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마더테레사 하우스 봉사활동
세계일주를 떠나면서 꼭 해야 하는 일 3가지를 정했다. 첫 번째는 류현진과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는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는 인도 캘커타에 위치해 있었다.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였던 캘커타는 마더 테레사가 평생을 바쳐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봉사한 곳으로 유명하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분의 유지를 이어받아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계속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 곳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는데, 특히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러 간 3월에는 한국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터라 한국보다 일본 사람들의 비율이 매우 높았고, 다음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대만, 중국, 핀란드, 독일, 벨기에, 영국, 미국 등등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신청 시 등록 카드를 받는다. 시작일과 함께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되기 때문에 끝날 때 완료 날짜와 함께 완성된 수료 카드를 받는다. 나는 이 곳에서 한 달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는 분류에 맞게 시설들이 나누어져 있었고 그 당시 TO 있는 곳에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아기들이 있는 시설은 항상 인기가 많았다. 나는 TO도 넉넉하고 한국분들이 많이 봉사한다는 노인들을 위한 시설인 Nirmal Hriday 로 신청했다.
아침 새벽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일어나 기계적으로 씻고, 마더 테레사 하우스까지 걸어갔다. 20분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새벽 6시쯤에도 사람들이 조금씩 나와서 아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6시쯤에는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갈 수 있었다. 혼자 가기도 하고, 옆 방에 살던 중국 친구랑 같이 가기도 하였다.
시작
마더 테레사 하우스의 하루는 아침 7시에 다 함께 하우스에 모여서 빵과 바나나 등 아침을 먹으며 시작한다. 그때 모든 시설의 봉사자들이 함께 모여서 새로 온 사람들, 오늘이 마지막인 사람들, 한창 봉사 활동하는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진다. 수녀님의 기도와 함께 각자 시설 별로 모여서 함께 이동한다. 간단한 공지사항들도 이 때 이야기한다.
내가 가던 시설은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80년대 배경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며 30분 정도 이동하는 시간이 동료들과 재밌게 수다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함께 신청했던 한국분과 중국에서 온 친구랑 특히 어울렸다. 몇 달 동안 오래 봉사하고 있던 핀란드 친구가 먼저 살갑게 다가와주어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부부가 함께 왔는데 와이프는 다른 시설에서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빨래
도착하자마자 쉴 틈 없이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끼고 시설 전체의 빨래를 빤다.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로 시설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을 다 빨아야 한다. 세 팀으로 나누어져 한 팀은 세제로 때를 벗기고, 한 팀은 몇 번에 걸쳐 물로 헹구는 작업을 한다. 또 한 팀은 꽉 짜서 옥상에 빨래를 너는 작업을 한다. (다 끝나면 모두가 올라가서 빨래는 너는 작업을 한다.)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사지 및 산책
노인분들 중에는 정정한 분도 있는 반면 움직이기도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셨다. 바셀린을 한 명씩 가지고 가 노인분들 중 마사지를 원하는 분들께 정성스레 손과 발, 어깨를 마사지를 해주었다. 말이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하며 소통하려 노력했다. 익숙하신 분들은 자연스럽게 받아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귀찮아하는 분들도 계셨다. 오래 봉사한 친구들은 이미 친해져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농담도 하고, 간단한 보드게임도 즐기기도 했다.
한 분씩 손을 잡고 방을 몇 바퀴 돌면서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움직여주어야 한다고 부축을 받아 다들 시계 반대방향으로 음악과 함께 빙글빙글 돌았다.
식사 준비
마지막 단계인 식사 준비다. 백여 명 가까이 되는 분들의 식사를 한꺼번에 해야 해서 대용량으로 준비되었다. 식사는 수녀님들과 주방이모님들이 만들고, 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을 1층으로 옮겨야 했다. 식사시간에는 배식을 하는 사람과 옆에서 식사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팀을 나누었다. 배식을 받는 분도 있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직접 배식을 받아주고 숟가락을 떠먹여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면 다 함께 설거지를 하고 모든 식기들 정리까지 마치면 비로소 봉사활동이 끝이 난다.
마무리
봉사활동이 끝이 나면 간단한 마실거리와 먹을거리를 준비해준다. 특히 이곳 짜이가 맛있어서 하루에도 몇 잔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점심은 가끔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대부분 짜이 한잔 하며 잠시 쉬고는 각자 헤어졌다.
봉사활동은 아침부터 점심까지 이루어졌고,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저녁까지 봉사를 더 했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아침만 봉사활동을 해도 기진맥진한다. 그래서 대부분 아침 봉사활동만 하고 점심시간에 각자 돌아가는 편이 일반적이었다.
아침에는 모두 하우스에 모여서 함께 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은 각자 알아서 집에 갔다. 나는 여기서 만난 한국분 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거나, 가끔씩 봉사자 들과 함께 멋진 식당들을 찾아가 함께 점심을 먹곤 하였다. 점심 이후에는 각자 휴식을 취하거나 관광을 하거나 놀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주로 휴식을 취했는데, 오후에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 밖에 나가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봉사자들은 매일 같이 바뀌었다. 하루만 하고 가는 친구들도 있었고 3일만 하거나 1주일만 하기도 했다. 몇 명은 몇 달씩 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매일이 새로운 만남이었고 매일이 새로운 이별이었다. 처음보는 친구라도 몇 주를 본 친구라도 똑같이 함께 빨래하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버스를 타면서 친해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친구도 있었지만,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는 언어를 초월한 소통을 느꼈다.
이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무언가 교훈을 얻거나 깨달음을 얻거나 얻은 게 있냐고 물어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고 체력이 좋아진 거 이외에는 없었던 거 같다. 그럼에도 순수히 봉사를 한 적이 이 번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만 해도 봉사학점이나 봉사시간을 채워야 해서 하는 봉사 거나 이력서에 한 줄 쓰기 위한 봉사를 했다면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는 순수히 바라지 않고 봉사만을 한 경험을 얻었던 것 같다. 그 경험이 무척이나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