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 엄마

by 김영연


“엄마, 지금 어디에 계세요?”
“응, 나 감천가에 와서 큰방에 누워 있다.”

“엄마, 언제 외가에 가셨어요? 누구랑요? 외삼촌, 외숙모는요?”
“볼일 보러 나갔지.”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지만, 그 말이 너무 이상했다. 외가엔 삼촌하고 외숙모가 살고 계시기는 하지만, 외가에 가실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울산에서 선산 외가까지 혼자 가셨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엄마, 어디 가지 말고 그대로 계세요. 꼼짝도 말고요.”
나는 다급하게 몇 번이나 당부했다.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금 어디 계셔?”
“집에 계시는데? 무슨 소리야?”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엄마는 울산의 아파트에 그대로 계신데, 왜 외가에 있다고 믿고 있을까?
오빠는 “가끔 그러시더라”고 했다. 가끔?
그제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금 울산 집에 계시잖아요. 거기가 어떻게 선산 외가예요?”
“감천가 큰 방에 누워 있는데, 방이 따뜻해서 좋아.”
엄마는 막 교회에서 돌아와 낮잠을 주무신 듯했다.

“엄마, 일어나서 정신 좀 차려 보세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엄마의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저 ‘피곤해서 헛소리하시나’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모가 말했던 “자다가 가끔 섬망 증세가 있다더라”는 말이 떠올랐다. “네 엄마, 섬망 증세가 있는 것 같아. 너랑 같이 잤는데, 네가 보이지 않아서 네 이름을 막 부르면서 찾아다녔다고 하더라.”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잠들어야 할 시간에 엄마는 어둠 속을 헤매며 나를 찾았다. 기억의 문이 닫히고 열린 자리를 불안이 대신 채우면, 엄마는 가장 익숙한 사람을 잃어버린 듯한 두려움 속에 서 있었다. 나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 사라지는 세계 속에서도 붙들고 싶은 유일한 관계였던 것일까? 그 밤 엄마가 불렀을 내 이름이, 이상하게도 그 어떤 사랑의 말보다 더 오래 귓가에 남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걸까. 엄마는 외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집은 외할아버지가 나한테 물려준 집이야.
막내 이모인 끝순이한테도 안 주셨지. 나를 더 사랑하셨거든.”
엄마의 목소리에는 자랑과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 엄마의 기억은 60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엄마, 주변을 잘 보세요. 장롱도 그대로 있고, 거기 울산 삼익세라믹 아파트잖아요.”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엄마는 내가 더 헷갈리게 만든다며 웃으셨다.
“이 집이 맞아. 외할아버지가 준 집이 두 채나 있어.”

‘집이 두 채나?’
그 말이 이상하다고 느끼기보다, 잠깐 희망이 스쳤다.
‘정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숨겨둔 집이 있어서 우리에게 다 나눠주신다면…’
하지만 그건 헛된 바람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혼자 사신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혼자서도 늘 단단하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믿었다. 엄마는 영원히 총명할 거라고. 설마, 치매일까?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긴 했지만, 그래도 착한 치매였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그 누구보다 똑똑하던 둘째 딸이, 제일 먼저 그 길로 들어서다니…믿기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20대즈음의 엄마


작가의 이전글치매라는 낯선 단어와 마주하다