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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Sep 12. 2019

여기가 외국이라 느낄 때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에 내려서 터미널 안으로 불과 몇 걸음을 떼어놓았을 때 나는 천장에 걸린 안내판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그것은 입국자 대합실, 출구, 환승 수속 창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다... 디자인은 단순하다. 안에 불을 밝힌 알루미늄 상자 안에 든 플라스틱 간판일 뿐이다. 그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 세속성에도 불구하고, 이 간판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이국적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릴 것 같은 즐거움이다. 
그 안내판이 나에게 진정한 기쁨을 준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첫 번째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p.88 " 

이국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언제일까? 개인적으로는 낯선 문자를 만났을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말이 아닌 다른 언어의 말. 다른 언어로 되어 있는 표지판이나 안내판. 거리의 간판들이 내가 살던 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이국적이라는 표현이 절로 생각난다. 어찌 보면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이국적임을 느낄 때마다 나는 여행을 하는구나라는 실감이 들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이국적이라는 말은 네덜란드의 안내판보다는 뱀을 부리는 사람이라든가, 하렘이라든가, 첨탑이라든가, 낙타라든가, 수크라든가, 콧수염을 기른 하인이 주전자를 높이 쳐들고 쟁반에 놓인 작은 유리잔에 따라준 박하차와 같은 좀 더 화려한 풍물에 붙이는 말이었다. " p.91 

이국적이라고 한다면, 내가 공유하고 살고 있는 문화권과는 다른 문화권을 접할 때 생기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차이가 심할수록 이국적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동양에 대한 신비감 혹은 호기심이 발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이를 느끼는 것. 여행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전에 가장 선행되는 감정이 아닐까.

"플로베르는 그의 주변에 만연한 편협한 태도와 공민 정신으로부터 그를 구원해줄 수 있는 곳이 동양이라고 생각했다. " p.93

이번 챕터에서는 플로베르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 플로베르처럼 나도 처음으로 미국을 가기 전 비슷한 이국적인 설렘을 느꼈다. 수 많이 많이 본 영화에서, 글에서, 사진에서 미국 LA나 뉴욕의 풍경을 접했고 실제로 뉴욕의 거리를 갔을 때 지나가는 흑인만 봐도 이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똑같은 아파트 건문들이 줄지어 선 어느 거리에서 나는 빨간 현관문 앞에 멈추어 섰다. 갑자기 그곳에서 내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는 강렬한 갈망이 솟아올랐다. 
 왜 다른 나라에서 현관문 같은 작은 것에 유혹을 느낄까? 왜 전차가 있고 사람들이 집에 커튼을 달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장소에 사랑을 느낄까? " p.99 


뉴욕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뉴욕의 신호등도 이뻐 보였다. 사람들이 줄지어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똑같은 스타일의 집들이 줄지어 있는 뉴욕의 한 거리는 그렇게 이뻐 보일 수 없었다. 그 거리에서 한 이자까야 집에서 일본식 가락국수를 먹은 적이 있었다. 달빛 사이로 줄지어있는 아파트 거리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은 내 인생을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한 달 동안 방을 빌려서 계획에도 없던 뉴욕 생활이 시작되었다. 
타임스퀘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본 것보다 가락국수 한 그릇과 달빛 사이로 거닐던 거리가 나를 뉴욕으로 이끌어버렸다. 

"이국적이라는 말을 좀 더 일시적이고 사소한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외국에서 만나는 장소의 매력은 새로움과 변화라는 단순한 관념으로부터 나온다. " p.101 

새로움과 변화. 이국적이라는 말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이만한 표현도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움은 언제나 여행지를 아름답고 특별하게 포장해주었다. 여행지에서 변화는 나의 불만을 이곳에서 변화하고자 하는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는 내가 겪고 있던 불만과 결여, 세상에 대한 저항도 없다. 유토피아 같다. 나의 고향에서 갈망하지만 얻지 못하는 것을 이국적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플로베르는 시집와 중동을 매우 좋아했다. 그가 살던 프랑스 사회를 다시금 되돌아보는데, 그가 이러한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단순히 혼자만의 관심도 아니요. 우연한 일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기질과 논리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의 정체성과 그의 가치를 설명해주는데 이집트가 제격이었던 것이었다. 

나 역시 사람들이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라고 물어본다면 인도와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가치관과 나의 정체성을 그 어떤 곳보다 잘 표현시켜주었던 곳이었기에 가장 좋았던 곳이다. 나의 정체성의 장소이지 다른 사람의 추천 관광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매혹적인 사람이 이국적인 땅에 가게 되면 자신의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매력에 그 사람이 있는 장소가 주는 매력이 보태진다. " p.111

외국에서 외국의 이성을 만나본적 있는가? 혹은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나 눈 부셔 보인 적은 있는가? 플로베르가 그렇게 느꼈고, 나 역시 느낀 적이 있었다. 인도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프랑스 여자아이였는데, 헤르미온느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플로베르처럼 그녀의 사소한 몸짓이나 행동까지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의 느낌마저 이 친구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프랑스나 한국에서 만났더라면 또 다른 분위기와 매력으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도의 어떤 땅덩어리에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선을 그어놓고 그것을 다른 땅과 구분하는 조국의 관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조국은 내가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즉 내가 꿈을 꾸게 해주는 나라이고,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나라입니다. 나는 프랑스인인 만큼이나 중국인이기도 합니다. " p.129 

플로베르는 작은 의미의 나라보다 넓은 의미의 나라를 이야기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세계가 가까워지고 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구글로 전 세계의 어디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다 알 수 있다. 쉽게 외국을 갈 수 있고, 심지어 우리 동네에 외국인이 거주하는 게 신기한 일도 아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그 누구보다 한국을 좋아한다. 외국에 가면 삼성만 봐도 벅차오르는 기분은 아무래도 나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나는 뉴욕의 골목을 더욱 좋아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를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은 베트남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지만, 한국인이라 특정 짓고 싶지 않다. 


이러한 경계, 구분 짓기는 나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여 갇혀있는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넓게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포용성을 가져보자. 이건 이국적인 여행이 주는 선물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어느 지역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자, "아테네"라고 하지 않고 "세계"라고 대답했다. " p.131

소크라테스가 있었던 시절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세계가 가까워졌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새로움과 차이를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신 스스로를 특정 짓고 한계를 짓기보다 좀 큰 틀에서 세계를 바라보고는 넓은 시야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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