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여행 세계일주 "시드니"
시드니의 싱가포르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드디어 호주에 도착하였다. 호주에서 나를 맞이해준 카우치 호스트는 호주 사람이 아니라 싱가포르 친구였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기쁘게 맞이해준 호스트 Max과 룸메이트 Justin. 그들이 싱가포르가 아닌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는 이유는 조금 특별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와우! 당시 붐이었던 스타트업을 익히 듣고 있었던 터라,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자동적으로 눈이 반짝였다. 옆 방에 디자이너 두 명과 함께 4명이서 현재 스타트업 엑셀레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 해커톤에서 처음 만나 호주까지 함께 온 것이다. 앞으로 3개월 정도 더 프로그램에서 교육과 준비를 하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가 스타트업 로켓을 쏘아 올리겠다고 했다.
Max의 스타트업은 여행 관련이었다. 카우치서핑과 유사하지만, 현지인들이 가이드나 되어서 진정한 현지의 문화를 체험하게 한다는 콘셉트이었는데, 듣고 있다 보니 한국에서 비슷한 스타트업들을 들은 적이 있어 소개를 해주었다. 유심히 보던 max과 justin. 이것 봐 한국에 벌써 있어. 놀라워하는 그들. 우리는 중화권 사람들을 타깃으로 맞추어해야겠어. ( 내가 여행하는 도중 사이트가 론칭했다는 소식을 듣고 초반에 페이스북에 홍보도 참여해주었지만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멋진 로켓을 타고 있지 않을까? ). 만난 지 한시오래간만에 우리는 그들의 자문역할을 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나의 의견도 경청해서 듣는 친구들. 멋진 미래를 응원할게.
런닝맨 광팬과 FT아일랜드를 좋아해
Max는 런닝맨 광팬이었다. 우리는 밤에 피자를 먹으며 런닝맨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max의 집에 있는 5일 중에 4일 정도는 런닝맨을 본 것 같다. 영어자막으로 나오는 런닝맨이 신기했다. 외국에서 (특히 동남아와 중국에서) 유명하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나는 런닝맨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출연자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기에 Max가 묻는 말에 대답은 할 수 있었다. 한국 예능을 영어자막으로 보니, 영어자막도 은근히 잘 읽히는 것 같았다. 아 이 표현이 영어로 번역할 때 이렇게 말하는구나.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로 영어를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 예능을 영어자막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3일째 되는 날 디자이너 두 명을 놀러 와서 4명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 여자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FT아일랜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유일하게 아는 노래가 하나뿐이라 그거라도 기억해서 이야기해주니 엄청 종아 했다. 미안하구나, 외국에서 좋아하는데 정작 나는 별 관심이 없다니. 사실 Kpop을 잘 안 보고, 예능은 무한도전 빼고는 안 보고, 드라마는 아예 보지도 않으니 이래저래 한국인이라고 물어보는 데 묻는 족족 대답하기 난감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에요.
축구가 하고 싶었어요
시드니에 온 지 2일째 되던 날, 시내를 한 번 둘러보고는 5시 반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호스트 친구들은 스타트업 준비로 인해 보통 7,8시는 돼야 도착했다. (하루는 10시가 넘어서 도착하기도 했다. ) 집 앞에 큰 공원이 있었는데, 이곳은 6시가 되자 저마다 각자의 운동을 하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쪽 구석에서 친구들끼리 축구하는 것이 보이길래 충동적으로 나도 축구가 하고 싶어 졌다. (축구라면 미치도록 좋아할 때였다. ) 그래서 운동화 신고 일단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에는 개와 함께 원반 던지기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쪽에는 복싱을 한쪽에는 팀을 이루어 축구도 하고, 럭비도 하고 다양한 운동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누가 봐도 그냥 재미 삼아 축구하는 듯이 보이는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가방으로 골대를 만들어하고 있었다. ) 같이 해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동의. 대부분 중국 친구들이었고, 한 명이 호주 사람이 있었다. 거의 2시간을 뛰었나? 역시 축구로 하나 되는 건 전 세계 공통인 것 같다. 매주 목요일 이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한다고 다음 주에도 나오라고 한다. 미안, 시드니에는 1주일만 있기로 해서. 내가 축구하고 왔다고 하자, Max와 Justin이 다들 놀란다. Max는 농구 광팬이었다. (키가 190에 가까웠다.) Justin은 조깅을 좋아해 아침에 함께 러닝을 했는데, 와 체력이 보통이 아니다.
