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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Sep 20. 2019

우리가 사진에 집착하는 이유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 진다. p.295

 멋지고 이쁜 이성을 보면 내 옆에 두고 싶고, 멋진 풍경이나 추억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진다. 10대, 20대의 고운 피부와 얼굴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젊음을 유지하려 한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에게 당연한 본능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가보았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던 곳 또 무관심하게 지나친 곳들 가운데 어떤 곳들이 가끔 눈에 띄면서 우리를 압도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p.293

그런 아름다움도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씩 틀리다. 어떤 사람은 돌을 보고 강렬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바다에 이끌리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나는 어떤가 물어보면다면 책이다. 그것도 수천 권이 있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강렬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그 책의 숲 사이에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여행지에 가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꼭 들리는 편이다. 지역마다 그 느낌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하나의 방법이다. 사진을 찍으면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보고 촉발된 근질근질한 소유욕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귀중한 장면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줄어든다. 아니면 아예 우리 자신을 물리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 박아 놓을 수도 있다. p. 296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으로 가장 쉽고 대중적인 것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과 그곳이 나의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랄까. 이제는 사진을 찍지 않으면 순간을 잃어버릴 것 같아 오히려 안 찍으면 불안할 정도이다. 식당에서 밥, 카페에서 커피, 여행지의 장소, 친구들과 놀 때, 연인과 함께 데이트할 때, 지금 이 순간의 젊음까지 모든 순간과 기억을 사진에 담아두고 싶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카메라로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곳에 대하여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p.299 

알랭 드 보통은 러스킨의 여행을 통해 사진보다 글과 그림을 통해 아름다움을 간직하라고 이야기한다. 왜 사진이 아니라 글과 그림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데생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습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 준다는 것이다. (중략)

한 장인이 강의를 끝내면서 러스킨이 자신을 포함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자,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데생을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중략) “한 군데 가만히 앉아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튼튼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 본다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p.300, 301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만 위한 것은 아니다. 바로 자세히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무감각적으로 지나치는 모든 사물들과 장소들이 자세히 본다면 그 속에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그린다고 해보자. 그냥 도화지에 나무를 그리라고 한다면 네모 반듯한 나무 기둥과 둥글둥글한 잎사귀들로 간단히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나무는 그렇게 생기지 않았고, 나무마다 모양이 각각 다르다. 인간이 다 다르듯이 나무도 다 다르다. 나무 한 그루도 집중해서 그린다면 10분은 걸릴 정도로 정교한 작업이다. 한 대상을 집중적으로 10분 동안 바라본다면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나무의 질감이나 형태, 가지들의 모양, 나무가 뻗어있는 모양, 나무의 색깔, 썩어서 구멍이 난 자국, 새로 돋아나는 잎사귀, 나무속에 숨어있던 새둥지를 만나거나 열매가 달려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자세히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자세히 보는 연습에 가장 최적화된 연습이다. 



나도 인도에서 처음으로 연필과 노트를 사서, 그림을 그려보았다. 인도의 집들이나 풍경들이 다른 곳보다 더욱 특이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림실력이 형편없었지만 보이는데로 그려보았다. 사진을 찍었으면 10초도 걸리지 않았을 길거리 풍경인데, 그림으로는 대충 그려도 30분이상 걸렸다. 누가 보면 낙서수준이었지만 나는 한 풍경을 30분동안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공원이나 카페 앉아서 길거리 풍경을 낙서하곤 했다. 


