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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Mar 23. 2017

마닐라의 천사들 (1)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에서 평화

인생에서 가장 낡은 집과 가장 비싼 집을 동시에 경험한 적이 있는가?

여행의 첫 발인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두 명의 카우치 호스트는 그야말로 가장 낮은 곳이나 높은 곳이었다.

일주일 동안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낮고 높은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내면의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너무 낮았다.


Neil과의 만남

마닐라의 무겁고 후덥지근한 공기를 마시며 나는 필리핀에 도착했다. 첫 카우치서핑이자, 첫 여행의 시작이었다. 겨우겨우 연락이 닿은 첫 번째 호스트 Neil이 보낸 주소만 가지고 나는 마닐라 공항에 우두커니 있었다. 택시를 타고 보내준 주소로 가고 있었지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나는 구글 지도로 확인했을 때 확실히 도심이 아닌 외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택시는 공항을 떠난 지 40분째. 나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Neil이 전해준 주소에 도착했다.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는 Neil. 나와 비슷한 체구 아니 깡마른 체구에 웃는 모습이 멋진 친구였다. 그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한 뒤, 학교 수업이 있는데 나를 기다리다가 늦어버렸다고 했다. 수업 마치고 다시 오겠다고 우리는 만난 지 10분 만에 다시 헤어졌다. Neil은 관광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집은 1층과 2층으로 되어있었는데, 내가 경험했던 곳 중에 가장 허름한 곳이었다. 1층은 부엌과 거실이었고 2층은 침대 2개가 있는 주로 잠자는 방이었다. 1층과 2층 사이에 틈새로 컴퓨터가 놓여있었다. 화장실은 있었지만, 소변을 볼 정도 크기였다.  7평 남짓한 원룸 크기로 1층과 2층이 나누어져 있었다.


Neil 과 함께 쓴 침대. 모기때문에 고생을 했다.


Neil올 때까지 피곤한 몸을 잠시 쉬기로 했다. 침대에 누우니 금세 잠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 보니 어둠 속에서 두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두 꼬맹이가 얼굴만 쏙 빼놓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보면서 "Hi"라는 인사를 했다. 아직 아이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필리핀은 고유의 언어인 따갈로그어를 사용했고, 학교에서 영어를 따로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스케치북과 펜 그리고 가장 최고의 대화 수단인 손짓 발짓을 동원해 이야기를 했다. 사소한 움직임에도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


이윽고 Neil 이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저녁 늦게 오신다고 했고, 인상 좋으신 어머니, 그리고 누나 두 명, Neil, 마지막으로 아까 만났던 남동생, 여동생 한 명씩 총 7명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밤이 되니 누나 두 명은 한침대, 나와 Neil이 한 침대, 1층에 동생 2명과 부모님이 잠을 잤다. 나까지 포함해 8명이 되자, 집이 꽉 차 버렸다.


학교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엽기사진 찍는 중


나는 Neil의 집에서 3박 4일 동안 함께 지냈다. Neil의 여동생을 학교에 같이 데려다 주기도 하고 여동생, 남동생이랑 같이 컴퓨터 게임과 술래잡기 등등 하루 종일 놀아주었다. Neil은 하루는 수업이 없다고 마닐라의 주요 관광지를 같이 돌아보며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였다. 자기는 나중에 관광가이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비록 좁은 집이지만, 외국인들을 초대해서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 이후에도 2팀이 차례로 온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손짓발짓만으로 충분했던 귀여운 동생들


귀여운 동생들 그리고 고양이

neil보다 더 많이 함께 논 친구들이 있다면 그의 두 동생들이었다. 첫날부터 시작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오면 항상 붙어있었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내 한 동작이나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는 동생들. 특히, 여동생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학교를 마치고 일찍 집에 왔기 때문이었다. 유독 나를 잘 따라오기도 했다. 둘 다 나이에 비해 작은 키와 마른 체형에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순수하게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천사와 함께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오랜만에 술래잡기도 하고, 찰흙으로 재밌는 모양도 같이 만들고 스케치북에 그림도 그리기도 했다. 마지막에 헤어지기 전에 갑작스레 다가온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든 듯 울먹거리는 얼굴로 토라져있기도 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 고양이

Neil 가족의 고양이들을 소개한다. 여행 내내 유독 도도한 고양이들에게 시선을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고양이들은 심히 위험한 동물들이다. 심장 폭행을 너무 심하게 해서 한동안 끙끙 앓을 뻔했다. 고양이는 엄마와 4마리의 아기 고양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Neil의 말에 따르면 아직 태어난 지 이주일도 안 되었다고 했다. 겨우 걸음마를 걷는 듯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이 아기 고양이들은 Neil의 가족들에게는 손길을 허락하고 있었다. 나도 Neil옆에 있으니 눈을 한껏 부라리며 엄마 고양이가 쳐다보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었다. 가족들이 고양이를 얼마나 잘 챙겨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 고양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 대해 도도한 자세를 유지했다. 마지막 날 밤 내가 작별인사를 하러 혼자 방문했을 때 내가 가는 것을 아는 듯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장화 신은 고양이가 애교스러운 얼굴을 할 때처럼 애교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지막까지 심장 폭행을 하다니. 작별인사를 하자 내 다리를 비비적비비적 거리고는 이내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잘 안보이지만, 작별인사하자 다가온 엄마 고양이


고양이는 심하게 위험한 동물임이 틀림없다. 이후에도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나의 심장을 공격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지금도 심심하면 유튜브로 고양이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행복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전혀 철학적이지도 않고, 깊게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하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 돈은 행복의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아도 상당 부분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끊임없이 타인을 금전적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정작 나도 없으면서. 웃긴 것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으로 가면 돈 한 푼 한 푼 쓰는 것에 바들바들 떨지만, 개발도상국으로 가면 오히려 그 나라 사람들을 동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의 나는 심하게 낡은 이 집에 적잖이 실망했다. 샤워실도 없어 옆 집의 화장실에서 샤워를 해야 했고, 모기들의 습격에 무방비인 데다 나까지 포함해 8명의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러나 4일 동안 이들과 함께 하면서 매 순간 웃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내 기준에는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부족했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이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있었다. 식사시간에 가족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에 행복이란 어쩌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가족들이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에 있는 게 아닐까. 우리 가족은 언제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한 적이 있던가? 다 같이 모여 웃고 떠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식사 도중 나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몰라도 화장실로 향했다. 쏟아지는 눈물은 부모님이 집에 있음에도 대화를 단절시킨 나를 향한 것일까. 어쩌면 나는 정말로 낮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마워 Neil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뒷 모습. 오빠와 함께하는 등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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