도전하는 그들
Max나 디자이너 친구들은 20대 중반을 달리는 그야말로 청춘이었다. 그에 비해 Justin은 이미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친구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형이구나. 조곤조곤하고 상냥했던 justin은 은근 나와 코드가 맞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자기관리도 철저하고 매사에 신중했다. 그랬던 그가 스타트업에 도전하고 있다니. 당시만 해도 목표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에게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그들이 매우 부러웠다. Justin은 돈을 벌려고 성공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게 재밌다고 했다. 재미. 내가 순수히 재미있어서 했던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 여행은 과연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것일까?
시드니 한인 Joel
시드니에 Max와 헤어지고 나는 시드니의 두 번째 호스트의 집으로 이동했다. 시드니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교외에 위치하고 있던 그의 집에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운동복차림으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는 5살에 호주로 이민을 온 한인교포였다. 그 이후로는 한국을 가본 적이 없다는 그는 한국말을 정말 잘했다. 절대로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이 친구도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시드니가 실리콘밸리인 줄 착각할 것 같다.) Joel의 집에 가보니 막 파티를 하고 난 뒤라고 했다. 그래서 욕조에는 맥주와 음료수가 가득했고, 상당히 어질러져 있었다. 활발하고 매우 밝은 친구였다.
드론
joel은 드론을 매우 좋아했다. 집에 아주 작은 드론부터 카메라도 충분히 들 수 있을 정도의 대형 드론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2014년 당시만 해도 나는 드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간 2015년 드론 열풍이 한창 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처음 본 드론에 매우 신기하게 보았고, joel은 내 액션캠 카메라를 달아서 직접 드론을 시범 보여주었다. 나는 작은 드론으로 조종해 보았지만, 초보자는 드론 운전이 매우 힘들다. 중심잡기도 힘들어서 드론이 거의 급발진 속도로 땅으로 처박히기 일 쑤였다. 날개 몇 개 깨 먹어서 다시 한번 미안합니다. 드론 임대 사업과 드론 촬영 기술자를 구매자들과 이어주는 O2O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기와 러시아의 개발자와 둘 이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만 30세였다. 열정은 나보다 더 뜨거웠다.
맥도널드 알바로도 먹고살 수 있어
그날 밤. 나는 맥주 한잔 하면서 밤새 그와 이야기했다. 한국말이 잘 통해서이기도 했지만,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그에게 배울 점과 들을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고 30이 된 나이에 스타트업을 준비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첫마디 "설령 실패해도 맥도널드 알바만 해도 사는데 지장 없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부러웠다. 나는 친구의 스타트업 도전에 회의적이었다. 꿈도 좋지만, 현실을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패해도 걱정 없는 호주가 부러웠다. 그는 어릴 적부터 컴퓨터 게임을 매우 좋아했고, 우리가 볼 때는 중독 이상으로 즐겼지만, 대학에 진학했고, 회사에 다녔으며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컴퓨터 개발과 드론으로 사업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참고로 셧다운제에 대해서 분개했다. F*** 쓰면서 )
그가 한국말을 배우는 이유
Joel은 5살이 되기도 전에 호주로 이민을 왔다. 한글을 조금 배웠지만, 호주에서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만 쓰고 있던 Joel은 자신의 고향인 한국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어를 독학했다고 했다. 한국사람들과 자주 대화하고, 끝없이 연습했다고 했다. 지금도 조금 어눌한 면이 있지만, 정말 한국말을 잘했다. 나도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언어를 배우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Joel은 "Don't Be afraid. Try and Try"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고 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연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영어를 못하는 나는 조금이라도 영어가 막히면 숨거나 조용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웠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시드니의 두 CEO
시드니에서 두 호스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스타트업에 대해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이 돌풍을 일으키며 연일 성공가도를 올리고 있었고,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세상을 혁신하려는 기업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었다. 나는 막연히 그들의 성공에 주목하고 있었다. 20대에 성공하고 싶다는 막연한 성공. 시드니에서 나는 두 CEO를 만났다. 각기 사업분야와 아이템, 준비 방식이 달랐지만 직접 스타트업을 보면서 내가 가진 막연한 상상이 달라졌다. 그들은 치열했고, 매일 고민했고, 열정적이었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열정적이고 패기 넘치는 그들이 스타트업을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지원이 아니었다. 맥도널드 알바만으로도 충분히 혼자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회, 실패해도 언제나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그들을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스타트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