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습관에 대하여"
친구 B라는 녀석이 있다. 나와 10년을 넘게 우정을 나눈 친구이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 녀석은 공부하다 말고 충동적으로 아무 곳이나 훌쩍 떠나버리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자전거로 어떤 때는 오토바이로 어떤 때는 자동차로 훌쩍훌쩍 떠나는 그에게서 경외감보다는 이상함을 먼저 느꼈다.
B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군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휴학을 하더니 혼자 한 달 넘게 전국 자전거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그때까지 나는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에 대해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외롭고, 재미도 없는 것을 왜 하는지 몰랐다.
어느 날 B가 나에게 버스 여행을 제안했다. 시내버스가 있는데, 아주 기가 막힌 곳을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버스 여행은 간단했다. 우리는 거의 버스 종점에 살았기 때문에 종점에서부터 종점까지 여행하는 것이다. 그냥 버스 타고 말이다.
처음에는 버스에서 친구들끼리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유쾌하고 즐거웠다. 함께했던 시간들을 되돌려보며 그땐 그랬었지 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였다. B는 이어폰을 자신의 귀에 꽂더니 창가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앉았다. 창밖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즐겁다고 이야기했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자 나도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여행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꾸게 만든 순간이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던 풍경이 어느새 다르게 느껴진 건 내가 알던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나가면서 이렇게 공원이 많았던가? 하늘이 이렇게 푸르게 구름은 저렇게 토끼 똥처럼 놓여있었던가? 수많은 공장들, 그리고 일하는 인부들, 조금씩 바뀌는 도시의 모습들, 버스 안의 사람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바닷길을 지나갔을 때 내가 느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로움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20년간 살았던 내 고향인데도 말이다. 자세히 보았을 때 여행은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주기 시작했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서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팡세, 단상 136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이번 여행의 안내자인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자신의 침실 여행을 했다. 메스트르는 자신의 침실과 집에 대해서 묘사하면서 색다른 여행을 한다. 이후 집이 작다는 이유로 자신의 동네를 여행하기 시작한다.
“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여행이란 무엇인가?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곳을 가야만 여행인 것일까? 일과는 전혀 동떨어져 놀기만 하면 여행인 것일까?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여행지를 가야만 여행인 것일까? 작가는 자신의 동네를 걸으면서 동네에 대한 묘사하고 있다. 마치 새로운 여행지를 만난 느낌으로 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 풀꽃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교양수업 중 교수님의 제안으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매 수업 때 한 챕터씩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마지막 수업 때 교수님께서 이 시를 이야기해주면서 우리가 자세히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십수 년 간 살았던 동네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그려진 세계가 자리 잡혀있다. 여기는 안 보고도 걸어갈 수 있어!라는 이야기는 이곳에 오래 있었으니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친한 친구들, 가족들, 나의 고향. 모두 오래 알았고 오래 보아왔다. 자세히 안 보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믿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여행지에 왔다는 느낌으로 다시 자세히 본다면 얼마나 나의 친구들, 나의 고향, 나의 집이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자세히 보았을 때 우리에게 진정으로 사랑스럽게 다가오지 않을까?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
B와 함께한 동네 여행 이후로 나는 혼자 여행을 하고 싶어 졌다. 그리고 이후에 한 여행의 대부분은 혼자 한 여행이다. 함께 하는 여행의 즐거움도 분명 있다. 서로 장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혼자 여행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볼 수 있는 연습을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의 관점과 나의 취향과 나의 방식대로 사물을 볼 수 있으니 더욱더 사랑스럽게 다가와 준다.
여행의 기술에서 실제적인 기술을 논하는 것은 여행이라는 것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여행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와 함께 가느냐.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느냐에 따라 여행의 방식과 기술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달라지기 마련이다. 여행을 잘하는 법? 세상에 그런 건 없다. 다만 나 자신을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가? 또는 다른 존재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여행을 출발하는 것이 여행의 기술을 마치는 가장 적절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