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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Sep 10. 2019

여행을 떠날 생각에 부푼 당신에게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기대의 대하여




나는 바베이도스 섬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p.17 

저자는 겨울의 공원 풍경을 보면서 사색에 잠겨 있던 중, 멋지고 아름다운 해변이 찍혀있는 팸플릿을 보게 된다. 그리고 즉시 바베이도스 섬으로 향한다. 

" 이런 사진들에 사람들이 쉽게 현혹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가계에 파탄을 일으킬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긴 여행이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했다. " p.16 

사람들은 사진이나 여행기를 읽으면서 나도 떠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빠진다. 나 역시 멋진 여행과 경험을 하고 싶다는 열망과 지금 안 가면 못 갈 것 같다는 절박함이 함께 나를 충동질했다. 그리고 10개월간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단 한 권의 여행 에세 이 책을 보고 말이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니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늘 제기되는 한 가지 문제는 여행에 대한 기대와  그 현실 사이의 관계이다. " p.17 

저자는 여행을 떠나면서 기대하는 것과 현실과 다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를 꺼내 든다. 
꼭 자신을 닮은 듯 한 모양이다. 책의 주인공 데제생트 공작은 찰스 디킨스의 책을 읽다가 런던을 여행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런던으로 여행할 준비를 한다. 돈이 많으니 바로 갈 수 있는 것 같다. 부럽다.
하지만, 데제생트는 런던을 가지 않는다. 자신의 상상하는 런던의 모습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났을 때 그 기대와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니 그냥 집에서 강렬한 열망과 설렘으로 남는 것을 택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크게 세 가지 부문에서 여행을 기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기대와 현실의 차이다. 어찌 보면 물리적 측면의 차이를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의 기대 속에서 공항과 호텔 사이에는 진공밖에 없었다. p.23


알랭 드 보통은 바베이도스에 대한 멋진 상상을 하며 공항에 내렸지만, 상상과는 다른 바베이도스를 본다. 그리고 일정표를 보면서 언제 호텔로 돌아가는지만 궁금해졌다. 환상이 깨진 것이다. 
나도 여행을 가기 전에 나름대로의 상상을 했다. 세계여행가들의 책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나도 그러한 경험을 할 거라는 부푼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것은 전혀 다른 만남의 연속이었다. 어느 순간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에 여행을 중도 포기하려고 한적도 있었다. 내가 생각한 멋진 여행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었다. 

" 예술작품에서도 상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순화와 선택이 이루어진다. 예술적인 이야기들은 현실이 우리에게 강제하는 것들을 뭉텅 생략해버린다." p.24 
" 현재를 긴 영화에 비유한다면, 기억과 기대는 거기에서 핵심으로 꼽힐 만한 장면들을 선택한다. " p.26

그렇다. 멋진 사진이나 글에서는 단순화와 선별의 작업을 거친다. 그때의 구체적인 묘사와 이야기는 생략된다. 선별된 이야기는 정제되어 우리에게 보인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은 정제된 모습이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차이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여행이 지속될수록 그 차이를 심하게 느꼈다. 많은 분들이 기대와 달라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뉴욕 타임스퀘어를 직접 보고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정말 별거 없다. 정말. 

대제생트는 영국 말고도 네덜란드도 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을 여행한다. 그리고 실망한다. 
차라리 루브르 박물관의 네덜란드 전시실에서 보낸 오후 한 나절의 경험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첫날 아침나절에 나는 M과 우리의 해변 오두막 바깥의 일광욕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만 위에는 구름 한 점이 수줍게 걸려 있었다. 관찰자들에게는 내가 긴 의자에 편하게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실 신체적 외피를 떠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 p.33 

여행을 온전히 여행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두 번째로는 온전히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도 정신적인 측면에서 일상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해야 할 일들이나 미처 해결하지 못한 일들. 혹은 상사가 중간에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몸은 여행지에 있지만 머리는 이미 귀국해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세계여행을 할 때, 나는 몹시 걱정이 많은 타입이었다. 여행을 하고 난 다음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나, 이다음 여행지에 대한 고민. 앞으로 직업에 대한 고민. 먼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내 머릿속은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항상 그러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걱정들로 인해서 추억이 없는 여행지를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차라리 안 가는 것만 못하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장소에 가장 온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그곳에 가 있어야만 한다는 추가의 부담에 직면하지 않을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p.36 

여행지에서 만난 분들 중에 정말로 여행을 즐기는 분들이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잘 다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분들은 정말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지금 이곳에 집중한 사람들이었던 같다.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 몇 시간 전 크렘 캐러멜을 둘러싼 말다툼 이후로는 미학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은 어떤 것도 즐길 수 없었다. " p.38 

마지막 세 번째로는 정신적 심리적 요구조건이다. 보통 관계에서 많이 생기는 문제이다. 
진짜 결혼할 사람인지 확인하려면 여행을 떠나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여행을 같이 하면서 일어나는 많은 관계의 갈등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평소에 동고동락을 같이 하던 친구이기 때문에 문제없이 여행을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3일째부터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약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형이 아니었다면 여행이 비극으로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주 잘 알 것이다. 그렇게 트러블이 생기고 나면 그 좋은 음식과 풍경들이 일순간에 사라진다. 심지어
 공기마저 싫어진다.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더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 
 나는 데제생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냥 집에 눌러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사의 비행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 p.41

저자는 오히려, 여행 가기 전의 설렘과 상상력으로만 남는 것이 훨씬 나은 여행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글을 마친다. 가서 돈과 시간을 쓰면서 실망만 하고 오느니, 상상 속의 여행으로 정신적 만족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신만의 여행을 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취향이
 있을 텐데, 단지 충동적으로 혹은 인터넷이 좋다고 하길래, 친구가 가자고 하길래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한다면 백에 백은 실망만 하고 돌아오게 된다. 나 역시 세계여행가들처럼 따라 하려고 하니 나한테 너무 맞지 않는 옷이었다. 중도 포기하려는 적도 있었지만,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부터는 내 방식의 여행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느긋한 여행. 책과 함께 하는 여행. 사람들과 맥주 한잔 하면서 야경을 보는 여행. 여행코스를 도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여행. 그러니 여행도 재밌어지고, 훨씬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상상 속의 여행이 주는 자극 역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지가 가진 매력은 상상으로는 대체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저 장소만 바뀔 뿐 아무런 자극도 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기술 - 기대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새삼 작가에게 놀랐다. 소설을 끌어다가 함께 이야기한 것도 놀랍지만, 여행에서의 기대라는 부분을 이렇게 멋지게 설명하고 있다니! 조금 글이 어렵기도 했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니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매우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가 부족해서 빨리 깨치지 못할 뿐이었다. 
근데 참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너무 힘들다. 실망이다. 별거 없더라라고 하면서도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여행 블로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서 저기 너무 이쁘지 않아? 혹은 인스타를 보면 여행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느끼곤 한다. 곧바로 싼 항공권이 나왔는지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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