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연 신부님과 함께한 이스라엘 성지순례 - 시온 산
시온이란 '산등성이' 혹은 '요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언덕이라는 말인데, 예루살렘 성을 뜻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시절에 시온산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 성을 다시 지을 때 시온산은 밖으로 제외되었습니다. 이 곳에는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곳들이 있습니다. 성모 영면 성당, 최후의 만찬 성당, 베드로 눈물 성당입니다. 성모님의 예수님 사후 제자들과 함께 여행을 보낸 성모 영면 성당,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던 최후의 만찬, 베드로가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고 깊이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던 장소가 바로 이 곳 시온산에 있었습니다. 순례단은 올리브 산을 내려와 예루살렘 바로 코 앞까지 왔습니다.
성모 영면 기념성당
성모님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낸 곳이라 전해진 곳에 멋진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현재 성당은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이 태어났기에 모든 교회의 어머니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당 밖에서도 성당이 참 멋지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던데 안에도 참 멋진 성당이었습니다. 큰 돔 형식이라 그런지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습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님이 크게 그려져 있네요.
성당 아래에는 성모님이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하늘로 올라간 곳에 성모님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들을 하늘로 보낸 성모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동양에서는 자식이 먼저 부모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을 가장 큰 불효로 삼았습니다. 아마 이스라엘에서도 자식이 먼저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매우 슬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별이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가족이라면 더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유지를 잘 이어받아 제자들과 함께 초대교회를 탄생시킵니다. 제자들도 더욱 열심히 예수님의 말씀을 세계 곳곳에 퍼뜨렸고요.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이쁜 부모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
무교절 첫날에는 과월절 양을 잡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 날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께서 드실 과월절 음식을 저희가 어디 가서 차렸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성안에 들어가면 물동이에 물을 길어가는 사람을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우리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음식을 나눌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러면 그가 이미 자리가 다 마련된 큰 이층 방을 보여줄 터이니 거기에다 준비해 놓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떠나 성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그래서 거기에다 과월절 음식을 준비하였다. 날이 저물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가셨다. 그들이 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터인데 그 사람도 지금 나와 함께 먹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근심하며 저마다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은 너희 열둘 중의 하나인데 지금 나와한 그릇에 빵을 적시는 사람이다. 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을 터이지만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구나.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나눠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건네시자 그들은 잔을 돌려가며 마셨다. 그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잘 들어두어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다.
마르코 복음 14장 12-26절
최후의 만찬 다락방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으로도 매우 유명한 일화입니다. 아마 가톨릭을 모르는 사람들도 최후의 만찬을 알 수도 있을 정도이지요. 미사 전례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최후의 만찬 예식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그 다락방 장소를 직접 방문한다고 하니 가기 전부터 매우 설렜습니다.
다락방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다락방이 아니라 넓은 공간이었습니다. 꽤 크기가 커서 놀랐습니다. 이슬람이 장악한 후 어떠한 장식도 없이 그냥 큰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유대교가 관리하고 있어 일 년에 두 번, 성 목요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말씀의 전례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아치가 참으로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기둥의 펠리컨 조형물은 비잔틴 시대의 것으로 어미가 새끼를 위해 먹을 것이 없으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것을 비유해 예수님이 자신을 희생하여 인간을 구원하신 것을 빗대어 표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만찬을 즐기시고나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십니다. 예수님은 낮은 자세의 리더십까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현재의 CEO들도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관계를 잘 보고 배운다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관계의 출발은 존중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들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님의 뜻을 지금도 미사를 통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아먹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왜 피와 살이라 이야기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최후의 만찬 다락방에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며, 자신의 임무를 끝까지 하며 인류를 구원하려는 예수님이 상상해보았습니다. 미사 시간에 더욱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분의 피와 살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마태복음 26장 69-75절
베드로 눈물 성당
이 곳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성당은 대제사장 가야파의 옛 집터 위에 세운 것이라 전해지고 있는데, 현재는 수도원과 성당이 남아 있습니다. 유다의 배신을 당하고 체포당하신 예수님은 제사장 가야파에게 끌려와서 심문을 당합니다. 심문을 그냥 말로만 하지 않았겠죠? 심한 고문을 했을 텐데 그런 심문을 했던 흔적이나 감옥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체포되고는 제자들은 흩어졌는데 베드로가 마침 사람들 눈에 띕니다. 누군가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라고 외치자 세 번이나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 잡아뗍니다. 그때 새벽닭울음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예언을 깨달은 베드로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던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절한 베드로를 욕하기도 합니다. 저는 베드로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나 역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누군가 나를 지목한다면 모른다고 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가 죄를 한 번도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죄는 누구나 짓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이후가 아닐까요? 진정한 참회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한 이후 복음 전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초대 교회를 세우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죠. 또한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참회의 눈물이 없었다면 그러한 위대한 일을 짊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베드로가 눈물을 흘렸던 곳이지만, 성당은 눈물보다 환희에 차 예수님을 찬양하고 싶을 정도로 황홀한 성당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색깔이 너무 몽환적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았던 성당이 아니었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