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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Mar 21. 2017

설국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國境の長いトンネルを拔けると雪國であった. 夜の底が白くな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내가 살던 고향은 창원이다. 창원은 따뜻한 남쪽나라라는 별명을 가지는 경상남도에 위치하고 있다. 일 년 중에 눈이 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눈 보기 힘든 동네이다. 그렇기에 소설 설국 첫 문장을 읽어도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설국의 설자는 나에게 먼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첫 설국은 내일로 여행 때 만난 강원도였다.


내일로 여행은 20대라면 무조건 가야 하는 청춘여행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와 내 친구들 역시 늦기 전에 내일로여행을 가기 위해 배낭을 메었다. 일주일 동안 전국을 기차로 한 바퀴 도는 여행을 계획했고, 우리는 "정말" 하루에 기본 5시간 이상을 "기차"에서 보내는 진짜 "기차"여행을 했다. 4일째 강원도 강릉으로 향하는 기차를 탈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미 "기차"여행에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첫날을 제외하고는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고역이었기 때문이다. 5시간 이상 매일 기차를 타고나면 멍 때리기 대회에 1등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일째 우리는 더 이상 기차여행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우리는 피곤한 몸으로 기차에 올라탔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우리는 서로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고, 누군가는 핸드폰을 하고, 누군가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꾸벅꾸벅 졸던 나는 긴 터널에 들어갔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기차의 신이 이봐, 일어나라고 소리치며 어깨를 툭치는 것 같았다. 긴 터널을 지나자 나는 설국에 있었다.


하얀과 검정만 있는 세상에 덩그러니 놓은 듯한


2월의 겨울, 하얀색만 존재하는 세상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처음 눈을 보는 아기처럼 나는 차창에 바싹 몸을 기대어 설국을 바라보았다. 설국의 저자가 말하는 설국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치히로가 센이 된 느낌이었다. 설국에서는 밤의 밑바닥이 하얀 설국이었지만, 내가 본 설국은 붓으로 먹물을 흩뿌려놓은 듯한 설국이었다.


친구들 중 한 명이 강원도 기차는 스위치백이라는 것을 하는데, 이번에 터널이 뚫려서 올해까지만 한다고 알려주었다. (2012년 2월 겨울의 여행이었습니다, 현재 스위치백 트레인이라 관광열차로 체험할 수 있다고 하네요. ) 친구의 눈이 반짝이면서, 기차의 하이라이트는 이거지! 하는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본 5시간 이상 여행 계획을 짠 거니. 이런 철덕 같으니.


스위치백은 높이차가 많이 나는 산악지대가 많은 강원도에서 기차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서 산을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방법이다. 기차가 후진하는 광경은 흔치 않은 기회인 데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하니 한정판을 손에 넣은 승리자의 기분도 들었다. 스위치백이라는 것을 이날 처음으로 알았지만, 기차의 후진은 확실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당연히 기차는 전진만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어주었다. 이 멋진 설국에서 후진이라니! 앨리스가 말하는 토끼를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여행은 일상에 다름을 부여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전진만 하던 기차가 후진을 할 때,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기차 속에서 다름을 부여하는 스위치백. 그 이후 나는 기차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음을 직감했다. 몇 일째 이어지는 기차 속 일상에 지쳐버리는 나는 설국에서 후진을 경험한 이후, 자연스럽게 기차에 동화되어 있었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거울에 반사되는 내 얼굴이 설국의 풍경에 겹쳐 보였다. 호접몽 속에 들어온 것처럼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일상 속에서 여유를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던가? 나는 바빠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열심히 해야 한다. 쉬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 당시, 자기계발서를 읽고 한 껏 고무되어있던 터라 그 증세는 더욱 심했다. 나는 나에게 휴식을 부여하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내일로 여행에서조차 토익책을 들고 갔던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행위인가.


나는 강원도에서 토익책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 한 번하고 기차에 몸을 맡겼다. 편안했다. 친구들도 한결 밝아진 얼굴로 저마다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여유라는 것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구운몽에서 주인공이 찰나의 순간에 인생을 겪고, 깨달음을 얻었듯이 강원도라는 설국은 잠깐이었지만 나에게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토익책이 아닌 설국의 아름다움이 보이고, 친구들의 얼굴들이 비로소 보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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