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숭고함에 대하여"
"워즈워스는 우리의 영혼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서 풍경 속을 돌아다녀보라고 권했다." p.204
작가는 풍경 속을 걸으러 사막으로 출발한다. 스스로 작아진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였다.
" 어떤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이 적절한 한 단어로 표현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초가을 저녁 날빛이 희미해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또는 빈터에서 전혀 움직임이 없는 물웅덩이와 마주쳤을 때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려면 이런저런 말들을 어색하게 잔뜩 쌓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절벽과 빙하, 밤하늘과 바위가 흩어진 사막을 보면서 느끼는 특정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단어가 18세기 초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느낌은 숭고하다 라고 부르게 되었고, 또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어김없이 알아듣게 되었다. p.211
숭고함에 대해서. 숭고함이란 무엇일까. 내가 한없이 작아 보일 정도로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 섰을 때? 수식어가 생각이 안 날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호숫가의 노을빛 물결을 보았을 때? 장소에 대한 느낌일까? 단지 크기에 관한 느낌일까?
"숭고함은 우주의, 나이, 크기 앞에서 인간의 약함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유쾌할 수 있고, 심지어 사람을 도취시킬 수도 있다." p.212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숭고함은 나약함을 알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우주 앞에서 나 자신이 한없이 작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숭고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숭고함은 심지어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 p.215
인간은 전통적으로 강한 것을 신이라고 불러왔다. 달과 태양이 그러했고, 불이 그러했고, 강한 동물들이 그러했다. 경외감은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약함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나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발전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되고,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했다.
"신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에 서구인이 숭고한 풍경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이런 풍경을 통해서 도시와 경작된 시골에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초월적 감정들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219
이전의 숭고함은 신을 섬기는 숭고함이었다. 현재의 숭고한 풍경은 우리 주변의 숭고함이다. 서구인들이 미술에서 자연스럽게 종교의 탈피와 주변의 풍경에 대해서 그리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숭고한 풍경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애드먼드 버크가 구약에서 가장 숭고한 책이라고 선정한 책이 "욥기"이다. 이 책에서 욥은 엄청난 자연재해를 받으면서 고초를 겪는다. 신은 일이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놀라지 마라고 하면서 우주의 논리를 사람이 헤아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이기 때문에 다분히 종교적인 메시지가 있다. 욥이 되고 싶은 대로 돌아가지 않고, 반대로 흘러가더라도 욥의 마음에는 하느님이 있기를 바란다.
즉, 자신의 약함을 알게 되더라도 하느님을 계속 신뢰하고 믿으라는 말로 생각이 된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일 때가 있다. 특히 여행은 더 심한 것 같다. 이제껏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세운 계획을 온전히 간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항상 계획과는 다른 해프닝이 발생했고, 어떤 때는 심각히 걱정할 정도의 일도 있었다.
모든 인생을 돌아보아도,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실망할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황홀한 경험과 너무나 특별한 추억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오히려 기쁨을 느낀 적도 있었다.
세계여행을 떠났을 때 첫날부터 시작해서 예상 밖의 일 투성이었다. 첫날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핸드폰 유심 사기를 당했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매일 일어났다. 스페인에서는 잠깐 놔두었던 짐이 테러 의심을 받아 검사를 받는 가 하면, 핸드폰이 갑자기 망가져 핸드폰 없이 한 달을 생활하기도 했다. 가장 컸던 것은 바로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가 아닌가 싶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밴쿠버로 열몇 시간을 버스로 이동했다. 밴쿠버에 도착한 뒤 오후까지 관광을 즐기다가 여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3일 뒤에 미국 시애틀로 넘어가야 하는데 여권을 다시 발급받으려면 8~10일은 기다려야 했다. 실망하기도 했고 막막하기도 했고, 여행이 싫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나 여정이 나를 기다렸다. 핸드폰이 망가지자 오히려 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테러 의심을 받는 해프닝 덕분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한 번도 물건을 도난당하지 않는 조심성을 얻었다. 여권을 잃어버리고 10일을 더 캐나다 있게 되자, 게이 부부를 만나 그들과 8일 동안 함께 할 수 있었다. 캐나다 사람들과 더욱 깊게 친해지는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만약 세상이 불공평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의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p.228
숭고함이란, 특히 자연에 대한 숭고함을 보면서 작가는 우리의 인생을 좀 더 담담하게 보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어찌 보면 먼지와도 같은 것이다. 필연적이거나 혹은 우주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