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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Oct 02. 2019

여행에서 만난 "뜻밖의 일"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중 "추방과 멀미"에서 만난 뜻밖



지금 내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작가의 여행"과 많이 비슷하다고 말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가들의 여행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곤 한다. 직접 강연도 찾아갈 정도로 열광하던 김영하 작가님께서 여행에 대한 에세이를 출간했다. 환호성을 질렀다. 읽고 또 읽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고 공감이 가지 않던 부분도 있었다. 본인의 여행이니까. 그래서 내가 소화한 김영하의 여행을 정리해보았다. 


김영하 작가님의 책 "여행의 이유"에서 작가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유튜브가 대세가 되면서 "유튜브 각"이라는 말이 새롭게 트렌드가 되었다. 보통 "유튜브 각"이라는 말은 유튜브에 올려도 될 정도로 재밌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유튜브에 올리면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뜻이다. 글도 비슷하지 않을까. 뻔한 이야기나 식상한 소재는 시작부터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갑자기 달라지는 전개나 계획되지 않는 전혀 다른 전개에 우리는 열광하고 흥미진진함을 느낀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나도 약간 그런 면이 있다. 특히 식당을 갔을 때 처음 들어보거나 독특해 보이는 메뉴를 일부러 고르곤 한다. 은근 스릴 있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내가 처음 갔던 여행은 도쿄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가는 해외여행이라 준비를 열심히 했다. 블로그와 가이드북도 찾아보고, 여행회화책도 봤다. 1의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모든 교통편과 식당, 음식점을 검색해서 완벽한 계획표를 짰다. 완벽하게 성취한다면 뿌듯할 것 같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 건 신주쿠에서 길을 잃었던 일, 게스트 하우스에서 형을 만나 함께 여행한 일, 마지막 날 헌팅에 성공해 이성과 같이 놀았던 일, 서점 19금 코너에 가본 일 등 전혀 계획에 없던 일들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여행기를 쓸 때 계획에도 없었던 실패담을 썼다. 무엇보다 내가 재밌었고, 술자리에서 썰을 풀어도 사람들이 좋아했다. 적어도 여행기를 쓴다면 나는 실패로 가득 찬 여행을 쓸 것이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이런 목표는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누구나 뜻밖의 깨달음을 얻으려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재밌고 즐거운 여행을 떠난다면 모를까. 그러나 대놓고 깨달음을 얻고 싶어 떠난 여행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이었다. 800KM를 한 달 동안 걷는 이 순례 여행은 여러 책이나 매체에서 깨달음을 주는 길로 소개가 되었다. 나 역시 그들의 책을 보고 이 길을 걸으면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걸었다. 생장에서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면 무언가 내 인생이 바뀌는 마법적인 경험을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마법적인 경험이나 깨달음도 없었고 그냥 거대한 성당 앞에서 멍하니 누워버렸다. 허무했다. 이러려고 발이 깨질듯한 고통을 참으며 걸었나. 산티아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사실이다. 혹시나 걸으려고 한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여러분이 바라는 건 없습니다. 다만, 바라지 않는 "뜻밖"을 줄 것입니다. 그게 어떤 건지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길을 걸으며 수많은 "뜻밖"을 만났다. 똑같은 길이지만 저마다 에피소드가 다르듯이 나도 나만의 "뜻밖"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인생을 살아냈다. 그 과정에서 원래 얻으려던 것 (메이저리거 되기) 보다 더 소중한 교훈들을 얻었(거나 최소한 얻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최근에 본 베트남 영화가 있다. 주인공은 평생 가수의 꿈을 가지고 살았는데 결국 이루지 못하고 시골의 선생님으로 발령받는다. 다음 가수 공모전에 나가기 위해 시골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시골아이들과 함께 공모전 영상을 올리는데 이게 대박이 난다. 드디어 꿈을 이루나 싶었는데, 프로듀서들이 원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천사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시골 어린이였다. 결국 그는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재능을 발견한다. 작사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는 유명 작사가가 된다. 


우리 인생도 "뜻밖"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나도 베트남에 가서 일을 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고, 퇴사도 생각지 못했고, 이렇게 지금까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을지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나의 20대, 30대, 40대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30대가 되었을 때 나는 전혀 "뜻밖"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실패했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그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과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으니까. 비록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빛나는 얼굴은 아닐지라도 과정에서 흘린 땀은 얼마든지 새로운 "뜻밖"을 만들어주었다. 혹시 모르지 가수를 꿈꾸었는데 살다 보니 작사가가 되어있을지도. 그런 의미에서 인생과 여행은 비슷한 것 같다. 적어도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는 말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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