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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Sep 14. 2019

발견이 아닌 확인의 여행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호기심에 대하여"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럽인들이 가보지 않은 먼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도를 살피거나 여행서를 탐독할 때면 억누르기 힘든 은밀한 매혹을 느끼곤 했다. " p.136 

젊은 독일인이었던 홈볼트는 1799년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4세를 만나는 행운 덕분에 그를 설득해 남아메리카로 가는 탐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러한 후원을 전부 받지는 못했지만,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모아둔 돈과 부모님의 후원으로 갈 수 있었다. 세계를 여행한 여행가들의 책과 블로그를 보며 여행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매일 세계지도를 펼치고는 어떤 루트로 여행을 떠날까 이리저리 선을 그어보곤 하며 여행의 꿈을 꾸었었다. 사실 여행을 하는 것보다 여행 가기 전의 설렘이 훨씬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관광객들이 그 앞에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거나 안내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강한 불안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p.141

꼭 가봐야 할 관광지 TOP5 하던가. 추천 명소, 추천 맛집 등등 안내 책자뿐만 아니라 블로그나 가이드북에서 소개하는 여러 관광지가 있다. 인스타, 블로그, 페이스북, 유튜브 등등 SNS에서는 멋지고 이쁘고 재밌는 여행지들이 쉴 틈 없이 소개되고 있다. 여긴 꼭 가봐야 해. 여기선 이걸 꼭 해야 해. 뭐랄까. 이런 느낌이 들었다. 모든 사람을 일반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멋진 건축물을 보는 것보다 카페에서 멋진 커피를 마시고 싶고, 멋진 바에서 색다른 맥주를 마시고 싶고 멋진 공원에서 책을 읽고 싶다. 

"마드리드에는 모든 것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모든 것이 이미 측정되어 있었다.... 안내책자는 이따금 짜증이 섞이는 목소리로 그런 사실들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 p.143
" 쓸모에는 (그것을 인정하는) 청중이 따른다. 1804년 8월 홈볼트가 남아메리카의 사실들을 가지고 유럽으로 돌아가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환대를 했다. " p.144 
" 나는 프로빈시아 광장의 한 카페에 앉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 p.145 
"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사실들을 발견한 탐험가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서 의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해놓았다. " p.148 
" 안내책자가 어느 유적지를 찬양한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 있는 평가에 부응할 만한 태도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p.149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버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저마다의 평가를 내렸고, 가장 많은 평가를 받은 맛집이나 관광지가 선택받아 반강제적으로 우리에게 이곳을 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홈볼트가 여행하던 시절에는 갔다 온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관심이었고 환대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가이드북에 다 나와있는 사실을 그저 확인하는 작업일 뿐이라는 사실을 카페에 앉아 느꼈을 것이다. 발견이 아니라 확인의 여행이었던 것이다. 



"내가 알게 되는 모든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보다는 나에게 개인적인 유익을 준다는 점에 의해서 정당화되어야 했다. 나의 발견은 나에게 생기를 주어야 했다. 그 발견들이 어떤 면에서는 "삶을 고양한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했다 
 "삶을 고양한다."는 표현은 원래 니체가 사용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과제는 "삶"을 고양하기 위해서 사실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괴테의 문장을 인용했다.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 p.146 
" 우리는 1만 6000점의 새로운 식물 종을 가지고 돌아가는 대신, 저녁 초대를 받을 만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삶을 고양해주는 작은 생각들을 가지고 여행에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148 
 
"삶을 고양한다"는 니체의 말을 들고 오면서 작가는 이 챕터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니체는 여행에서 단순히 가르치는 여행보다 발전시키는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저 가이드북에 적힌 대로 따라가는 여행이 아닌 내 삶에 보탬이 되고, 활력이 되는 여행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꼭 삶에 보탬이 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마음에 드는 혹은 재밌는 나만의 여행을 했으면 싶다. 나를 위한 여행을 함으로서 우리의 삶을 고양하는 여행을 추천한다. 


"나는 아무런 제약 없이 마드리드를 안내해줄 사람을 상상해보려고 했다. 나 자신의 주관적인 관심의 강도에 따라 이 도시에서 제공하는 것들을 배열한다면 어떻게 될까? " p.150 
"나는 스페인 남자들의 발이 작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으며, 도시의 신시가지에서 분명히 눈에 띄는 현대 건축에 대한 선호에 흥미를 느꼈다.... 나의 호기심의 나침반이 <미슐랭 가이드 마드리드 편>이라는 이름의 작은 녹색 책자가 발휘하는 뜻밖의 강력한 힘에 흔들리는 대신 자기 나름의 논리에 따라서 방향을 잡았다면, 이런 것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의 목록에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내서의 바늘은 다른 무엇보다도 데스 칼 사스 레알레스 수도원의 메아리가 치는 회랑의 갈색으로 보이는 계단을 단호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 p.152 

나는 서점을 좋아한다. 파리의 고서점이나 중고 책방을 들렀으며, 헤밍웨이가 자주 갔다는 카페. 그리고 여행 갈 때마다 책을 옆에 두고 다녔다. 모든 가이드북은 에펠탑을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루브르에서 하루를 다 썼으며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노팅힐 시장에서 하루를 다 써버렸다. 월드컵 기간이라 에펠탑 야경을 포기하고 맥주 들고 펍에서 축구를 보았다. 파리에서 6일을 있었지만, 가이드북에서 제시한 관광지의 반도 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친구들은 이미 가이드북의 관광지를 다 돌고도 남을 일정이었다.  어찌 보면 나의 나침반과 안내서의 나침반이 서로 달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자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물을 볼 때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으며, 질문이 없으므로 흥분도 일어나지 않는다. " p.159 

"홈볼트에게 그런 큰 질문은 "왜 자연이 지역마다 다를까? 하는 것이었다. 산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성당 앞에 서있는 사람에게 그 질문은 " 왜 사람들은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일수도 있고, 심지어 "왜 우리는 신을 섬기는 것일까? " 일수도 있다. 이런 소박한 출발점으로부터 시작해서 호기심이 사슬처럼 연결되어 " 왜 지역이 달라지면 교회도 달라질까?", "교회 건축의 주류 양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 "주요한 건축가들은 누구였고, 그들은 어떻게 성공을 거두었을까? " 하는 질문들을 포괄할 수도 있다. 호기심이 이렇게 느릿느릿 진화한 상태에서만 여행자는 이 교회의 거대한 신고전주의적 정면을 만든 사람이 사바 타니였다는 정보를 권태와 절망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실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 p.161 

질문, 왜?라는 질문이 호기심에 대하여의 강력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이 성당이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지어졌다고 듣는다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음 한 번 쳐다보고는 사진을 찍고 지나간다. 왜 교회가 여기에 세워졌을까? 왜?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성당에서 출반 한 호기심이 나라 전체의 문화와 생활을 파악하는 데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베트남을 예를 들어보자. 호치민에 오신다면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에 깜짝 놀랄 것이다. 빽빽이 붙어있는 좁고 긴 건물형식이 신기하게 보일 것이고,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술 한잔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단순히 신기하게 쳐다보는 게 아닌 왜?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모든 것이 연결되고 이해가 되는 신비로운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올 것이다. 마지막 말에서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잃어버리기 쉽다고 했다.  여행이 중요한 것이 아닌 그곳에서 얻어지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챕터 중에 호기심에 관하여라는 챕터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다. 맹목적인 수긍이 아닌, 왜?라는 호기심은 분명 우리 삶을 고양시키고, 한층 발전시킨다고 확신한다. 또한 여행에서 보는 눈이 길러지고, 한층 풍부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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