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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를 하나로 볼 수 있을까?

동남아 제대로 마주 보기

by 낯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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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를 묶는 동남아적 정체성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그것을 규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동남아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이를 구성할 역사적, 사회문화적 기반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3년간 베트남 호치민에서 생활했다. 방콕을 자주 놀러 갔는데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최소 1회는 방콕 혹은 타 동남아 국가를 놀러 갔다. 호치민에서 다른 동남아 국가는 멀어도 2시간 거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일찍부터 동남아라고 이야기하면 현재 아세안 10국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방콕을 가면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를 만나게 된다. 생전 처음 보는 뱀처럼 생긴 언어는 옆에 영어가 같이 쓰여있지 않으면 읽을 수도 없었고 베트남과 달리 왕이 있고 불교를 믿는 국가였다. 싱가포르에서는 영어와 중국어가 함께 있는 나라였고 말레이시아에서는 현지 지인과 이슬람 사원에 가기도 했다. 베트남 로컬 집에 갔을 때는 유교식 제사를 접했다. 이렇게 다른 이유는 서양에서 식민지배 시절 인도차이나 혹은 동남아 사령부 형태로 지배하기 쉽게 구분 지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동남아는 크게는 도서부와 대륙부로 나누어지고 멀리로는 인도 영향, 중국 영향이며 가깝게는 식민지배와 기독교, 이슬람, 불교로 종교로도 나누어지게 된다. EU처럼 하나의 공동체로서 정체성을 논하기 어려운 점은 동남아 지역 전체에 영향을 끼친 제국이나 문화가 없다는 점이다. 유럽은 기독교와 로마제국의 영향이 크게 미쳐 전체적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중동지역 역시 이슬람 문화권의 공통점을 만날 수 있다. 반면 동남아는 도서부와 대륙부 사이의 역사와 문화도 다르고 대륙부 국가들 역시 인도와 중국 영향을 따로 받은 데다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이나 문화 영향도 미미한 편이다.


그렇기에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세안 10국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지만 거대한 하나의 시장으로 묶을 수 없다고 본다. 중국에서 하나 팔면 13억 개 판다는 이야기만큼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아세안을 하나로 묶는 것은 어떤 것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나는 IT와 스마트폰으로 발전된 디지털 혁명이 정체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두 번째 질문인 동남아 역동성과 함께 이야기하겠다.




차량 공유로 보는 동남아 역동성과 정체성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그랩(Grab)은 생활필수품이었다.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음식 배달, 택배, 세금납부, 핸드폰 요금 충전, 그랩 페이 등 생활 전반에 걸쳐 필수적인 서비스가 다 들어가 있는 종합서비스 어플이었다. 그랩은 차량 공유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차량 공유 서비스로 모든 데이터와 회원수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로 진출하고 있다. 그랩은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탄생하여 지금은 싱가포르에 본사가 있다. 서비스는 동남아 전역에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신기했던 점은 그랩을 설치하고 태국을 가거나 말레이시아에 갔을 때 자동으로 그 나라에 맞는 서비스로 변경이 되었다. 동남아 어디를 가도 그랩만 있으면 따로 등록을 하거나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시대를 뛰어넘은 급격한 디지털 혁명이다. 동남아는 컴퓨터의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부터 잡게 되었다. 또한 국가를 뛰어넘는 IT서비스가 가능하면서 싱가포르에 있는 기업이 손쉽게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랩은 동남아 니즈에 맞추어 글로벌 기업을 물리치고 당당히 동남아 전역을 하나로 만들었다. (18년 우버 동남아 철수) 그랩의 대항마로는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고젝이 그랩과 함께 동남아를 양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둘 사이 합병 이야기(20년 5월부터 계속 기사가 보도되고 있음)가 나오고 있는 만큼 동남아 전체를 아우르는 차량 공유 서비스 회사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남아를 위한 유니콘 기업의 출현과 OTT 콘텐츠의 글로벌화


이처럼 동남아 국경을 초월한 동남아만을 위한 IT서비스가 출현하면서 동남아는 급격히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그랩이나 고젝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의 니즈에 맞는 스타트업들이 줄줄이 출현하고 있다. 싱가포르를 제외하고 동남아 국가들은 컴퓨터의 보급보다 먼저 스마트폰 보급이 보편화되는 경험을 겪었다. 전 국민이 컴퓨터는 없지만 스마트폰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시골에 가도 스마트폰을 만날 수 있다. 그랩의 경험을 예를 들어보며 스마트폰으로 동남아가 연결되기 시작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과 동남아 니즈에 맞춘 IT서비스가 동남아를 하나로 묶는 정체성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니콘 기업이 대거 출현하고 너도나도 스타트업에 뛰어들며 젊은 층이 압도적은 많은 동남아의 역동성도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OTT의 글로벌화이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OTT는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화에 가장 큰 역할 했다. 이전까지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유럽 콘텐츠가 아시아로 수입되었다면 넷플릭스의 성장으로 한류 및 아시아 콘텐츠가 서양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시작은 한국, 중국 콘텐츠이지만 다변화된다면 아시아 각국의 콘텐츠들도 무섭게 글로벌화되기 시작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지금도 동남아를 하나도 봐야 한다는 질문에 동의하기 어렵다. 국가 간의 이익을 위해 아세안 공동체가 묶였을 뿐 역사적, 민족적 동질성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세안 국가들은 이전보다 더 단단하게 뭉치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동남아에서 활약한 유니콘 기업과 글로벌 콘텐츠들이 동남아만의 결속력을 다져줄 것이라 생각한다.


*해당 에세이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주최한 1기 아시아 지역전문가 과정을 들으며 작성한 개인 의견이 담긴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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