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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연 Sep 03. 2024

날씨의 요정

잘 가, 잘 자, 잘 지내

차마 네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는 한번 너에게

내 진심 담아 사과를 건넨 적이 있는데,


네가 내 사과에 진심을 느껴 내게 몸을 부비고 눈물을 닦아줬어


너는 꼭 내 하루를 시작할 때면 생각이 났어.

내 하루의 기분을 결정할 만큼

 내게 큰 존재는 없었는데,


너는 꼭 그런 존재였어.


네가 외롭다는 이유로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소식,


네가 외롭다는 이유로 한 끼의 밥을 굶고

온종일 우리만을 기다렸다는 소식,


너와 내가 오랜만에 만났을 무렵에

발자국 소리 몇 걸음 하나만으로 나를 알아보고

대문 앞에서 꼬리를 살랑이며 나를 기다렸던 소중한 모든 순간들...


너는 늘 외롭다고, 내가 필요하다고,

배가 고프고, 물이 필요하다고,

너만의 공간이 더러워졌으니

다시 깨끗하게 해달라고,


"우와, 그건 뭐야? 정말 신기하게 생겼잖아!

나도! 나도 만져볼래. 향이 어떤지 맡아보고 싶어.

나도, 나도 같이 하면 안 돼?

나도 너랑 함께 하고 싶어."


그런 네 생각이 어수선한 잠자리가 끝나자마자 생각이 날 때도 있었고,


너의 모든 모습이 머릿속에 상상돼서 정말 갑자기 아침부터 울적해지기도 했었고,


오랜만에 너를 만날 수 있게 되었을 무렵에는 행복하기도 했단다.


너는 내 날씨의 요정이었잖아.

날씨가 우중충한 날에는

신기하게 너의 외로운 모습이 생각나

 왈칵 눈물이 나기도 했고,


어느 밝은 날에는

너와 잔디구장을 함께 산책하며

네 목에 걸려있던 목줄을 풀어주고

뛰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그런 날에는 꼭 날씨가 맑았어.


거봐, 너는 날씨의 요정이었어


이 세상을 등지고 싶었을 무렵에는

 모순적이게도 날이 밝았고, 맑았는데

그냥, 정말 죽고 싶었어. 그런데 그때

 너는 내 표정에 대해 물어봤고


눈치를 챈 건지 장난스럽게 뛰어다니던 네가 걸어서 나한테 오더니

두 뺨에 흐르던 눈물을 핥아주고

 네 자그마한 품을 빌려주었어.


내가 너를 어떻게 남기고 죽어.

내가 어떻게 너를 잊고 지낼 수 있겠어.


네가 외로운 걸 다 알면서도 이 세상을 등지려고 했던 어리석은 네 친구를

왜 그러려니, 안아주고 달래줬어?


"괜찮아, 나 쓰다듬어줘서 고마워.

나 보러 와줘서 고마워.

네 침대에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


내가 병원에 있었을 때

어쩌면 너의 어린 기도에 하나님이

내게 기회라는 걸 주셨던 게 아니었을까.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함에 잠겨있던 어느 낮에

하늘에 무지개를 피게 해 주었던 것도 전부

순간 네가 해준 기도 덕분인 거, 맞지?


아가야,

내 하나밖에 없는 친구야,

내가 정말 사랑했던 천사야.


이제 외로움에서 떠나 아픔 없고 고통 없는 곳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들 잔뜩 먹고,

 또 달라고 이야기해서 또 먹고,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면서


때마다 내 생각해 줘. 그럴 거지?


네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이전에

사실, 꿈에 네가 나왔었어.


나랑 행복하게 재미있게 놀고 있다가

 글쎄 네가 잠에 든 거야.


분명 별 일 없이,

아까까지 별 탈 없이 네가 누워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꼭 숨을 안 쉬는 것 같았어.


잠에 들었구나.

어제 많이 피곤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네가 나온 꿈을 메모지에 적어놨었는데,

너무 슬픈 꿈이라 적어놓은 것도 다 지우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려버렸어.


그리고 훗날 네 소식을 접했을 때 깨달았지.

나한테 미리 인사해 주러 온 거였구나.

하고서.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운명을 거스르지 못해서 결국 떠나게 될 걸 알고

미리 인사해 주러 온 거였구나.


나 찾아와 줘서 고마워.

잘 자, 잘 지내야 돼


정말 많이 사랑해.

미안해. 너무 미안해.

미안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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