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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은 Jul 02. 2022

그 시절, 공주님을 사랑했던 남자들

남자는 핑크지


때는 바야흐로 8년 전, 15살 차이 나는 나의 쌍둥이 남동생들이 4살의 나이로 어린이집을 가게 되어 한창 준비물을 구입할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엄마가 동생들을 데리고 식판과 숟가락, 젓가락을 사러 갔는데, 그들이 골라온 것은 다름 아닌 겨울왕국 세트였다.


“웬 겨울왕국이야? 아주 공주공주 하네.”

“애들이 골랐지 뭘.” 엄마는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도 별 말은 안 했지만 내심 사내 애들이 무슨 공주 세트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면 이 아이들은 또래 남자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몇 가지 예를 들자면,


1. 6살 무렵, 첫째는 노란색, 막내는 분홍색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순전히 자기들의 취향이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본인의 물건은 본인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게 해 주었다.)

2. 다른 애들은 칼싸움, 총싸움하고 놀 때, (물론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동생들은 주방놀이를 하며 밥을 차렸다.

3. (자동차 레고 같은 것도 사긴 했지만,) 주로 동물이 들어있는 레고를 좋아하고, 그것으로 시골 마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한때는 겨울왕국 레고를 좋아했다. (올라프 귀여워.)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나는 내 동생들 독특한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다.


취향이 듬뿍 담긴 그들의 핑크 돌고래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말하기를, 친구가 ‘남자색은 파란색이고, 분홍색은 여자색이다. 네가 신은 것은 여자색 신발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남자색, 여자색이 어디 있어.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색일 뿐인데.”


근데 생각해보니, 동생들이 겨울왕국 식기류를 골라왔을 때도, 노란색과 분홍색 신발을 골라왔을 때도, 사내답지 않게 취향 독특하네,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였는데, 되려 그 친구가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말하고 있었다.


나도 멍청했구나.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나마 발설하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여자색, 남자색은 없어. 그냥 아무 색이나 좋아하면 돼!”






산부인과에서 처음 아이의 성별을 “파란 옷, 준비하셔야겠어요.”라고 알려준다. 그 말을 시작으로 온갖 파란 물품이 선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자아이는 파란색, 여자아이는 분홍색을 주로 좋아하는 이유가, 어른들의 편견으로 인해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봉태규 배우의 치마 차림에 갑론을박을 펼치는 것은,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 그저 단순히 익숙하지 않음으로부터 오는 어색함 때문에서 비롯된 불편함이라는 것을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소아암 환자에게 머리카락을 기부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기르던 나의 사촌 남동생이 학교에서 놀림을 받아 힘들어하던 것은, 부모조차 이 불편함의 출처를 제대로 알지 못해,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오늘도 나의 쓸데없는 편견에 무언가가 변하지 않았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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