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
정확하지 않지만 작년부터 한 달 살기가 대유행이 되고 있다. 아마 그전부터 이미 유행이었을 것이다. 내가 유행에 둔감해서.. 여러 곳에 살러가지만 주로 동남아 한 달 살기가 인기가 많다. 특히 브런치에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서 한 달 살고 있는 분들의 에세이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한 도시 혹은 한 국가에서 한 달 동안 산다.
단순한 관광 여행이 아닌 도시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고 현지인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조금 느리면서 깊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멋지다. 낭만적이면서 지금껏 여행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해결해주는 여행이 아닌가! 게다가 한 달 동안 생활하고 온 분들의 흥미진진한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지금 당장 일을 때려치우고 한 달 살러고 가고 싶은 충동마저 생긴다.
베트남에 2년 가까이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뉴욕에서 충동적으로 한 달 생활을 경험해본 입장으로써 한 달 살기 여행이 결코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모든 여행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통해 단점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한 달 동안 여행이 가능하려면 포기를 해야 한다.
가장 먼저 우리가 3~4일 정도만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부터 찾아야 한다. 간단하다. 회사에서 그 이상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해외여행 3~4일 정도 가는 것은 그 기간이 여행하기 적당한 기간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여행을 하려면 내가 백 수거나 대학생이어야만 한다. (한 달 동안 휴가 보내주는 회사는 정말 감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퇴사 후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퇴사하고 한 달 살기가 좋은 게 아니라 퇴사를 하지 않으면 한 달 동안 여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달 여행은 한국에서의 일상의 큰 부분은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여행이다.
대부분 동남아에 집중되어있다.
내가 대학생 때 친구들에게 한 달 동안 여행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물어보면 유럽 여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한 달 살기는 동남아에 집중되어 있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등 말이다. 왜 그럴까? 이것도 간단하다. 최소 비용으로 고효율의 여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한 달에 100-150 만원 정도 소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던데 동남아에서는 충분히 즐기며 쉴 수 있는 여유로운 돈이기 때문이다. 내가 뉴욕에서 한 달 동안 살 때는 방값 포함해서 250만 원 정도 지출을 했는데, 고시원 수준의 공간에서 자면서 최대한 지출을 아껴 아껴 가면서 쓴 게 그 정도였다.. 물론 뉴욕에서 하고 싶은 것들도 했지만 식당 한 번 갈 때마다 영수증 보고 깜짝깜짝 놀랐다. 많은 날을 푸드트럭과 차이나타운과 함께 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한 댓글을 본 적이 있는데 왜 해외여행은 재밌을까?라는 질문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 댓글은 하루에 10만 원 이상씩 쓰면 한국도 사는 재미가 있습니다.라는 식의 글이었다. 그렇다. 동남아에서 한 달 100만 원 이상 지출은 물가 대비 체감은 한국에서 하루 10만 원 이상 쓰는 것과 비슷하다. 동남아 사람들 월급은 보통 40-50만 원 정도인데, 한 달 100만 원 쓰는 동남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동남아의 한 달이 좋은 이유는 간단하다. 한 달을 여유롭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자금적 여유가 되기 때문이다.
단기 여행보다는 깊지만 과연 현지의 삶을 알 수 있을까?
한 달만 살아서 그곳을 알 수 있을까? 많은 에세이에서 한 달 살면서 그곳의 문화나 현지인들의 삶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다. 자기만의 해석은 여행에서 기본이다. 오히려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여행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달은 그곳의 깊이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에 건기 때 한 달과 우기 때 한 달은 다르다. 여름 기간과 겨울기간도 다르다. 구정이 있는 2월의 한 달과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의 한 달도 다르다.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9월의 한 달도 다르고, 호찌민의 한 달과 하노이의 한 달도 다르다. 정말 그곳을 알고 싶다면 1년을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한 달을 사는 것보다 일주일씩 계절별로 오는 게 더 그곳을 느끼기에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정말 현지인들처럼 살 수 있어요?
