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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Aug 14. 2019

죽음에 대하여

인도에서 사색한 죽음에 대하여 


마더 테레사 하우스 노인시설에는 특별한 보드판이 있다. 요양원 정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기둥에 화이트보드가 있다. 그곳에는 오늘 일하는 수녀님 수 그리고 요양원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은 그 숫자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죽음은 몇 차례 겪어보았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친한 친구의 죽음. 무엇하나 예상한 죽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행복하게 하늘로 가셨을까? 무거운 죽음이라는 주제가 하루 종일 나를 뒤덮었다. 그렇기에 숫자 현황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죽음을 경험했다. 


마더 테레사 묘에 놓여있던 꽃


어느 날씨 좋은 날, 여느 때와 같이 룰루랄라 하며 친구들과 함께 봉사를 하기 위해 도착을 하였다. 자주 어울리던 상해 출신 친구와 버스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우리 둘을 수녀님이 잠깐 따라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따라갔다. 우리가 간 곳은 한 작은 방이었고, 그 방에는 들것에 두꺼운 천으로 둘둘 감싸 놓은 물체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돌아가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레 들어서 밖에 나와보니 장례차량으로 보이는 차가 뒷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현황판은 전날보다 숫자 하나가 줄어있었다. 


무거운 마음과 함께 나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바셀린을 들고 할아버지들의 팔과 다리를 마사지했다. 보통 한 명이 한 할아버지를 전담하는 것이 아닌 그날그날 다른 할아버지들을 마사지한다. 오늘 맡은 할아버지는 내가 다가가자 조용히 두 팔을 나에게 들어주셨다. 열심히 바셀린을 발라주며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나도 말이 없었고 할아버지도 말없이 딴 곳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손을 잡아주었다. 깜짝 놀라 보았던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를 보아주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께서 마사지를 그만하라고 하신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본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에 얼굴을 어둡게 있지 말라고 다독이는 것 같았다. 빙그레 웃으시는 그 얼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바라나시


바라나시.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

콜카타 이후 바라나시로 향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에서 가장 유명한 성지 중에 한 곳이다. 특히 바라나시에 만나는 갠지스 강은 힌두교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다들 죽기 전에 이곳에 와서 갠지스강에서 화장을 하고 자신의 재가 강에 뿌려지는 것을 원한다. 바라나시에 가면 한쪽 편에 하루 종일 타고 있는 화장터를 만날 수 있다. 가까이는 가지 못하지만, 꽤 근처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사진을 찍는 것은 고인에 대한 실례이기 때문에 화장하는 모습은 찍지 않고 눈으로 담았다. 뭐랄까. 죽음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화장터에서도 바라보았고,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한 번 보았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죽기 위해 산다고도 하지 않는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멋지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주변에 누군가가 영원히 이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렸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하여

그런 적이 있다. 대학교 3학년 시절, 평소처럼 늦잠 자던 자취방에서 한 꿈을 꾸었다. 너무나 생생하여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꿈이다. 바로 어머니가 없어진 하루였다. 꿈이었지만 정말 꿈에서는 하루 동안 어머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전까지 가족의 부재. 특히 부모님은 항상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존재였고, 상실의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꿈이 깨고 난 다음 연락도 잘 안 하던 부모님에게 생사확인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이 평생 함께 있을 줄 알고 있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처음 돌아가셨을 때가 초등학교 2, 3학년쯤이었다. 그때는 죽음의 의미조차 몰라서 사람들이 우는 장면이 마냥 웃기기만 했다. 아버지께서는 20대 후반쯤에 나를 낳으셨으니, 어림잡아도 아버지 나이 30대 후반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렇다. 짧게는 당장 내일 돌아가실지도 모르고, 아버지와 만남이 10년도 안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언제 가까운 사람과 이별할지 모른다.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 하루가 정말 소중했다. 봉사활동에서 나와 잠깐 이야기 나누고 산책했던 그 시간이 노인분께는 마지막 하루의 조각 중 하나였을 것이다. 누군가에는 마지막 소원일 수도 있는 바라나시에 나는 도착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했는데, 나는 지금 하루를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여행을 다녀와서도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도, 지금 다시 그때를 기분을 적은 일기장을 읽어보며 지금 나는 하루를 잘 살고 있는가. 부모님과 순간을 더 소중히 함께 하고 있는가. 눈에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건,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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