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돈 없어서 지금은 못 그만 둬
들어가기도 어렵고, 초봉도 높아 경쟁률이 센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마냥 즐겁던 2주간의 교육기간이 끝나고, 바로 담당자가 되었다.
부서 배치 후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퇴근할 때마다 매일 울었다.
대학원 생활을 보내고 나니 야근하는 건 문제 되지 않았는데,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30분마다 울리는 전화기,
각종 법령, 시행령, 매뉴얼, 가이드라인,
읽을 새도 없이 휘몰아치는 메일들.
인턴 기간 3개월 동안 1300여 개의 메일을 받고, 720여 개의 메일을 보냈고, 메일함은 4GB를 육박했다.
매일매일 야근을 해도 끝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무서웠다.
일과 일상을 분리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자느라 꿈에서도 일을 했다.
사실 나도 안다. 아버지가 보기에는 그저 나약해 보일 수밖에 없음을.
일한 지 3개월만에 힘들다고 하는 건, 그저 적응을 아직 하지 못해 그런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음을.
앎에도 버티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슬프고 기운이 빠졌다.
그냥 우스갯소리로라도 그만두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만둬도 괜찮다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야근을 끝내고 돌아와서 맞이하는 내 시간 중 밥 먹고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2시간 남짓.
버티라는 말에 일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버릇처럼 키는 메일함.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한 중압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버티지 못하면 나약한가?
다들 버티는 건데 나만 못 버티는 건가?
나만 나약한가?
나는 나약한가 보다.
그만 둘 마음에 확신을 얻고자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만둬도 지켜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정감으로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은 감기로 재택근무를 했더니, 얘가 얼마나 그렇길래 힘들다 그러나 싶었는지
아버지가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업무 보는 것을 구경하셨다.
공식적인 퇴근시간을 내내 기다리시더니, 나에게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셨다.
그만둬도, 우리 셋 굶어 죽진 않으니,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기름을 붓는 말인데도, 왜인지 모르게 더 버텨봐야겠다는 힘이 생긴다.
이 모순적인 오묘함에 대하여,
가끔은 정답이 정답이 아닐 때가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