테크놀로지는 아름다움에 쉽게 다가가게 해 줄지 모르지만, 그것을 소유하거나 감상하는 과정을 간단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p.303

그렇기에 사진은 더더욱 자세히 보는 작업을 방해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에서 매우 쉽게 찍을 수 있다. 그냥 폰을 열고 셔터만 누르면 된다. 감상을 한다기보다 감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소유만 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상을 자세히 보기보다 대상을 가두는 연습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적극적이며 의식적으로 보기 위한 보조장치로 사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대체하는 물건으로 사용하였으며, 그 결과 전보다 세상에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되었다. 사진은 자동적으로 세상의 소유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p.305

물론 개인적으로 사진도 훌륭한 여행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림이나 글뿐만 아니라 사진도 자신의 생각을 담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흐름을 본다면 생각을 담아서 표현한다기보다 얼마나 더 쉽고 빠르게 찍을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그렇게 빠르고 많이 셔터를 누를수록 세상을 소유하고 아름다움을 소유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백 장, 수천 장을 찍어도 가슴에 남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풍경의 진정한 소유는 그 요소들을 살피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눈만 뜨면 아름다움을 잘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기억 속에서 얼마나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의도적으로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p.306

그렇다. 사진을 찍으면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에 대해 얼마나 파악했냐는 것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차이예요?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좋아하는 이성을 생각한다면 혹은 부랄 친구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상대방을 파악하고 있는지에 따라 보는 관점과 보이는 시점이 달라진다. 하물며 여행지에 갔을 때도 내가 좋아하는 대상과 무관심한 대상을 바라보는 차이는 극명하지 않던가? 



우리가 그림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득은 어떤 풍경이나 건물에 이끌리는 이유를 의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우리의 취향에 대한 설명을 얻게 되며, ‘미학’, 즉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는 능력도 생기게 된다. p.309

그림을 통해서 여행을 하는 방법은 또 하나의 장점을 가져다준다. 바로 나만의 "취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진도 모든 사물이나 대상을 찍지는 않는다. 나만의 감성이나 생각으로 찍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찍는 것이다. 그림도 그렇다. 많이 그리고, 많이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아름다움. 내가 생각하는 미학의 철학이 생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취향"이라고 부른다. 





러스킨은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라고 권했을 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그의 말로 하자면 “말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력적인 장소는 보통 언어의 영역에서 우리의 능력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스스로에게 충분한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분석하는 데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다. 호수가 예쁘다는 관념에 안주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 넓은 호수에서 매력적인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거기서 연상되는 것은 무엇인가?’ ‘크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을까?’ 

아 말로 어떻게 표현이 안되는데 진짜 좋았어! 여행지를 다녀오고 어땠냐고 물어보면 가끔 이런 대답을 듣곤 한다. 말로 표현이 안된다. 물론 나도 그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로 표현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매력적인 장소였거나, 그 매력적인 장소를 자세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구체적으로 장소를 바라보았다면 아마 디테일한 표현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명 여행작가들은 자세히 보고 생동감 있게 글로 표현해서 마치 그곳에 내가 간 것처럼 글을 쓴다. 필력도 필력이지만, 관찰의 힘이 아닐까 싶다. 


러스킨의 ‘말 그림’은 어떤 장소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방법 (잔디는 녹색이고, 땅은 회색을 띤 갈색이었다. ) 일 뿐 아니라, 심리적 언어로 그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 (풀은 대범해 보이고, 땅은 소심해 보였다. ) 이기 때문에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p.317 

단순히 사진이나 그림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가 되면서 브이로그로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지만, 여전히 글의 힘은 위대하다. 유튜브를 보는 것과 여행기를 읽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사진과 글 혹은 그림과 글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여행기도 가장 잘 쓰는 방법이지만 사진에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이 포함되면 사진도 함께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꼭 알랭 드 보통처럼 사진보다 그림이 최고라고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그림을 주목하는 근본적인 이유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바로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 사진도 대상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불어 글도 쓰는 것을 권한다. 글이 사진으로 담았던 나의 생각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영국 시골을 여행하다 제자들이 형편없는 그림을 제출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는 것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하여 자연을 보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라고 가르치겠습니다.” p.323

여행을 다녀와서 꼭 글을 써보자. 하루키는 여행지를 다녀온 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쓴다고 했다. 숙성과 정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의 흥분이나 느낌을 100% 전달할 수는 없지만, 글이 정제되어 나오는 장점이 있다. 그냥 SNS에 올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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