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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은 Jun 21. 2022

쓸모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형, 형은 기부해봤어요?"



"기부는 무슨. 벌어서 처자식 먹여 살리기도 버겁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해서 꿈도 못 꿨거든요. 근데 요즘 달에 1만 원씩 고아원에 기부하고 있어요."



"그래? 그렇게 적은 돈도 기부가 돼?"



"큰 건 못 해줘도 햄 한 통은 더 사 먹이겠거니 하면서 내요. 사실 요즘 인생에 회의감이 좀 들더라고요."



"무슨 일 있었냐?"




남자가 소주병을 들어 다른 남자의 빈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건 아니고,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루 벌어 하루 사니까, 나름 열심히는 사는데 사람인지 짐승인지 싶어서요. 저 들판에 짐승들도 지 새끼 먹이겠다고 하루 종일 뛰어다닐 텐데, 나 사는 꼴이랑 뭐가 다른가. 열심히 사는 건 지구에 어느 동물이나 다 또이또이 할 텐데 말이죠."




두 남자가 잔을 한 번 맞댄 뒤 입에 털어 넣고는 한 껏 인상을 찌푸렸다.




"야,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가족들 굶어 죽지 않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냐."



"뭐, 그렇긴 하죠. 근데 뭐랄까, 누가 야, 너가 사람으로서 쓸모 있냐?라고 묻는다면, 섣불리 대답이 안 나온다는 거죠."




남자가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여차저차해서 기부를 하게 됐는데, 이게 기부를 하면요, 거기서 가끔 감사 편지를 보내줘요. 후원자님 덕분에 아이들이 추운 겨울을 잘 나고 있다는 둥, 후원자들한테 다 똑같이 보내는 형식적인 편지일 텐데 이게 참 묘하대요."



"거기도 정성이 갸륵하네, 소액 기부자한테도 편지를 다 보내주고."



"그러게요. 아무튼 이게 편지가 쌓여가는 걸 보니깐요, 엄청시리 뿌듯하더만요. 남들이 보면 1만 원 주제에 드럽게 생색내네 싶을 테지만, 나한테는 나름 자부심이더라고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는데, 조금은 쓸모 있어진 기분이라고 할까요."



"1만 원으로 애들이 아니라 네가 덕 봤네. 지 좋을라고 하는 거구먼."




두 남자가 가볍게 웃으며 남은 소주를 잔에 마저 따랐다.




"결국에는요, 인생은 자기 쓸모를 찾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뭐, 방법은 각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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