나는 현지인들처럼 살 지 못한다. 단언할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보통 월급이 30-40만 원 정도이다. 호찌민은 조금 더 받지만 대부분 월급이 그 정도 선에서 이루어진다. 방값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한 달 30만 원으로 버틸 수 있는가? 500원 노천 커피를 마시고 1500원 점심 도시락을 먹고,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며, 200달러짜리 작은 원룸을 3-4명이 공유하고, 2G 폰으로 통화하며 스마트폰은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쓰고, 길거리 노점상에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잔 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가.. 베트남이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괜찮은 음식과 카페, 아파트에서 생활하려면 100만 원 이상은 기본으로 써야 한다. 우리는 동남아에서 고급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좋을 수밖에.. 동남아에서 한 달은 동남아 중상류층들의 삶인 것이다. (아 정말 상류층은 한국보다 더 부자들이다.. 넘사벽 수준..)
여행이 아닌 일상
대학생 때 뉴욕에서 한 달을 충동적으로 산 적이 있다. 원래는 일주일만 있으려고 했는데, 4일째 뉴욕이 너무 좋아서 카우치서핑으로 지내던 집을 방 한 칸을 한 달치 빌려버렸다. 한 달 동안 뉴욕의 구석구석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신이 나고 설레었다. 그 낯선 공간의 설렘은 일주일까지였다. 일주일쯤 지나가 서서히 여행은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낯설게 느껴지던 공간들이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가끔씩 낯선 공간, 낯선 사람, 낯선 행동들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뉴욕에서도 한국처럼 익숙한 일상의 반복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뉴욕도 처음의 설렘보다 단점들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장기간 여행의 단점을 꼽으라면 여행이 일상이 되고 익숙해지면 더 이상 설레지가 않는 단점이 있다. 나의 한 달 살기도 그러했고, 베트남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생활하게 되자 베트남이 더 이상 낯선 공간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한국이 더 설렌다. 한국 갈 때 오히려 여행 가는 기분이 든다.
한 달 살기는 자칫 일상적 반복 생활만 하다 올 위험성이 있다. 우리 몸은 낯설고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기보다 편하고 반복적인 일에 더욱 끌리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의지가 강한 동물이 아니었다. 뉴욕에서 한 달은 솔직히 처음 1주일이 가장 열정적으로 뉴욕을 탐방했던 것 같다. 그 이후부터는 그냥 집에서 뒹굴 적도 많고, 하고 싶은 것이 있었음에도 귀찮아서 안 한 적도 있었다.
여행의 존재 이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상으로 탈출이 여행의 기본 조건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설레는 다른 공간을 느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일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여행도 오래 하면 여행 자체가 일상이 되듯이 우리는 언젠간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행은 일상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것이지 여행 자체가 삶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슬로건처럼 일상을 열심히 살고 떠나는 여행은 그 느낌부터 다르다. 또한 여행으로 겪은 넓은 세상과 다른 관점을 돌아간 일상에 적용하여 삶의 깊이감을 만드는 것도 여행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다르게 이야기해서 여행은 일상이 있어야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여행은 과연 여행일까. 그렇기에 한 달 살기는 마치 나에게 일상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상을 도피하는 느낌이랄까. 열심히 일 한 당신이 푹 쉬는 것은 찬성한다. 하지만 일상을 위한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재충전을 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얻거나, 그러한 경험은 굳이 한 달 동안 이어지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한 달 살기 여행이 나쁘다, 하지 말라는 의도로 쓴 것은 아니다. 이성적인 분석보다 개인적인 시각이 많이 들어갔다. 분명 한 달 살기 여행도 장점들이 많다. 단순 유명 관광지만 보고 돌아오는 것보다는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 달 살기가 너무 과장되게 좋게 포장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한 달 살기가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인다고 선택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한 달 살기도 분명 단점도 있고 실망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점을 알고 여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가적으로 여행에는 우열이 없다고 생각한다. 2-3일 짧게 가는 여행과 한 달 살기와 1년 이상 세계일주가 어느 것이 낫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세계일주나 한 달 살기는 일반인들이 하기 어려운 여행임은 틀림없다.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행을 선택한 사람들의 용기에 박수 쳐주면서 자신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하지 말자. 나는 일상의 반복에서 낯선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