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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Mar 31. 2017

멜버른에서 헌팅

사람 여행 세계일주 "멜버른"


소지섭처럼 쭈그리고 앉아보았습니다. 네, 임수정은 없더라고요. 아 맞다. 내가 소지섭이 아니지.


미안하다 사랑한다. "멜버른"

멜버른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호시어 거리라고 불리는 곳인데, 이곳은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배경이 된 곳이었다. 호주에서 소지섭과 임수정이 처음 만나서 도망쳐서 오는 곳이다. 수많은 그래피티가 벽면을 에워쌓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때문인지 몰라도 멜버른은 왠지 모를 로망을 꿈꾸며 도착했다.


군중 속의 고독. 멋지고 예쁜 멜버른에서 나는 혼자였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내가 묵었던 호스트의 집은 다운타운에서 트램을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호스트가 일하고 때문에 아침 일찍 다운타운으로 놀러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이 기본적인 일상이었다. 아 물론 혼자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성적이다. 특히, 언어가 안되면 심하게 내성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었다. 뭐랄까. 내가 못 알아듣고 못 말하는 것이 남에게 보이기 싫었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 저녁에 호스트와 함께 작은 담소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혼자 있는 것이 한국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이라 크게 상관하지 않았지만, 여행이 한 달을 넘어가면서 점점 혼자라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평일날의 오후 해변.


처음으로 말을 걸어보았다. 

다운타운을 가기 전에 해변이 하나 있었다. 다운타운까지 걸어가도 될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한 번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평일날 오후의 해변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 해변 앞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해변에서 수영과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 저마다 즐기고 있는 가운데, 홀로 해변을 거닐어보았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해변에 홀로 앉아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옆을 지나가다 보니 그녀 옆에 신라면 컵라면이 놓여있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말을 걸어볼까? 10분 이상을 그녀 주변에 어슬렁 거리면서 고민했다. 한 번도 혼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기에 (외국에서 영어로 말이다. 길 물어보는 것 제외) 몸과 마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쉼호흡 한번 하고, 최대한 능청스럽게 옆에 앉아서 "이거, 신라면이지? " 하고 말을 걸어보았다. (그녀가 보기엔 덜덜 떨면서 매우 어색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 그녀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환하게 웃으며 " 응, 맞아. 너 한국사람이지? " 라고 답해주었다.


"이거, 신라면이지? "

" 응, 너 한국 사람이지? "

" 맞아, 나는 지금 세계여행중이야!! "

" 와!! 멋지다!! 나는 태국사람이고 멜버른에서 어학연수중이야!! "


이렇게 시작된 그녀와 인연. 자연스럽게(?) 그녀 옆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말을 건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막상 말을 걸고 나니 하고 싶은 말들이 술술 나왔다.


그녀는 태국 사람이었고 (태국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멜버른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고, 아침에 학원에서 공부하고 오후 4시부터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해변에 바람 쐬러 나왔다고 했다. 자기 학원에  한국사람들 많다고 몇며 한국 친구도 있다고 했다. 그녀가 알바를 하기 위해 헤어지고 나서야 나는 2시간 동안 그녀와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멜버른에서 만난 일본 여자아이 

나는 그 후 호스트의 집을 나와 멜버른 시내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되었다. 7일 동안 멜버른에 있는 계획이었는데, 호스트가 4일까지 밖에 안된다고 해서 남은 3일은 게스트 하우스로 갔던 것이다. 카우치서핑이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시내에  묵게 되니 멜버른 도서관을 자주 들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을 좋아했고,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도서관 앞에 작은 잔디공원에 사람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누가 들고 가도 모르겠지만, 저마다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 아래 도서관 안에서 책을 읽기보다 잔디에 누워 책을 읽는 게 훨씬 좋아 보였다. 나도 잔디에 누워 여유를 즐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집에 돌아가려는 순간,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겉보기에는 일본 사람처럼 보였다.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가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이전에 해변에서 자신감을 가졌지만, 또 한 번 말을 걸어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결국 용기를 내어 집에 가려는 그녀를 길가에서 말을 걸었다. 잠깐 놀라는 그녀에게 차분히 나를 설명했다. 나쁜 사람 아니에요. 어느새 옆에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본인인 그녀는 워킹홀리데이로 1년 동안 호주에 왔다고 했다. 타즈매니아라는 호주의 섬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현재는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1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었던가. 일본인 특유의 귀여운 억양이 영어에도 묻어 나왔다. 지금은 약속이 있어서 다음에 한번 같이 놀기로 했다. 2일 정도 멜버른에 더 있을 예정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


역시 퍼포먼스도 남달라야 한다.


자신감

나는 멜버른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 전에는 항상 카우치 호스트가 있었고, 혹은 그냥 혼자 있는 것을 즐겼다. 처음에는 나는 내성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에 말을 걸려고 10분 이상 할까 말까 고민했고, 지레짐작하고 거절을 당할 거라고 확신해버렸다. 하지만, 내가 말을 걸었던 거의 대다수 사람들은 너무나 기쁘게 대화를 받아주었고, 예상치도 못한 호의를 받기도 했고, 새로운 인연이 되기도 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었다. 나는 거절과 실패를 두려워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 쫙 펴고 자신감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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