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II
: 외로움은 감정보다 고통에 가깝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단순한 취미가 아닌 '기록하기'에 가까웠다.
내가 갖고 있는 열등감을 달래보기 위해서
타인의 단점 그리고 아픔을 들여다보기 싫었다.
그건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한다면
내 자신감이 더 떨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과거 19살 때부터 20살 때까지의
내 모습을 기록한 다음,
자전적인 소설을 작성하는 데에 성공했고,
내 유일한 성공에 관심을 가진 출판사에게
출판에 대해서 먼저 컨텍 제안이 들어왔고,
아쉽게도 컨텍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혐오스런 내 일생 중
그런 축복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어쩌면 이미 그렇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죽음에 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순간이 있는가?
죽음 이전에 내 일생을 돌아보고,
눈물을 흘려보기도,
어이없다는 듯 웃어본 적 또한 존재하는가?
/
글쎄,
나의 고통을 담아낸 글은 완성 이후,
"절대 꺼내보지 않는다." 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에 넣어놓고서
내가 느끼기에 "힘들다."라는 생각이 들 때면
그때마다 상자는 저절로 열리게 되고,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비참한 나 자신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준다.
'이때'가 더 힘들었구나.
나 '지금'은 잘 살고 있는 거였구나.
'지금'이 가장 힘든 순간인 줄 착각하고 있었구나.
.
그렇게 내게 위로를 전하고,
위로가 끝나면 그 글은
다시 상자 안에 들어가게 되고
복잡한 감정을 한 아름 덜어내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늘 지내왔다는 말이다.
나는 경계성 인격 장애(BPD) 환자다.
경계성 인격 장애는,
관계, 자아상, 기분, 행동의 불안정성과
거절당하고 버려질 가능성에 대한
과민성의 패턴이 만연함을 특징으로 하는
정서가 불안한 정신 건강 상태를 일컫는다.
/
나는 교복을 벗고 등 떠밀리듯 성인이 되어서는,
이루어낸 업적이라고는,
'자살을 희망하는 나'를 위해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소설을 작성한 것.
그렇게 해서 나를 몇 번이나 죽여서
몇 번씩이나 나를 살려낸 것.
/
어릴 적부터 내게 '우울'이 존재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평범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겠고,
우울을 한 줌씩이라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혐오스러운 내 일생에 있어서
이승이란 지옥이고,
지옥에서 마주친 잘못된 자들은
어쩌면 그게 인간 본성이며,
때마다 느끼게 되는 고통은 씻을 수 없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사실 감정이기 이전에
일종의 고통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손목이 골절되었을 때,
골절이 처음이었기에
부러진 것도 모른 채
2주 동안 지냈던 것처럼
외로움이라는 고통이 처음이었기에
외로운 줄도 모르고서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간절하고 순진한 마음을 가진 나에게로부터
당신은 대체 무얼 원하느냐 물으니
단순한 '쾌락'이라 대답하였고,
나는 타인의 쾌락으로 인해 천천히 망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이 짙어져 갈 무렵에는
나도 내가 외로운 줄 알고 있었고,
처음 만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러면서도 가까이 지냈다.
잠깐의 따뜻함이 좋았고,
나에게 있어서 쾌락은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느낄 수 있는 온기를 실컷 다 느끼고서,
그렇게 해봤자 고통은 흐른 시간에 비례할 만큼
짙어져 있을 거란 사실을 간과한 채,
나는 외로움*고통 으로 인해
목마른 사람이 된 거다.
3년 전 이맘때쯤 타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나는 3년 동안 고향 친구들과
멀어질 만큼 멀어졌으며
내게 친구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당장 내게 친구가 필요한 줄 몰랐다.
누군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때면
그 따뜻한 온기에 곧장
우정이고 사랑이다 생각하며
금방 마음을 주고 고통 위에 고통을 얹어
나는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BPD 환자이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내 곁에 두기에는 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을까 봐
그게 겁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
점차 강하게 기피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나는 모순적이게도
사람을 찾고 있었고,
순식간에 '이방인'이 되어버린 내가
대인관계를 꾸릴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은 단 두 곳,
직장 혹은 병원.
모두 원래 알고 있었던 고통이 아닌
새로운 상처를 느끼게 하였고,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방황하게 된 어린 어른인 나는
병원에서 만난 나이 또래들에게
관심이 가게 되었고,
지난 3년 중에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동생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나는 병원에서 웃음을 참을 수도,
미소를 참을 수도 없었다.
앞서 언급한 병원은 일반병원이 아닌, 정신병원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나와 가까운 유일한 사람들,
이를테면 *가족 이 있겠다.
부탁을 할 정도로
나름 나의 소중한 인연들을 끊도록 하였고,
나는 텅 빈 집에서
또다시 몇 년을 지내야 하는 거구나.
외출을 해도 누굴 만나러 가는 게 아닌
방황일 뿐이며,
: 이런저런 생각을 없애기 위해
약을 먹고 생각을 비우게 됐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내뱉는 말은
탄탄하지 않고, 뼈가 없으며
그렇기에 주변으로부터의
만류를 거절(거부)하는 행위와
본래 내가 갖고 있던 병(BPD)을 연결 지어
아직 아픈 나를 나무란다.
어느 날에는 아이를 지키는 듯 바라보고,
어느 날에는 어른이면서 이러느냐며 나무라고
내 선택에 대해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내가 단순히 어른이 아닌,
어린 어른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실
가족의 영향이 가장 크다 생각한다.
나는 꼭 정답이 있어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오감으로 느끼고,
눈물도 흘려보고 미소도 지어보며
나는
직접 느껴봐야지만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족 는 또다시
몇 번이나 부딪힐 것이 예상된다.
그런 여러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내가 초등학교 6학년, 13살 때
부모님 두 분 다 가게에서 일하시느라
집에 혼자 있었던 내가
: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느냐고,
아는 척하지 말라고,
우리는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졌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을 것이라며
그렇게 이야기했던 2014년 그날이 생각났다.
이에 엄마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물만을 흘렸으며,
다음날이 되니,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시작되고, 나는
구석에서 눈물을 훔쳤다.
도망치고 싶다.
도피하고 싶다.
아무런 걱정도, 무언가*누군가 의 간섭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너와 내가 함께
잘 지낼 수 있길 바란다.
그냥… 사랑이었는지 우정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너와
조용히 도망치고 싶다.
내가 있는 이곳은 너무 차갑고,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