신이라도 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이 아니라, 그것도 여러 명이서.
그때쯤이면
'트라우마'와는 조금 다른 결에 '트리거'가
내 심장이 금방이라도 멎을 듯
"쿵" 하고 내려앉아,
내 동공을 산만하게 흔들고서
유유히 사라진다.
차라리 계속 마음이 쓰라렸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우울했던 그때가 그리워질 만큼
급작스럽게도 찾아오는 트리거는
마음을 급속도로 아프게 만들어서
누군가 내 명치를 주먹으로
아주 세게 친 것처럼 아파온다.
아프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망치고 싶다.
나는 내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죽고 싶지 않다.
죽을 만큼 우울한 마음에 잠겨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힘든 걸 보면,
내 우울의 근원은 결코
자살을 희망해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마음에 잔뜩 낀 구름을 걷고 난 뒤에
하늘을 오랜만에 쳐다봤다.
왠지 모르게 하늘에 눈이 갔다.
올해의 하늘은 이렇게 생겼었구나.
하늘이 가진 색은 푸르고
구름은 뭉게뭉게 껴있으면서도
태양은 잘 보이고,
맑았구나.
왠지 모르게 밤하늘에도 눈이 갔다.
햇님이 들어가고 달님이 떠올랐을 때
하늘을 쳐다본 적은 최근 들어 없었다.
어두운 하늘을 뭣하러 쳐다보나.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고개를 들어봤자 가로등까지였다.
딱 거기까지였는데.
고개를 조금만 더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고 살았더라면
마음이 금방 구름이 걷히듯
그렇게, 나아졌으려나.
일찍 집으로 돌아갈걸.
외면하고 살았던 이 바램이
바깥으로 나와보니 내가 사는 동네에는
바닷비린내가 향긋하게 나고,
석호는 푸르며 아름답고,
저 하늘은 내가 있는 이 땅보다 훨씬 멀구나.
내 늦은 걸음을 후회하도록
미련한 마음을 부추겼다.
이제는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야지.
이제는 가로등보다 더 위에를 쳐다봐야지.
이제는 도망치지 말아야지.
이제는 바다가 어둡다는 듯 보이지 않을 거야.
마음에 앉은 딱지를 떼지 말아야지.
딱지가 사라지고 새 살이 올라올 때
다시 진물이 터지지 않게
내 마음을 지켜야지.
소신을 지키고,
애써가면서까지
하늘을 외면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