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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와이 Aug 08. 2019

너무 미안한 첫째, 마냥 예쁜 둘째

아이 둘의 육아란,




둘째 출산한지 36일.



더위가 절정을 이르는 때이다보니, 에어컨은 필수이다.

아무리 감싸고 있지만 차가운 에어컨 바람으로 인해 내 몸은 차디차다. 산후조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건지

한 달은 온 몸이 시려 고생을 한 듯 하다.

이젠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순 없다. 100일때까진 긴 팔 긴 바지 양말을 꼭꼭 신어야지. 내 몸 아프면 육아도 힘들다.

그러니 내가 챙기는 수 밖에.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와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2주간 이용하고, 본격적인 육아와 살림속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으려는 첫째를 깨워 어르고 달래 어린이집에 보낼 채비를 한다.

버릇을 이렇게 들이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으면 아이 둘을 감당할 체력이 안되는 걸 알기에, 어르고 달래 어린이집에 보낸다.












잠투정이 심한 아이는 하나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드러누워 울기 시작한다.

옷 입는다고 했다가 옷 주면 안 입는다 하고

그럼 다른거 입자고 하면 소리지르며 내가 고를 거라 하고

직접 고르라고 하면 엄마가 해달라고 하고

내가 가져오면 이거 아니라고 하고

어찌저찌 입히려면 이렇게 입는 거 아니잖아 하며 소리지르고 눈물콧물 범벅으로 울고 있다.



화도 내보고 달래도 보지만, 지금까지 방법은 없다



그냥 따님 심기 건드리지 않게 잘 맞춰서 보내는 수 밖에



아이뜻을 다 맞춰주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수 많은 육아서에서 아이에게 끌려가면 안된다는 걸

엄마의 일관성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 아주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다 알지만

육아라는 게 참 그렇다. 뜻대로 되지 않고

참을 인 자를 새기며 늘 그렇듯 마지막엔 소리지르는 날 발견하곤 한다.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늘 다짐하지만,

왜 이렇게 다짐과 현실은 다른건지.



그렇게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나면,

언니 준비시키는데 뒷전이었던 집이 떠나가라 우는 우는것마저도 귀여운? 둘째가 날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인 왜 이렇게 예쁜건지



첫째는 앞으로 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전혀 짐작할 수 없어 두렵고 신기함이 더 컸었다. 어느새 커버린 아이에게서 신생아 시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잘 키워야겠다는 부담감이 더 컸던 첫째의 육아.



그에 반해 둘째는 어떻게 커나갈 거란걸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기에 마음이 편해졌다는 사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사랑스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둘째는 그냥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지도.












언니가 하원하기 전까지 이 시간은

둘째에게 온전히 올인할 수 있는 시간.



많이 예쁘다해주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안아주고



물론, 식구가 하나 더 늘어서인지

넘쳐나는 빨랫감과 소독할 젖병들과 설거지 등

끝없는 살림의 반복이지만, 하루 중 제일 고요한 이 시간



첫째 키울땐 주위 도움없이 혼자 육아한다는 사실에

힘든것이 먼저였는데, 둘째를 낳아 키워보니

아이 하나 보는 건 껌?이다 ㅋㅋ



오죽하면 동생이 집에 와서

조카와 첫째 서율이를 삼촌손에 키카 보내놓고는

자유다! 라고 외쳤을까.

집엔 둘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그만큼 이 아이 하나 보는 건 쉽다. 하하





물론, 잠 못자고 밤새 분유를 타야하고 트림시켜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지만 그런 건 아이를 키우며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기에 내 컨디션만 조금 조절하면 전혀 힘든 일은 아니다.











다시 돌아와, 첫째와 둘째의 육아

따로 케어할 땐 전혀 부딪히지 않았던 일들이

같이 있기에 부딪히는 매 순간.









둘째가 태어나서 첫째 아이가 변했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변한 건 엄마 자신일지 모른다.





똑같은 상황도 혼자 있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을

달라진 환경 속에서 이 아이가 조금 더 4살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못된 엄마 마음.





겨우 32개월 살아가고 있는 내 아이.



며칠 전, 변기에 응아를 하고 뒷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대로 누워서 장난치는 아이에게

“응아 닦으려면 누워버리면 어떻게 해. 빨리 일어나”

명령조의 말을 아주 부드러운 척 하는 나란 엄마.



그러다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너무 화가 나서,

엉덩이를 찰싹 때려버렸다.



아팠을텐데 그저 그 자세로 가만히 있는 아이.



놀라서이겠지. 그러다 아빠에게 가서 엄마가 이랬다고 울먹거리고, 나 또한 그대에게 한소리 듣고.



화가 풀리지 않아서인건지, 아이에게 이러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인건지 칭얼거리는 둘째를 안아재우며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 아이에게 화낼 게 뭐가 있다고.

동생이 생기면 당연히 어린아이가 되고 싶고 더 관심을 받고 싶은 그게 지극히 당연한 아이인데,



뭘 그렇게 4살언니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건지.





육아란 내 감정의 롤러코스터같다.



내 기분이 좋으면 뭐든 받아주는 친절한 엄마

그럴 땐 둘 키우는게 하나도 힘들지 않은 육아이지만,

몸이 힘들고 반복되는 육아에 지칠때면 한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같은 기분. 그럴 땐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울 걸 뭐 한다고 내 욕심에 둘을 낳아서 힘든건지. 다 그만두고 싶은 극한육아.













그래도 다행인건, 첫째가 둘째를 많이 예뻐한다는 사실.



분유도 먹여주고, 안아주고싶어하고, 아이가 울면 엄마 빨리 안아달라는 나의 서율이.





적응해야 하는 건, 나 뿐만 아니라 첫째 아이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인데 그 시기를 엄마가 잘 맞춰주고 기다려줘야 하는 것.



그런데 왜 난 아이에게 “안돼”라는 말만 달고 살고,

내가 내 감정을 조절하지도 못하면서 왜 아이의 행동만 바뀌길 바라는지.



아이가 울지 않고 등원했으면 좋겠고, 혼자 블럭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고, 목욕하자고 하면 네 엄마하고 바로 했으면 좋겠고, 밥도 차려주면 다 먹었으면 좋겠고, 초콜릿만 달라 고집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게 다 내 욕심이었다.



그럴거면, 말 잘 듣는 인형을 키워야지.



엄마의 말만 잘 듣는 순종적인 아이를 키우는 게 내 육아의 목표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난 순종적인 아이의 모습을 원하고 있었다.





날 채찍질하고, 날 원망하게 된다.

이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생각과 행동이 다른 바보같은 엄마라서, 더 미안하고 미안하다.







나도 엄마가 되는 과정일테지.

조금 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반복되는 육아에 조금씩 날 놓게 되지만 다시 날 일으켜 세워야겠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들.

지금이 적응해나가는 과정일테고, 이 시기가 지나면 분명 나도 아이도 적응이 완료되는 날이 올테니.



엄마인 내가 나무처럼 우뚝 서있어야

아이도 내게 기댈 수 있을거다. 흔들리지 말고 엄마인 자리를 지키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나를 단련시키는 일.



오늘은 하원해서 돌아오는 아이를 더 많이 안아줘야겠다.

더 자주 사랑한다 말해주고, 언니임을 강요하지 말아야지.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엄마인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사실.







오늘도 힘내자

나의 행복한 육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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