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썸 Sep 19. 2019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인도 조드푸르, 체코 프라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이탈리아 피렌체. 

이 도시들을 말했을 때, 생각나는 것이 일치한다면 한국사람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영화 김종욱 찾기의 조드푸르, 프라하의 연인의 프라하, 꽃보다 누나의 두브로브니크, 냉정과 열정사이의 피렌체. 이 밖에도 많은 영화 혹은 드라마, 소설 속의 배경이 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들이 많다. 하물며 뉴욕은 이젠 너무 많이 나와서 어디 속의 배경이라고 하기에 머쓱할 정도이다.     

내가 세계여행을 떠났을 때, 소설 속 배경 혹은 영화 속 배경에 대한 동경이 대단히 강했다. 그곳에 가서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에 온전히 감정이입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실망이 더 많았다. 인도 조드푸르는 블루시티라고 하는데, 정작 파란색이기보다는 옅은 하늘색에 가깝고, 가까이 가보면 칠이 다 벗겨져 블루시티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솔직한 이야기로 블루시티를 감상하기보다 옆의 메헤랑가르 성이 훨씬 멋지고 볼만하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임수정과 공유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하지만, 다들 허탕만 친다. 왜 그럴까라고 물었을 때, 한 인도인이 말했던 게 기가 막혔다. 자네가 임수정과 공유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공유가 아니었다.     

 



알랭 드 보통은 고흐가 가장 행복하게 지냈었던 프로방스의 아를로 간다. 고흐는 이곳에 노란 집이란 곳에 방을 얻고는 많은 미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낸다. 고흐에 대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나도 프로방스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풍부한 연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p.232 

프로방스라는 말은 이미 고흐와 동일시될 정도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에게 조드푸르는 김종욱 찾기처럼 말이다.  

    

작가는 프로방스를 여행하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알려주어야만 그 장소에 대한 진가 혹은 찾아가고 싶어 할까? 그리고 몇 번을 왔다간 곳이지만, 누군가가 알려주었을 때 다시 새롭게 보이는 걸까?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라는 챕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음이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사진과 영상의 발달로 우리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꼭 멋진 사진 혹은 아름다운 풍경 영상을 보고 있다. 특히나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의도된 연출로 그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옛날에는 어땠을까? 옛날에는 지금과 같이 사진과 영상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귀에 쏙쏙 박히는 이야기, 그리고 그림이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여행이라는 것은 부자들의 소유물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흐가 있던 19세기 말까지 그림은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라, 구도와 색채 배합, 비례 등 당시 정해진 화법으로 그려야만 했다. 그림에서 우리는 가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반 고흐는 동생에게 말했다. ‘사이프러스가 줄곧 내 생각을 사로잡고 있어. 지금까지 내가 본 방식으로 그린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놀라워. 사이프러스는 그 선이나 비례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만큼이나 아름다워. 그리고 그 녹색에는 아주 독특한 특질이 있어. 마치 해가 내리쬐는 풍경에 검정을 흩뿌려놓은 것 같은데, 아주 흥미로운 검은 색조라고 할 수 있어. 정확하게 그려내기가 아주 어렵지.’ 

 사이프러스에서 반 고흐는 보았는데 다른 화가들은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한 가지는 사이프러스가 바람에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나는 정원 끝으로 걸아가, 몇몇 작품들의 도움을 얻어 사이프러스가 미스트랄(지중해 연안지방에 부는 찬 북서풍) 속에서 독특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런 움직임에는 건축학적 이유가 있었다. (중략) 멀리서 보면 그 움직임에 동시성이 없기 때문에 마치 여러 각도에서 불어오는 몇 개의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사이프러스는 원뿔 모양이기 때문에 바람에 신경질적으로 퍼덕이는 불길을 닮았다. 반 고흐는 이 모든 것을 보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보게 해주려고 했다. 




 반 고흐가 프로방스에 머문 지 몇 년 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한다. p.249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가 생각하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담아서 표현하고 있다. 사이프러스는 춤을 추고 있고, 밤의 별들을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부터 여행의 욕망이 예술로부터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들을 예술가들 혹은 사진작가와 영화제작자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표현했다.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까지 사이프러스는 그저 많은 나무들 중 하나였고, 오스카 와일드가 그리기 전에는 런던은 안개의 도시가 아니었다. 조드푸르는 김종욱 찾기 이전에도 한국사람들이 지나갔을 테고, 프라하는 드라마가 하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을 것이다. 하지만, 전에는 다른 인도 도시나 유럽 도시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도시들이었다.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느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243

 앞의 이야기를 거꾸로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우리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판단으로 인해 골라진 것을 중요하게 믿는 것은 아닐까? 블로그나 여행책에서 중요하다고 하기에, 드라마의 촬영 장소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미리 갔다 온 뒤 혹은 예술작품으로 남긴 뒤 우리는 그것을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예술과 여행의 욕망 사이의 오래된 관계를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 두 가지의 연결은 관광의 역사 전체에 걸쳐 여러 나라에서 (또 여러 예술 분야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p.266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퉁이는 예술가들이 그려주거나 글로 써준 후에만 돌아보게 된다는 주장을 완벽하게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p.268 

 18세기 영국에서 최초 사례가 있듯이 (우리가 다루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도 이에 해당한다. 18세기 소설과 그림에 등장하면 그냥 시골마을이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일약 최고 관광지로 발돋움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관광에 우리의 의식을 활용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아를에 가면 빈센트 반 고흐 관광 안내소가 있다. 그리고 고흐의 그림에 나왔던 여러 가지 장면들과 나무들이 장식되어 있다. 안내소는 “반 고흐의 길”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반 고흐의 자취를 느낄 수 있게 안내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아무 영화 촬영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은 글을 끝내면서 아마 우리는 또 어떤 것을 보고는 여행을 정했을 것이다. 예술과 관광이 정해준 대로 안내받고 따라가고 있지 않을까?라고 글을 끝내고 있다.     

이 챕터의 주제는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이다. 작가는 이렇게 따라만가는 우리지만 적어도 예술이 우리에게 여행 혹은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안내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여 눈을 열어주는 미술이라고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내가 생각하는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어떤 장면에서 찾아내야 할 것을 파악하는 감각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각 예술을 공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예술 작품들은 사실상 우리에게 ”프로방스의 하늘을 보라, 밀을 다시 생각해보라, 올리브 나무를 제대로 평가하라 “ 고 말해주는 아주 섬세한 도구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훌륭한 예술작품이라면 밀밭에 있는 수백만 가지 요소들 중에서도 관객의 미감과 관심을 자극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을 그려낼 것이다. ” p.235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결론지어 이야기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고흐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밀밭을 그렸고, 김종욱 찾기에서 감독이 자신의 생각을 담아 조드푸르를 그려냈다. 사실상 우리를 안내해주는 예술작품들은 우리에게 한 번 밀밭을 보지 않을래? 프라하는 다른 도시와는 조금 다른 게 있지 않니?라고 도와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예술작품이 되고,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은 자신만의 감각과 시각으로 기존의 이것은 이렇게 봐야 해라는 고정관념 너머로 나만의 색을 입힌 행위예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의 숭고함을 느낀 적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