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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Sep 26. 2019

십자가의 길

황창연 신부님과 함께한 이스라엘 성지순례 - 비아 돌로로사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당하신 뒤 빌라도에게 죄를 선고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실때까지 여정을 14처로 나누어 기억하며 기도하는 길입니다. 저는 성당이나 피정에서 십자가의 길을 돌면서 간접적으로 예수님의 고통의 길을 느꼈지만, 실제 예수님이 걸었던 길에 도착하니 이전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몇 일전까지 한국에 있던 내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직접 걷게 되다니! 아침부터 분주한 예루살렘 성내였습니다. 이미 시장이 되고, 누군가 사는 곳이 되어버린 곳이지만, 골목을 지나 시장을 지나 빌라도가 처음으로 사형선고를 내리던 그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제 1 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다 
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서셨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총독이 묻자, 예수님께서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당신을 고소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저들이 갖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하고 물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고소의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총독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십자가의 길은 빌라도가 사형선고를 내린 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지금은 아랍 초등학교가 그 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순례단을 선고를 내렸던 선고 성당에서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는 기도와 함께 엄숙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짋어지며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제 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다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십자가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가 아닌 인류의 구원을 위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에 남의 십자가 지는 것 조차 꺼려하는 우리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부족함없이 자라온 저는 아무래도 십자가가 무겁다고 투정을 부리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정작 자신의 십자가도 지기 싫어하면서 하느님께 원하는 것만 바라온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얼마나 무거우셨을까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는 여정을 잘 그린 영화인데요. 간접적으로나마 예수님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노래와 기도를 하며 십자가의 길을 직접 걸으면서 뒤에 멘 배낭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데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힘드셨을지.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대학생때 일입니다. 대학생이 되면서 부모 곁을 떠나 혼자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2학년부터는 친구들과 같이 사는 기숙사가 아닌 혼자 살게 되면서 정말 혼자 자립해야하는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씨 좋은 봄날, 저는 소풍은 커녕 독감에 걸려 집에서 끙끙 앓았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부모님이 정말 생각났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께서 맛있는 집밥을 차려주셨고, 힘들때마다 다시 기운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고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도 그 힘겨운 고통 속에서 성모님을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반대로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 정도로 아팠을까요.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고통스러워 하시는 예수님을 대신해 구경하던 시민 중 한 명인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시몬은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갔을까요? 왜 하필 자신이 걸렸냐고 재수없다고 했을까요? 누군가 힘들고 고통스러워할때 함께 십자가를 나누어 들고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하느님께 청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손을 짚으셨다는 바위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예루살렘 전역에 큰 사건이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형을 받으러 가는 예수님을 보러 왔습니다.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무관심하게 보는 사람, 통곡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누구하나 예수님을 위해 마실 것 하나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나서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립니다. 바로 베로니카 성녀입니다. 성경에는 거의 기록이 없지만, 십자가의 길에서 영원히 그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베로니카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내어 병이 나은 사람입니다. 그녀의 믿음은 다른 군중들의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 곁에서 땀을 닦아드립니다. 기도를 하면서 베로니카 성녀처럼 주위의 시선과 비난에도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정말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냥 십자가를 들고 올라가는 것도 무척 고된 일인데, 병사들의 조롱과 채찍질로 두 번째로 넘어지십니다. 나약한 저희도 넘어지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이 마치 세상이 무너질듯한 일처럼 좌절하고 나약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심을 감사드리며 고통이 저를 힘들게해도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일어설 힘을 달라 청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셨다고 적힌 돌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백성의 큰 무리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보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루카 복음 23장 27~29절


예수님 곁에는 많은 여인들이 뒤따라왔습니다. 대부분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예수님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그런 부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고 하십니다.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거의 다 왔습니다. 멀리 주님부활성당이 보입니다. 골고다 언덕을 거의 다 와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한 번더 넘어지십니다. 하지만 마지막 힘을 내어 하느님을 뜻을 이루기 위해 다시 일어서서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순례단도 성당을 향해 계속 노래를 부르며 십자가의 길을 이어갔습니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길 10처부터 14처는 무덤(부활)성당 안에 있습니다. 성당이 수많은 순례객들로 붐비고 순례단이 한꺼번에 들어가 십자가의 길을 이어가기 힘들었기 때문에 성당 앞 큰 마당에서 14처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부활하신 그 장소만 남았습니다. 나자렛에서부터 베들레헴의 아기예수, 그리고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을 지나 마지막으로 고통 속에서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며 하느님의 과업을 완수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좁은 문을 통해 성당 내부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곳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루카 복음 23장 33-43절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많은 세월이 흘러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 찾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십자가가 예수님의 십자가인지 몰라 환자를 데려와 십자가에 손을 대게 했는데 한 십자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한 십자가는 오히려 병이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병이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같은 죄수를 꾸짖던 죄수의 십자가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조롱과 비난 속에 십자가에 못이 박히고 매달리게 됩니다. 생살에 못이 박히는 것 만으로도 무척 고통스러울 텐데, 매달리기까지 하니 저는 정신을 차리는 것도 힘들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 2명이 있습니다. 한 명은 병사들처럼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하고, 한 명은 그런 죄수를 꾸짖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보입니다. 죄수는 마지막에 천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도 누구나 죄수 중 한 명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하느님에게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보통 무언가 바라는 기도가 많았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게 해달라같은 기도였죠. 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하느님을 욕하는 죄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반성합니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숨을 거두시다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그때에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구경하러 몰려들었던 군중도 모두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 예수님의 모든 친지와 갈릴래아에서부터 그분을 함께 따라온 여자들은 멀찍이 서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희를 위하여 돌아가십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손에 자신을 맡깁니다. 그제서야 병사들도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군중들도 그제야 의로운 분인줄 알게 됩니다. 나약한 저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렸습니다. 십자가 밑에 엎드려 기도를 했습니다. 부끄러우면 얼굴이 빨개지듯이 몸이 붉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주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린 뒤 천으로 감쌌던 곳.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묻히시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회 의원이며 착하고 의로운 이였다.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유다인들의 고을 아리마태아 출신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리고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셨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무덤이었다.


성당 안에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무덤에 매장하기 위해 아마포로 감쌌던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몸을 낮추고 손을 얹어 예수님을 기억하며 묵상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이곳에서 부활하셨다.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성당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위에 작은 경당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이 곳에는 일정 수 만 들어 갈 수 있게 통제를 하고 있어 매우 긴 순례객 행렬이 만들어졌습니다. 순례단도 1시간정도 기다려서 겨우 들어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무덤을 갈 수 있었습니다. 경당 위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하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돌무덤에 묻히신 구세주 예수님,

저희가 주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언제나 깨끗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사랑의 성체를 받아 모시게 하소서.


십자가의 길을 끝내고 고통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나자렛에서부터 시작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온 순례객은 이제 순례의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만나며 순례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순례단은 마지막 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찬양하고 경배드리는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 안나 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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